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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론과 언론.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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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고민을 거듭하다 배우 김새론의 죽음에 대한 일기를 올린 후.

어제 저녁부터 이상하게 내일 일기는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속에서 '무엇'인가가 쏟아져 나와 버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벽에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이 나를 또 눌러 두드리게 한다.


아래는 세월호 때 끄적였던 글(2014.4.19)의 일부다.



사과라고는 있을리 없는 3류 쓰레기 찌라시 언론들의 광폭한 오보놀음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고가 있고 100시간이 넘도록 초기 탈출자를 제외하고 한명의 구조자도 없는 이 상황에서 공영방송은 여전히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깔고 생사가 확인되지도 않은 학생들의 문자를 성우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고 메이저 언론과 방송들은 온갖 속보와 특집 놀음이다.

'언란' 수준이다. 며칠 전부터 네이버 포털 대문에 올라 있는 '구조 상황 속보' 창을 볼 때마다 참으로 불편하고 낯뜨겁다.

계속 지껄여야하는가?

울부짖는 가족들의 얼굴을 최소한의 인간의 마음으로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여다 보았다면 어느 선부터는 '침묵의 예의'를 좀 더 고려해야 할 것 아니겠는가? 너무 잔인하다.

언론의 여러 역할들이 누더기가 되었지만 객관적 정보 제공의 기능이라도 담보해내려면 특히 사회적 재난을 대하는 것에 좀 더 엄격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인이 된 배우 김새론과 관련한 동일 언론사들의 사망 전 보도와 사망 후 보도.

사망 전 파이낸셜뉴스, 조선일보, OSEN 기사 제목과

사망 후 파이낸셜뉴스, 조선일보, OSEN 기사 제목이다.


11년 전하고, 변한 것은 없다.

만찬에 올라온 '메뉴'만 바뀌었을 뿐이다.

주방장(언론)이 신경 쓰는 것은 '맛'이나 '풍미'가 아니다.

식재료의 신선도와 나이프의 연마도 뿐이다.

물론 회전율은 신경 쓰지만 평점이나 손님의 만족도, 행복감에는 신경을 쓰는 법이 없다.


언론은 입법, 사법, 행정의 뒤를 이은 제4의 권력이라고 하는데.

과연 'The forth estate'(제4부)가 맞는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명확한 '제1부'다.


언론은 3부의 통제를 받는 것 같지만 정작 그들은 4부의 드리블과 꽃놀이패 하에 있다.

4부는 기성복만을 입지 않는다.

기성복, 맞춤 정장, 연미복, 제복, 예복, 운동복, 원피스, 래쉬가드 등 모양과 빛깔과 형태는 다양하다.

3부는 교체된다. 권력의 부침에 따라 이양 되고 권력은 유한하다.

4부는 영원하다. 언론은 여론을 먹고 여론은 무형의 변화무쌍한 형태를 띤다. 그 무쌍함이 무한의 권력을 추동한다.

독재 권력이 들어와도 언론이라는 홍보 수단, 여과 장치는 필요하기 때문에 언론은 잠깐 웅크려 버티면 된다. 곧 자신의 숟가락을 되찾아 거친 호흡으로 식욕을 채울 수 있는 시기가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나무위키에 나온 '언론'에 대한 설명이다.


'개인이 말이나 글로 자기의 생각을 발표하는 일. 또는 그 말이나 글. 기자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신문, 인터넷, 방송사 등 매체를 이용해 그 정보를 뉴스의 형태로 보도하고 때로는 자신들의 주장을 논설하는 일.

사전적으로는 정보전달, 여론형성, 의제설정, 환경감시, 오락제공의 5대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야말로 엄청난 무소불위의 권력과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엄중한 의무감와 책임감을 수반하여 제 기능을 발휘하려고 발버둥을 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중립'이나 '불편부당'이라는 탈을 쓰고, 실은 교묘한 편파와 저열한 선동질로 개인과 집단의 호흡기를 떼어 버리는 짓을 변함 없이 일삼고 있다.

개인의 치부. 특히 연예인의 실수는 그들에게 오락 거리이자 즐길 거리이다.

황색지와 정론지를 가릴 것 없이 부부젤라를 불어 대며 폭주 기관차를 멈추지 않는다.

그 끝은 지극한 한 개인의 '죽음'으로 익숙하게 귀결되고 언론은 환복을 준비한다.


'자살'이라는 칭해지는 죽음들은 안타깝다.

그것들 중 많은 것들은 과연 '자살'일까? '타살'일까?

꿈 속의 내가 실체이고 실체가 꾸고 있는 꿈이 현실인 상태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참 많았으리라.


연탄재 함부로 던지면 안 된다.

연탄재에도 멍이 든다.


우리는 아프더라도 가끔은 그 아픔 속에 머물러 나를 조용히 그대로 유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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