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으로 태어난 축복

by 생각의 결

아기의 100일 사진을 찍으러 셀프스튜디오로 가족들이 향했다. 작은 옷들을 챙기며 우리는 기대했다. 그런데 아무도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아기가 혼자 목을 못 가누는 것이었다. 결국 사진 찍을 때마다 누군가는 프레임밖에서 손으로 아기 목을 받쳐 균형을 맞춰줘야만 했다. 우리는 100일이라는 날짜에 맞추려 했지만 아기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기가 스스로 목을 가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

남편과 나는 출산 전에 한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일을 언제까지 쉴 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난 만 3세까지는 내가 집에서 돌보고 싶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바빠 거의 보지 못했고 그것이 나에겐 관계에 대한 불안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에게는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반면 남편은 아기가 3개월 정도 되면 일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이야기했다. 나 역시 현실적인 이유를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하지만 100일 촬영 이후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


"3개월이 되어도 아기는 할 수 있는 게 없네."


그때까지 아기는 대부분 누워있기만 했다. 스스로 몸을 뒤집지도, 목을 가누지도 못했다. 아기는 분명 빠를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혼자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때까지 훨씬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단계가 필요했다.

기린은 태어난 새끼가 30분도 안 되어 걷기 시작한다는 데 왜 인간의 아기는 이렇게 오랜 시간 타인의 품에 머물러야 할까.

인간은 여 타 동물과 다르게 미성숙한 존재로 태어나, 태어난 뒤에야 완성되어 간다. 그래서 인간의 아기는 오랜 시간 보살핌이 필요하다. 대신 그 긴 의존의 시간 동안 환경에 적응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워간다. 혼자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의 손에서 삶의 균형을 배워나가야 한다.


지금까지는 어른이 되면 스스로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보아도 안정을 찾고 힘든 일에도 버틸 수 있게 한 것은 수많은 관계들이었다. 그 관계들은 뿌리가 되어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보이지 않게 붙잡아 주었다.
그날 사진 속 아기를 받쳐주던 손처럼.


어쩌면 우리는 평생 보이지 않는 손위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