그저께 5년 만에 제주도에 왔다.
마늘과 딸이 횡성 기도원으로 떠난 시간차를 이용한 예정에 없던 급행이었고 마음이 아직 안 열린 나의 기도원 동행을 원했던 마누라는 섭섭함을 표했지만 산다는건 다 그런게 아니겠는가?
소노캄까지 택시를 타고 한시간을 달려 하루 먼저 와 있던 대딩 친구들과 합류. 이미 흥취가 올라 있던 놈들이 품에 안아 들고온 표선 제일 맛집 '치킨'을 먹었고 쫄깃했다.
심각한 유혹이 있었지만 음주 위기를 잘 넘겼다.
다음날 마라도.
무한도전에 나왔던 원조 마라도 짜장면집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먹었는데 나는 짬뽕이 더 좋았다.
흰 목이버섯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목이버섯 매니아인 딸 생각이 났다. 3일 동안 핸드폰 시간 제한 늘려달라는 전화만 짧게 짧게 오는거 보니 잘 있나보다.
1100도로를 달렸는데 눈 가득 머금은 풍광들이 좋았다.
저녁.
두 놈은 고등어회를 조아하는 나를 위해 이틀 째 같은 횟집으로 향해 주었고 전복 내장과 밥을 뚝배기에 볶아준 '게우밥'이 가장 고소하니 좋았다.
숙소로 돌아와 어제 남은 치킨에 맥주를 마시던 친구 놈이 음악을 크게 틀었고 '민물 장어의 꿈'이 나왔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 뿐.
이젠 버릴 것 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떠난지 11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신해철이 스치면 금세 깊이 패인다.
2014.10.27. 라미에게 썼던 일기를 찾아 올린다.
2024.10.27.
오늘은 아빠의 10대, 20대에 짙은 표상이 되었던 가수.
'신해철' 아저씨가 하늘로 떠난 날이야.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이라는 희귀병으로.
1989년 대학가요제에서 들고 나온 '그대에게'가 그 아저씨의 시작이었지.
압도적인 전주의 그 곡을 시작으로 그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아빠의 이후 20년의 어느 지점들을 엄격히 지배했지.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나에게 쓰는 편지', '인생이란 이름의 꿈', '안녕', '연극 속에서',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그 시절 그는 아빠에게 압도적으로 독보적인 지성과 감성을 갖춘 운율과 선율의 '다름'이었고 그렇게 그의 완벽한 1, 2집 시절이 지나갔어.
넥스트 시절의 'Dreamer', '절망에 관하여', 'Hear i stand for you', '도시인', 'Hope' 등은 그만이 획득하여 구현할 수 있는 범주의 왕국이었지.
아빠의 같은 20년을 지배했던 이승환, 조규찬, 토이, 공일오비, 김동률, 이적 등과는 다른 독립적인 위치에 서 있었던 사람.
그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었어
그는 늘 소외된 이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행동을 보여왔고 세상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진정한 공인이었어.
용감한 '소셜테이너’로서 앞장서서 ‘불합리에 대한 맞섬’과 ‘약자에 대한 옹호’를 힘 있게 실천 해왔던 ‘전사’.
앞으로도 이런 독특하고 독보적인 아우라를 점유한 가수는 이 나라 풍토에서는 잘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그것이 한 때의 '구토'였든, 한 철의 '열정'이었든 그는 자신의 치열한 실존 의식을 솔직하게 가사에 담는 가오 있는 음악인이었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얻을 수 없는 것은 절대 넘볼 수 없고, 부러움과 시기만으로 초라함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은 그런 자의식 과잉의 가사들에 쉽게 빠져들 수 없지.
헛된 몽상만으로 시간을 다지며 예민함을 들을 수 있게 해줬던 그에게 감사할 따름이야.
오랜 시간 아빠는 충분히 그를 잊고 있었어.
얼마 전 엄마랑 같이 봤던 라스('라디오스타'라는 토크쇼 프로그램)에 나온 후덕한 그의 모습에 무언지 모를 든든한 동류의식에 익숙한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어.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지 않은 나의 길"
그는 가사처럼 살았어.
그가 새벽 라디오 DJ를 했던 시절.
거침 없는 욕설을 생방송에서 던지고 세상을 향한 쉼 없는 독설과 풍자를 날렸어.
아빠는 늦은 새벽마다 소금쟁이처럼 의자에 곤히 앉아 통쾌함을 즐겼고 그의 이면에 열광했어.
적당한 침묵으로 자신의 입장 없음을 교묘하게 숨기고, 알량한 예의를 덧대어 입힌 구라와 샤킹을 범람시키는 인간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는 참 멋진 아티스트였어.
그는 영민했고, 시대는 저물었고, 아빠는 한 움큼 슬퍼버렸네.
베어든 아픔 속.
그를 기리며 보내드려야지.
오늘은 더 외롭고 막 그러네.
보고싶다 라미.
두 아이는 새벽부터 성산 일출봉으로 떠났다.
착하고 정 많고 맑은 두 놈 덕에 그야말로 '힐링'
내일 출근 암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