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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무원 일기 5.(서대문 세무서 2.)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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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2005년) 세무서 징세과는 징세팀과 정리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징세팀'은 환급 업무, '정리팀'은 체납 세금 업무를 하는 팀이다.

납세자가 세금을 기한 내 납부하지 않으면 독촉을 하고 이후에도 납부가 안 이루어지면 재산 압류 및 공매, 각종 행정 제재를 진행하여 체납을 정리하는 팀이다.

월말이 되면 각자 맡은 동의 체납액 정리율과 체납 처분 실적을 복명하려 세무서장실에 쭈욱 줄을 섰다.

그 복명일에 서장(그 당시는 모두 남자)의 심기가 불편하면 젊은 남직원들이 대가리의 욕받이, 감정받이 역할을 톡톡히 했으니 세무서의 방파제 같은 팀이었다.


아줌마는 립스틱이 여기저기 얼굴에 번진 채로 들어왔다.

화장실 정사씬을 치르기에 그 당시 서대문 세무서 건물의 상태는 조악하기 짝이 없었는데 아줌마의 달뜬 표정과 번짐 정도를 보고서 나는 엉뚱한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이어 들어오는 남정네 새끼(기둥 서방)는 예상대로 혀가 살짝 꼬여 있었다.

술냄새가 진동 했고 득달같이 과장님 탁자로 향했다.

키는 180cm 가 넘는 장신이었는데 다리를 조금 절었다. 설마 방금 촬영분 때문은 아니었겠지?

당시 징세과장은 머리가 곱슬이었고 성격은 유들유들하고 얄팍했다.

그 기둥이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쥐도새도 모르게 없어졌다. 마침 퇴근 시간이어서 그 행동에 대한 자기 정당성은 스스로 확보한 상태였겠지만 그 커플의 등장과 동시에 과장의 행보부터 살핀 내가 보기에 그 연속적인 쇼츠의 비굴한 부드러운 이어짐은 참 가관이었다.


"김ㅇㅇ이 누구야. 씨발새끼야 빨리 압류 풀어!"

팀장님은 나에게 탁자로 오지 말라는 말씀부터 하셨고 차장님과 허. 공. 조사관 세분을 배석시키셨다.

세무서에서 직원간 호칭은 '조사관'이다.

지방직의 호칭이 '주임'인 것에 비해 간지가 몇 배는 더 난다고 지금도 생각하는 바이다.


"선생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줌마가 작은 목소리로 "아니 제가..."

기둥 새끼가 말꼬리를 낚아 채고 "씨부릴 필요 없고 이거 압류부터 풀어"

"서류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팀장님은 서류를 보려 손을 내밀었고 남자는 힘을 주어 뿌리치려 했다.

"니까짓게 뭔데 이걸 보려 그래? 여기 총책임자야? 서장 나오라 그래!"

체납 세목은 부가가치세였고 업종은 화장품 소매업이었다. 체납금액은 700만원 정도로 아주 고액 체납자는 아니었다.


"부가세과 김계장 좀 빨리 오라 그래요!"

부가가치세의 세율은 10%로 고정몫이고 산출세액은 물건값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최종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이며, 사업자가 그러한 구조의 세목에 대한 사실 판단이나 부과의 정당성을 따질 여지가 적은 세목이었다.

카드 매출액 신고 누락분을 고지 했던 건이라 명백히 오류가 없는 부과건이었으므로 굳이 부를 이유가 없었는데 팀장님은 같은 층 옆 과 팀장님을 부르셨다. 아침마다 세무서까지 나를 카풀해주시는 점잖지만 풍채가 있어 위압감을 주는 팀장님이셨다.

두 분이 일어서서 몇 마디를 나누시더니 김계장님은 다시 본인 사무실로 돌아가셨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헐리우드 액션이었다.


"일단 서류를 봐야겠습니다."

실랑이가 다시 시작되었고 그 새끼가 거칠게 잡아 당기는 바람에 종이가 반으로 찢어졌다. 공조사관님이 튕겨 넘어지는 팀장님을 부축해서 잡았다.

"경찰 불러" 팀장님께서 소리치셨고 1분도 안 되어 경찰 3명이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네 드잡이 때문에 이미 1층에서 대기 중이었다.

기둥이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

"저 새끼들이 공문서를 위조하고 공문서 파기까지 시도했어요. 다 잡아가 주세요!"라고 소리 질렀다.

설왕설래가 거듭되었고 몇 분 뒤 경찰 한 명이 그 놈한테 말했다.

"선생님 이거 말씀을 들어 보니 선생님이 공무 집행 방해를 한 거 같은데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하시죠?"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 저 놈들이 나를 폭행하고 증거인멸하려고 공문서까지 찢어버렸다구요! 경찰분들은 고생스러우시겠지만 저는 저 놈들을 심판하고 싶습니다!"

당당하고 쓸데 없이 경건하고 깍듯했다. 참 병신이 아닐 수 없었다.


