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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만으로는 안 된다.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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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두 여자들이 교회 가려고 서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몸이 무겁기도 하고, 뭔가 부끄러워 이불 속에서 나가지 않았다.

딸이 방에 들어와 입을 옷이 없다고 툴툴 거려도, 마늘이 시간 없다며 딸래미를 채근하는 소리가 들려도 나가지 않았다.

교회까지 상전 두 분을 데려다 주는 잠깐과 집안 청소 드립 치는 것으로 '입교'를 지연하고 있기에 내가 일요일 아침에 운전대를 잡지 않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사과할지. 무슨 말로 어제 밤을 물어볼지 생각이 많았는데 나는 유치한 겨울잠 모드를 선택했다.

대문 여닫히는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정을 마치고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남은 곱창 전골을 남김 없이 먹고 청소를 시작했다.

빨리 마치고 커피숍에 가서 나에게 온전한 '쉼'을 하루 부여하고자 했다.

전동 걸레 청소기를 충전기에 연결하고 노트북을 켰다.

전기를 흡입하고 있는 건 청소기였는데 블로그 속 어제의 내 속아지에 대한 이웃님들의 귀한 답글. 위무와 충고가 찌릿찌릿 나를 채워줬다.

한 달 여 만에 아파트 헬스장에도 가려 했는데 탄핵 선고일이 다가온 차에 오랜만에 정치 유튜브까지 탐식하고 나니 시간은 오후 3시가 넘어 가고 있었다.


불현듯 문자 하나를 날렸다.


'자니까 좀 낫다. 어제는 미안. 몇 시에 끝나니? 교보 문고나 가자'

툭 던졌는데 답이 바로 왔다.

'4시경?'

사과 한 마디 없이 한 입 베어 먹은 느낌.

교회에 도착해서 30분 기다리니 두 여자가 나왔다.

"아빠, 교보문고는 다음에 가자. 숙제하고 방청소 할꺼야."

두 입 베어 먹었다.


집에 와서 마늘이 낮잠을 잔다길래 딸이랑 집 앞 치킨 집에 가서 닭똥집과 마약 감자튀김을 맛나게 먹고 있었다.

"오빠 어디야? 왜 둘만 나간거야?"

"너 낮잠 잔다길래. 뭐 좀 사갈까?

마늘은 새초롬해졌고 나도 좀 구겨졌다.

집에 와서 블로그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저께 올린 할머니와 딸래미의 춤 동영상을 딸이 보았다.

"아빠! 내 꺼 올리지 말랬자나!"

방에서 마늘이 나왔다.

"오빠. 저번에 안 올리기로 했자나!"

망했다. 지웠다.

소중한 답글과 성원을 보내 주신 이웃님들께 심심한 사과와 양해를 구한다.


수학 숙제였다.

'사과가 72개 있었는데 아빠가 9분의 4개를 먹고, 엄마가 8분의 3개를 먹고 나머지를 딸이 먹었다면 누가 제일 많이 먹은걸까요?'

문제가 기가 막히게 우리 집과 같은 상황이었다.


"아빠. 이거 풀어줘"

"이거 너 다 배운거 아니야? 보자 그럼."

뭔가 퉁명스러웠나보다.

나는 '화'가 아니었는데 어제 하도 난장을 부려 놓은지라 더 그렇게 느꼈나 보다.

"아빠. 하던거 해. 왜 또 화내는거야? 아빠 요즘 엄마가 1번 화낼 때 아빠는 10번 화내는 거 알아? 아빠 처음에 작가 되었다고 신나 하더니 요즘 더 화 많이 내는거 알아?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뭐가 더 중요한지 생각 좀 해봐"

5분도 넘게 딸이 말했다.

"그만 좀 하면 안 되겠니?"

딸은 울음이 터졌고 나는 멍 하니 10분 넘게 창 밖을 봤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비문이 하나도 없었다. 내 딸이 정말 많이 컸다.

여행 가서 마늘이 엄마한테 '어머니 손녀는 저와 오빠 성격의 장점만 섞여 있어요'라고 말했었는데 정말 맞는 것 같다. 마늘과 나는 우리 세 가족 중 딸이 제일 낫다는 말도 많이 나눴었다.


사무실에서 몇 주간 스트레스가 심하기는 했지만 나는 금주 후 읽고 쓰는 삶으로의 안착으로 내 감정의 상태와 그 발현의 형태들이 괜찮았다고 여겼는데 전혀 아니었다 보다.

나의 '화'들에 대한 정교한 분석과 반성, 치유의 시도가 필요하겠다.

무엇이 중요한가, 내가 결국 어떠한 것들을 추구하고 그에 맞는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지 생각을 차차 깊이 해보아야겠다.


이내 감정을 다잡고 숙제를 마치더니 방청소를 위해 수납함을 사러 다이소에 가자고 한다.

착한 딸이 손도 내주었다. 나는 유난스레 딸 손을 꼬물락 했고 이쁜이는 오랜만에 볼에 뽀뽀도 해주었다.

집에 와서 한 시간 정도 수납함을 같이 조립했다. 배고프다기에 물만두도 뎁혀 줬다.

딸은 청량하게 신이 나 있었고 나는 이런 전차들 속에서 마음 다짐을 계속 했다.


제 아무리 용렬한 아빠가 앞 뒤 없는 '화'와 '속아지' 살들을 쏘아 대도 그것을 수렴하여 다시 본연한 '사랑'의 부드러운 덩어리로 게워주는 딸한테 깊은 고마움이 일렁인다.


딸을 폭 안고 잠자리에 누었는데. 재잘재잘이 끝이 없다.

'아빠. 다음 주말에는 반지 공방에 가자. 나 이제 슬라임은 안 할래.'

'아빠. 7급에서 6급 되는 건 얼마나 걸려?'

'아빠. 엄마도 아빠처럼 술은 안 마시면 좋은데 그런 일은 안 일어날 거 같아.'

'아빠. 내일 점심 때도 나 밥 주러 올꺼지? 난 아빠가 와야 좋아.'

꽤 오래 조용하길래 잠든 줄 알았더니. 울고 있다.


"아가. 왜 그래?"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 집도 안 팔리고 바닷가에서 넘어져서 피도 났어. 날씨 추운데 맨날 보일러도 안 키고"


한 번 더 안아주니 금방 잠이 든다.


우리 딸. 많이 컸는데.

이제 좀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


'사과'만으로는 안 되고 어떠한 '기여'를 통한 '신뢰'를 회복해야 되는데 그것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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