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처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어색함을 깨기 위해 질문을 주고 받는다.
'스몰토크'는 어색한 분위기를 완화시켜주고 친밀감을 쌓는 밑받침이 되는 조금 작지만 매우 중요한 빌드업이다.
보통 날씨이야기에서 '취미'로 넘어간다.
나는 지방직 공무원이라는 특성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고 49라는 꼰대 찬 나이상 상대가 먼저 스몰 토크를 걸어올 일도 잘 없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겠다.
내 삶을 더듬어 보면.
10대 때 나의 취미는 '공상'이었다.
나의 MBTI는 언제나 INFP와 ENFP의 사이에 있는데 마늘의 분석에 의하면 지갑에 돈이 많은 시절에는 앞자리가 E라고 한다. 아주 동의하는 바이고.
나의 10대는 나의 나들과 비교해 가장 돈이 없었을 때이기도 하거니와 덜 여문 또래들의 시선 때문에 움츠려 있던 내 인생 '극강의 I 시절'이었다.
INFP가 16가지 유형 중 가장 강한 '공상가'유형이라고 하던데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종류별 공상노트가 있었다.
부모 노트 - 좀 더 자주 집에 있는 아빠, 부드러운 엄마
형제 노트 - 자상한 누나, 애교 있는 여동생
여친 노트 - 책을 좋아하는 조용하지만 할 말은 분명히 하는 키는 158cm 정도의 단발 머리
진학 노트 - 과학고를 조기 졸업한 나는 서울대 전자전기공학과에 가서 삼성과 소니를 합친 것을 넘어서는 전자 회사를 차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고 나의 다리를 고치는 전자 제품을 직접 만들어 냄
사회 진출 노트 - 다리가 나은 나는 타고난 운동 신경으로 국대 스트라이커가 되어 월드컵에 나가 대한민국 최초로 줄리메 컵을 안고 골든 슈를 수여 받음
가지지 못 한 조건들에 대한 억울함과 이룰 수 없는 결과들을 끝없이 써내리는 경계 없는 가관의 폭주 기관사였다.
엄마한테 들켜 찢긴 적이 수 차례였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써나갔던 기억이 난다.
언제나 책상에 강제로 앉아 있게 했던 엄마에 대한 오조준 복수였고 그 필사에 들인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착석의 본래 목적대로 썼다면 내 인생은 크게 달라졌을까?
20대 때 나의 취미는(사실 2024.12.20일까지 30년 간) '음주'였다.
추상 같은 모친 때문에 '등하교의 얼개와 원형' 이외의 삶이 전무 했던 나는 온갖 종류의 알코올이 동반해 준 방종과 쾌락의 세계들과 진심 어린 조우를 계속 했고 더욱 경계감을 상실한 폭주 기관사는 하차감을 만끽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술집 책상에 올라가 오줌을 휘갈기는 선배의 모습에 아주 유의미한 감동을 받았던 나는 뭐라도 해보고 싶었고 학교 정문 앞 궁전 노래방 횡단보도 한 가운데에서 오줌으로 내 이름을 써갈겼다.
다음 날 나의 무용담은 나를 아는 주변인들에게 별 충격이 되지도 못 했으니 나는 어떤 사람이긴 했었을까?
3학년 생일 날에는 500cc잔에 부유물이 섞인 소주를 원샷하고 술집에 들어간지 20분 만에 리ㅏ동아리 방으로 리어카에 실려왔다.
후배는 이불을 덮어주고 집으로 갔고 다음날 아침 등교한 그 후배는 그 이불을 얼굴에 칭칭 감은 채 동아리 방 의자 밑에 들어가 뻗어 있는 나를 보고 너무 놀라 호흡 여부를 확인 했다고 한다.
20대 중반 이후부터 30대 초반까지 얕은 내 취미는 ‘독서’ 하나 뿐이었다.
달리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을 뿐더러 가장 무난하게 사람들과 떨어질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3등으로 졸업한 내 대학교 성적 증명서에서 그나마 평점을 올려준 것은 교양 과목들이었고 전공 필수나 전공 선택 과목은 거의 C로 도배 되어 있다.
아무튼 나란 사람은 '극강의 E 시절'에도 한 순간에 심연의 동굴로 깊이 내려가 버리는 양가적인 놈인지라 세상에 상처 받거나 사람들에 다치고 나면 '독서'로 돌아 갔었다.
그러나 산만과 공상의 총체인 나의 독서 누적량은 아주 적었고 그나마 결혼 이후에는 거의 책 한 권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다독과 다상량에서 길어 올리는 진짜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 된다.
결혼 이후 취미는 '육아'였고 이제 아이가 좀 컸으니 새로운 취미를 모색하려던 중이었는데 별 뜻 없이 시작한 금주와 그 방파제로서의 일기 쓰기가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 시작했다.
취미는 사전적 의미로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한다.
나를 간추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기 위한 방법에는 글쓰기 만한 것이 없다고 여기기에 이제 조금 꾸준해보려 한다.
좋은 한 문장을 뽑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모여 나를 좀 더 높은 수준의 행복 상태로 올려 줄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무엇이 당신을 즐겁게 하고, 가장 당신답게 만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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