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50일을 맞아 '금주의 실효성과 내 의지의 위기' 대한 일기를 쓰려고 했다.
모닝 똥을 싸며 블로그 앱을 켰는데 '지난 오늘 글'이라는 곳에 '3' 이 표시되어 있길래 들어갔다가 귀한 흔적을 발견했다.
10년 전 오늘의 글이었고 지금 내 딸의 태명이었던 '라미'에게 쓴 태교 일기였다.
둘러보니 그 당시 태교 일기가 주로 짧은 넋두리 형태였는데 그 날의 일기는 좀 길었다.
스스로에게 얻어걸린 기분으로 옮기며 오늘 일기를 '썼다'고 여겨 본다.
오늘은 마늘과 하니가 3박 4일간 횡성에 있는 기도원에 가는 날이다.
너무 보고 싶을 것 같아서 며칠 전부터 참 기뻤다.
'나무아미아멘'
첫째 날.(2015.2.8)
라미야.
어떠한 환해풍파가 있더라도 아빠가 버텨야 했고, 버텨내야 할 이유들인 이 분들과의 속초 여행 첫 날.
아침에 아빠는 사무실에 들려 쓸데 없는 일(교회 기숙사 재산세 감면 제도개선 건)을 좀 했어.
감면이 될 수 없는 교회 기숙사를 아빠가 과세 했다가 윗선의 정치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요즘이라 유쾌하지는 않는 시절이야.
10시 20분에 홍제역 4번 출구에서 할머니와 큰 아빠, 엄마를 차에 태웠어.
아빠는 어젯밤 잠을 푹 못 잔 이유로 사무실에서 많은 양의 커피를 먹은 상태여서 일행을 태우자마자 가까운 콩나물 국밥집에 찾아가 오줌을 누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했지.(콩나물 국밥을 먹은건 아니고 아빠는 이런 짓에 주저가 없어.)
할머니는 녹차와 견과류, 한라봉을 끄집어 내 드시고, 초코칩을 엄마에게 주며 다 먹지 말라는 잔소리를 곁들여주셨지.
아빠는 속도를 내서 2시간 반만에 속초에 들어 갔고.
점심으로 속초 중앙시장의 순대국밥을 택했어. 할머니는 순대국밥을 맛나게 드셨고, 석이 형(큰 아빠)은 속이 조금 안 좋다하며 오징어 순대 몇 점만 먹고 말았어.
우리는 속초 연수원(308호)으로 가서 짐을 풀었어. 할머니와 큰 아빠는 건물 내 산책을. 엄마와 아빠는 북카페에서 책을 조금 읽었어.
엄마는 '와일드', 아빠는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
새정치민주연합의 새로운 당대표가 '문재인'으로 결정되는 뉴스를 접하고 우리는 대포항으로 향했어.
난전 '민정이네'에서 5만원 어치 회를 샀고. 소주를 한 병 시켜 우리는 내일로 다가온 할머니의 생신을 축하 하며 건배를 했어.
큰 아빠는 속이 안 좋다는 오전의 일성을 뒤로 하고 회를 참 잘 먹더라.
엄마, 아빠는 튀김 골목에서 튀김을 21,000 원 어치 사고 맥주 두 캔을 사서 숙소로 다시 향했단다.
할머니는 취중이시기도 했지만 놀라운 식성으로 튀김을 또 드셨고, 우리는 이내 잠을 청했단다.
밤새 아빠는 쓰리 쿠션 코골이 소리에 깊은 잠을 자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찌 즐겁지 않은 첫 날이었다고 할 수 있겠니?
우리 라미랑 속초 또 와야지. 암.
둘째 날.(2015.2.9)
할머니가 제일 먼저 일어나셨고, 큰 아빠가 일어났어.
아빠랑 엄마도 일어났고. 엄마가 방에서 샤워를 하고 있어서 아빠는 지하1층 사우나실로 내려갔어.
사우나실에 큰 아빠가 이미 와 있더라.
방으로 올라와서 꽃게짬뽕 라면과 할머니가 가져온 갓김치로 아침을 먹고.
아빠와 엄마는 한 시간정도 잠을 더 청했어.
짐을 싸서 나온 우리는 추억의 '켄싱턴 호텔'로 향했어.
아빠가 할머니, 큰 아빠랑 20년 전에 왔던 설악산 국립공원 초입 근처의 호텔...
우리는 설악산 입구까지 그저 드라이브만 하고 서울로 바로 향했어.
할머니는 오는 길에 연신 '미식 여행으로서의 즐거움'을 얘기하셨고.
아빠는 뿌듯 했단다.
조금 더 일찍 천형의 인생(할머니는 도망다녀야 하는 남편을 만났고, 장애인 막내 아들을 키워냈고, 큰 아들은 어떤 시험을 12번 만에 합격)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이 즐거움들을 누리셨어야 하는데.
지나간 시간과 과오, 아쉬움 덩어리들은 붙잡을 수도, 붙잡는다고 터트릴 수도 없는 것들이고.
이제라도 할머니가 스스로와 주변을 조금 더 통 크게 용서하고 세상을 즐기다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야.
점심으로 서오릉 추어탕 집으로 갔는데 1시 반 쯤이었는데도 손님이 가득 차 있더라.
우리는 맛나게 먹었고.
할머니는 우리가 드린 50만원 생신 축하금에 감사하여 점심 밥값을 내시고 집으로 가셨단다.
아빠와 엄마는 집에 와서 청소를 했고. 엄마는 뜨개방(너에게 줄 핑크색 무릎 담요 선물 만들러)으로 향했고 아빠는 이렇게 너에게 몇 글자 쓰고 있어.
이번 여행을 무사히 시작하고 끝낼 수 있게 해준 큰 아빠에게 제일 감사하고, 엄마에게 그 다음 감사하고. 나의 엄마로서 견뎌준 할머니에게 감사해.
각 감사의 성격과 내용, 색채는 다 조금씩 다르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섞여 들겠지.
라미야. 감사해.
라미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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