팀장님과 대화를 더 나눈 몇 십분 뒤 아까 그 경찰분이 "담당자랑 이 탁자에 있던 분들 모두 경찰서로 가셔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체납자 본인(여자)은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며 기둥이를 말리려 했지만 기둥이의 격조를 갖춘 패악질의 수위는 낮아질 기미가 없었다.

팀장님은 과장님과 총무과에 상황 보고 전화를 했고 과장님이 돌아오셨다. 1층 경찰 옆에서 게슴츠레 대기중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지금 막 든다.

나를 포함한 과세 관청 공무원 다섯 명과 체납자 가족(?) 두 명이 이동했다. 서대문 경찰서 였고 경찰차 세 대에 나눠 탔다. 꽐라가 되어 집까지 경찰차로 실려 간적은 많이 있었지만 피의자 신세로 탄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매우 쿵쾅거렸지만 무언지 모를 설렘과 기대가 있었다. 물론 팀장님 이하 선배님들한테 엄청 죄송스럽기는 했다.

엄마한테는 전화를 걸어 별 일은 안 일어날 거라고 걱정 말고 주무시라고 전화했고 예상대로 엄마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다.


대기 시간이 좀 길었다. 돌아가면서 조사를 받았다.

나에게도 체납 세금의 종류와 금액, 그 전 전화 응대 이력과 당일의 상황에 대해 긴 호흡으로 물어보았다.

질답 말미에 더 할 말이 없냐고 묻기에 '팀장님과 선배님들은 전혀 귀책 사유가 없고 저 놈이 이 모든 패악의 중심이며 체납자 여자도 불쌍해 보이고 특히 남자가 취한 상태였음은 분명하다'고 강변했다.

경찰서에 같이 간 직원분들이 다 흡연자였고 갑작스런 방문으로 모두 담배가 떨어져 있었는데 경찰 한 분이 담배 다섯 갑을 사다 주시며 "힘드시죠? 같은 공무원끼리 힘냅시다"라고 말하고 가셨다. 그런 착한 분이 지금쯤 '경정'은 달고 있어야 좋은 세상인건데 세상은 보통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이후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마음이 만만디하게 쫙 풀렸으리라. 중간중간 팀장님은 나한테 "신경쓰지마. 별 일 아니야. 우리 나가서 쇠주가 찐하게 빨자"며 힘을 북돋아 주셨다. 감동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린 기억은 없다. 긴장을 계속 하고 있었으리라.


그 놈은 역시 남편이 아니었고 깽판 이력도 꽤 많았던 놈이었다. 상황은 명백한데 조사와 대기가 길어져서 나는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우리는 경찰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다들 지쳐 있었지만 팀장님은 마음 풀러 가자고 하셨다. 두주불사 팀장님은 역시 다 계획이 있었고 단골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선지 해장국에 소주를 시켰다. 그 당시는 계속 자기 잔을 서로 돌리며 취해 가는 술자리 문화였다. 그 날은 무례하게 내 잔을 계속 '가갸거겨' 선배님들한테 돌렸던 것 같다.

내 동갑 사수도 그 새벽 술자리에 참석했다. 남직원은 '전원 출석'이었다.

동갑놈은 전선에 합류하지 못 한 것을 아쉬워 하며 싸디 싼 뻐꾸기를 계속 날렸고 그 때만 해도 그 놈이 티꺼웠던 때였지만 그 날 만큼은 모든 것이 정다웠고 고마웠다.

한 시간 정도 만에 우리는 참 많은 술잔을 비웠고 옷은 갈아 입고 출근해야 하기에 일단 헤어졌다.

엄마는 깨어 계셨고 잠 못 잔 나를 첨언 없이 걱정하셨다.


두 시간 뒤 출근하니 과장님이 독수리 오형제를 불러 세우고 전직원한테 박수를 치라고 하셨다.

그 알량함이 참 역겨웠다. 그 과장은 나중에 서기관까지 달았다. 전 날의 직원들의 무용담을 잘 포장해서 여기저기 알량한 자리에 부족치 않게 써먹지 않았을까 사료되는 바이다.

그 날의 이야기는 이후로도 세무서에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나는 국세 공무원 첫 해에 값진 경험을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봐도 많은 똘아이와 진상을 만났지만 그 날이 가장 스펙터클 했던 날이다.


기둥이는 공무 집행 방해로 처벌을 받았고, 선처를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는지 체납자는 며칠 뒤 체납액을 모두 납부했다.


나의 서대문 세무서 첫 해는 그렇게 좋은 멤버와 좋은 추억 하나를 분명히 쌓고 막을 내려갔다.

그 짭놈 덕에 '두 발 달린 체납자는 잘 해줄 필요가 없다'라는 나의 두고두고 금언을 그 해에 깊이 매조지할 수 있었다.


방금 서대문 발령 동기 형님한테 카톡 하나가 왔다.

"오늘 서에서 20주년 기념패 준대"

형님은 오늘 아들래미 고등학교 입학식인데 안 가고 기념패를 선택 했다.


의리와 낭만이 있던 참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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