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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일의 기적

by 하니오웰


행동이 습관으로 자리 잡는 시간은 66일이 걸린다고 한다.


영국 런던대학(UCL)의 필리파 랠리 교수 연구팀이 '유럽 사회심리학 저널'에 2009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새로운 행동이 습관으로 자리 잡는 데는 66일이 걸린다고 발표했다.

우리의 뇌는 익숙함을 추구하고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려고 하면 위협을 느끼고 방어적으로 변하는데 방어적 태세를 깨기 위한 필요한 시간이 바로 66일이라고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인간행동연구 전문가인 웬디 우드는 뇌과학과 심리학을 접목해 습관의 형성원리와 작동방식을 분석하여 '습관 설계의 법칙'을 5단계로 제시했다.


1단계 : ‘주변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성’하는 것.

2단계 : 불리한 환경은 최소화하는 대신 유리한 환경은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마찰력을 활용’하는 것.

3단계 : 동기를 자극할만한 ‘자신만의 신호를 포착’하는 것.

4단계 : 언제나 기대 이상으로 ‘보상’하는 것.

5단계 : ‘이 모든 것을 반복’할 것.


나는 66일 전 '음주'를 스톱했고 '일기'를 스타트 했다.

웬디 우드의 법칙에 적용해 보자.


1단계 - '주변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성'


현시점 나에게 가장 영향력이 강한 딸한테 말했다.

"아빠. 이제 술 안 마셔볼래"

"하든지 말든지."

주변에도 말했다.

반응은 심드렁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일상은 '음주'와 합일 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2단계 - '불리한 환경 최소화, 유리한 환경 극대화'


고민했다. 힘주지 않고 시작했지만 금연 1년을 달성해 가는 시점이라 금주에 있어서도 뭔가 덩어리를 만질 수 있을 때까지 나아가보고 싶었다.

네이버 카페를 검색하니 '금연금주나라'가 있었고 게시판을 살펴 보니 '금주일기' 게시판이 있었다.

금주를 시도하는 분들이 담담한 도장깨기 일기를 쓰는 장이었다.

나도 숟가락을 얹었다. 처음에는 단문이었다.

'금주 3일차 입니다. 오늘 약속이 있는데 사이다로 버텨보려구요.'


3단계 - '자신만의 신호를 포착'


문장의 길이가 점점 늘었고 답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불현듯.

'블로그에다 옮겨볼까?'

오래 전부터 내 개인 창고로 쓰던 비공개 블로그가 있었는데 공개로 전환해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기하게 조회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글도 조금씩 신경을 써서 쓰기 시작했다. 금주를 지키는 방편으로 블로그 일기 쓰기가 아주 좋은 추동 장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회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루에 한 번씩 내 엉덩이 힘을 가늠해 보며 글을 쓴다는 것은 좋은 효과를 주기 시작했다. 나와 내 주변을 좀 더 면밀히 살피게 되었고 흘러 다니던 생각들이 정리되었다.

반환점(33일)이 지났다.


4단계 - 기대 이상의 '보상'


34일 째.

브런치 작가에 통과 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4년 전에 떨어졌던 브런치.

그 때는 27살 때 썼던 습작 소설을 붙였다가 낙방했다.

이번에 역시 별 기대 없이 금주 일기 중 하나를 집어 올려서 냈고 앞으로 발행하고 싶은 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일기를 쓰게 되면서 사람과 세상을 좀 더 섬세히 관찰하여 톺아 볼 때 차오르는 내면의 충만함들을 담담히 기록해 갈 것이다.'라고 썼다.

기대 이상의 보상이었고 뭔가 하나의 입각점이 세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좀 더 제대로 써보자고 생각했다.


5단계 - '이 모든 것의 반복'


나는 계속 쓰기 시작했고 오늘도 이러고 있다.

일기 쓰기의 장점, 금주의 좋은 점들은 이미 술회하였기에 또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내 친구의 9할을 차지하는 음주인들은 삐걱삐걱 나를 이해해 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놈년들이 다 날아가 버리는 거 아닐까?' 라는 걱정도 했는데.

지금은 걱정이 없다. 그래서 날아갈 알코올들이라면 그 양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사람들이 더 오롯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숱한 망각의 순간 동안 놓쳤던 조금 더 깊은 수준의 마음들이 신기하게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좋은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 신이 난다.


나는 3월부터 귀한 이웃님 '사랑주니' 님이 리드하는 '미라클 모닝'과.

'힐러레나'님이 준비하신 '마음 치유 여행'을 시작한다.

일기를 올리다가 소중한 인연이 된 여러 분들과 역사탐방 신년회도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힘들 때 익숙인들과의 카톡 징징거림으로 끝나지 않는 더 깊은 밀도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글벗님들이 꽤 생겼다.

이 모든 변화는 단지 한 가지를 시작했기 때문이었고, 한 가지를 더 실천함에서 비롯된 '66일의 기적'이다.


언제 나의 '금주'와 '일기'가 멈출지는 모르지만 조금 더 해보고 싶다.

어제 내 보석이 물었다.


"아빠! 금주 목표가 며칠이야?"


"일단 100일?"


"아빠. 1년 가자. 100일이 모냐?"


산다는 것은 내면의 충동과 세상의 욕망과의 끝없는 합주곡일 것이다.

내가 기투해 가야할 세상과 환경이 나에게 어떻게 작동되어 왔고, 이대로 지속되었을 때 자신이 어떠한 처지가 될 수도 있겠는가에 대해서 조금 신중한 예측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자.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조금 바꿔 삶을 단순하고 쉽게 만들어 가면.


움켜쥔 어떤 그대로의 삶을 내려 놓는 순간 '습관의 기적'이 시작될 것이고 마법은 끝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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