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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담임의 허언증과 닭발

by 하니오웰


내가 아니다.

달그락 달그락. 그럴리가 없다. 내가 누워 있는데. 아직 너무 멍한데. 상습범은 나인데.


문을 열었다. (3.5 am 3.5.)

식탁 옆에 딸이 주저 앉아 있다. 표정이 좋지 않다.

엊저녁에 비닐 장갑을 두 번이나 새로 끼워가며 닭발을 계속 우적거리더니 탈이 난 것이다.

"물은 좀 마셨어?"

딸이 좋아하는 매운 닭발을 해준 마늘이 약을 찾다가 물었고 힘겹게 고개만 끄덕인다.

망했다. 오늘 취득세 신고 창구 당번인데 다시 누워서 잠들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3시간 취침. '불면의 악순환'이다.


문을 닫았다.(3.4 pm 11.57.)

그저께 만큼은 아니지만 멜라토닌 덕에 졸음은 쏟아졌고 왠지 오늘 새벽은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딸래미가 쓴 '교통량을 줄이자'라는 독서 감상문을 읽고 세금과 연결시킨 부분이 참신해 블로그에 올렸다.

교통 문제를 줄일 두 가지를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자동차 소유 대수에 비례하여 자동차세를 매긴다. 둘째, 친환경차 사는 사람들에게 현금 지원을 해준다.

자동차세는 차량별로 부과하고 있으며 전기차 보조금 상한선은 낮아졌지만 친환경차에 현금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딸의 생각들은 기시행 안들이라 반영될 여지는 없다.

다만 나는 저 생각들이 온전히 아이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면 꽤 기특하고 귀엽다고 생각했다.


문을 열었다.(3.4 pm 8.55.)

'힐러레나' 님이 주관하시는 '마음 치유 여행 1강'이 있는 날이다.

잦은 반성에도 개선 없이 연속적으로 화를 내는 나를 두 여자가 들어와서 비웃길래 강의가 곧 시작하니 꺼져달라며 화를 냈다.

레나님의 잔잔한 목소리만으로 힐링 되는 앞타임 강의를 잘 듣고 명상 시간을 가졌다. 나는 저번 주 오리엔테이션 때는 어린 시절 마음의 고향인 '기자촌'을 떠올렸는데 오늘은 열흘 전 나의 삼각형과의 서천 여행 때 '할머니와 손녀가 마주보고 춤추며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레나님은 강의 시작 전보다 나의 표정이 훨씬 편안해지고 밝아졌다고 하셨다.


문을 닫았다.(3.4 pm 7.10)

칼퇴하는 매일과 달리 오늘은 야근을 좀 했다. 딸이 수영 학원을 갔다가 7시 20분에 집에 오는 날이라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작년 11월분 취득세 신고서를 편철했다. 11월은 거래량이 전 달보다 줄어서 홍제3동 신고서가 얇은 두 권으로 나왔다. 신고 창구가 좀 한산해진 것은 좋지만 세수가 부족하다며 쥐어 짜내기 식의 기획 추징 건이 내려올까 두렵다.


문을 열었다.(3.4 pm 2.29)

안 그래도 새로 바뀐 담임 선생님이 무척 궁금했는데 마늘이 따님과 통화를 했나보다.

바뀐 담임 선생님은 할머니 선생님인데 본인은 '애들이 실수를 해도 내 탓이려니 생각하고 혼내지 않는다'고 자기 소개 시간에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딸이 국어책을 두 권 가지고 와서 다 이름을 써버린 것이다. 실수로 잘못 가져온 것을 알고 다시 나와 돌려드렸더니 선생님께서 '왜 두 권을 가져갔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딸이 많이 상처 받았을까 마늘이 걱정스러워 무서웠냐고 물으니 '그냥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고 한다.

우리 딸을 또 깨달았다. 엄빠한테는 예민하지만 밖에서는 쿨한 아이.

마늘은 이따 저녁에 딸이 좋아하는 닭발을 해준단다.


문을 닫았다.(3.4 pm 2.2)

장모님께 전화를 드려 4월에 서천 연수원에 같이 놀러 가시자고 말씀을 드렸고 언제나처럼 흔쾌하셨다.

장모님께서는 사돈도 같이 가시냐 여쭈셨고 나는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사돈끼리 빕스 포도주 메이트임은 확실하지만 여행은 아니라 여겼다. 한 분이 주도권을 점유할 것이라 다른 한 분은 그림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닌가? 또 그 자체의 추억과 의미가 있으려나? 다음엔 같이 가볼까?


문을 열었다.(3.4 am 11.50)

독수리 6형제랑 점심을 먹었다. '기가 막힌 물닭갈비'. 5명은 처음이었지만 만족해 했다. 미리 주문을 해놨어야 했는데 결국 볶음밥을 못 먹고 나왔다. 내가 계산하려 했는데 업무 능력은 물론 인성까지 겸비한 사기캐 동생이 긁었다. 나를 미소짓게 했다. 구청 1층 카페에서 생색을 내고 자리에 돌아오니 정각이었다.


문을 닫았다.(3.4 am 10.6)

편철을 하다가 누가 뭘 물어보길래 세무사 친구한테 강남세무서 체납 추적팀에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려 전화 했다. 그 서 법인팀에 있는 교육원 때 친했다가 소원해진 형님과 민원실에 있는 더 소원해진 동갑 친구에 대한 수다만 좀 떨다가 끊었다. 상담이 오늘도 많다고 해서 빨리 끊었다.

많이 부러웠지만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


문을 열었다.(3.4 am 5.59)

딸이 개학을 해서 아침도 점심도 자유라 기분 좋은 아침.

3월부터 '사랑주니'님이 주관하시는 '미라클 주니 6기'를 시작했다.

5시 30분에 일어나 책을 좀 보고 일기를 쓰러 서재방 방문을 열었더니 마늘이 새벽 기도 중이다. 조용히 옷을 갈아 입고 구청으로 출발했다. 운동을 20분 하고 미라클 모닝 단톡방을 키니 각자의 기상과 독서, 필사, 명상, 운동, 기도를 마치신 부지런한 동기님들이 빽빽하다.

오늘의 일기를 올리고 나니 9시. 10분 전이다.

카톡이 와 있다. 딸래미는 개학 첫 날이라 설렌다고 6시 반에 일어나서 갔다고 한다.

좋은 담임과 더 좋은 친구들을 만나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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