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거의 모든 인터넷 서점에서 한강 작가의 책들이 품절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책을 손에 잡지 않던 사람도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국가적 쾌거 아래 한강 작가 책을 구매하고 있는데요. 한강 작가의 책들은 유명하고 잘 팔리면서도 "모호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기분이 나쁘다"라는 리뷰를 종종 얻곤 합니다.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소개도 다음처럼 미사여구로 가득해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근작들을 통해 어둠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고투와 존엄을 그려온 한강 문학이 다다른 눈부신 현재를 또렷한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지 않은 비극적 역사의 기억으로부터 길어 올린, 그럼에도 인간을 끝내 인간이게 하는 간절하고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가 눈이 시리도록 선연한 이미지와 유려하고 시적인 문장에 실려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직관적인 걸 좋아하는 독자들은 출판사의 책소개를 읽고 "그래서 도대체 소설이 무슨 내용인데!"라며 울화통이 터지기도 하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직관적인 마케터의 한강 장편소설 7권 소개. (참고로 가장 많이 알려진 한강 작가의 작품 『채식주의자』는 장편소설이 아닌 3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연작소설입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통해 더 많은 한국인들 손에 꾸준히 책이 들리기를 소망해 봅니다.
7권의 소설은 초판 발행연도 순으로 나열되었습니다. 책제목을 클릭하면 더 자세한 도서 정보와 책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명윤은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이라는 따위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단지 멀리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고통이나 병이나 죽음을 알아낼 수 있는 힘조차 잃어버리고 말만큼 무력한 것이 사랑이었다.
1993년 등단 후 꼬박 3년간 집필에 몰두해 완성한 한강 작가의 첫 장편소설. 어느 날 한낮의 도심에서 발가벗은 채 도로를 달려 나가던 한 여자가 사라지고, 그녀를 알고 있는 두 남녀가 몇 가지 단서만 손에 쥔 채 그녀를 찾아 나선다.
내가 알게 된 것이란, 진실이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거였다. 실제로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났고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 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어난 상황에 가장 잘 맞는 행동을 하고, 그러고 나서 나에게 남은 감정의 찌꺼기들은 내가 처리해야 한다. 인내한다거나, 잊어 준다거나, 용서한다거나.
'라이프캐스팅'(인체를 직접 석고로 떠서 작품을 만드는 것) 기법으로 작품을 만드는 조각가 장운형 이야기와 우연한 기회에 그를 알게 된 '나'의 이야기가 매듭처럼 짜인 소설. 장운형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여주인공의 삶이 라이프캐스팅 작품과 어우러지며 기묘하고 낯선 느낌을 자아낸다.
난 말이지, 정희야.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 달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길 바란다는 말일 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막아달라는 말일 수도 있어.
촉망받던 한 여자 화가의 의문에 싸인 죽음을 두고, 각자가 믿는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치고 상처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 새벽의 미시령 고개에서 사십 년이란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난 두 차례의 자동차 사고, 그리고 그에 얽힌 인물들의 내밀한 사연이 진실을 캐묻는 화자 이정희의 기억과 힘겨운 행보를 따라 전개된다.
말語을 잃어가는 한 여자와 눈眼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여자는 어떤 원인도 전조도 없이 말語을 잃는다. 일상의 모든 것들을 다 놓을 수밖에 없었던 여자가 선택한 것은 이미 저물어 죽은 언어가 된 희랍어. 점점 눈眼을 잃어가지만 아마 일이 년쯤은 더 볼 수 있을지 모르는 남자. 가족들을 독일에 두고 십수 년 만에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치던 남자는 수강생 중 말을 하지도, 웃지도 않는 여자를 주의 깊게 지켜본다.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른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중학생 동호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 그 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정대는 동호와 함께 시위대의 행진 도중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져 죽게 되고, 중학교를 마치기 전에 공장에 들어와 자신의 꿈을 미루고 동생을 뒷바라지하던 정대의 누나 정미 역시 그 봄에 행방불명되면서 남매는 비극을 맞는다.
마침내 혼자 아기를 낳았다. 혼자 탯줄을 잘랐다. 피 묻은 조그만 몸에다 방금 만든 배내옷을 입혔다. 죽지 마라 제발. 가느다란 소리로 우는 손바닥만 한 아기를 안으며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절대로 더럽혀질 수가 없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 총 65개의 흰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 '그녀', 그리고 '모든 흰'이라는 세 개의 부 아래 소개된다. 한 권의 소설이지만 65편의 에세이가 담긴 한 권의 에세이집 같기도 하다.
생명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그때 실감했다. 저 살과 장기와 뼈와 목숨들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고 끊어져버릴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겨울 어느 날, 경하는 인선이 통나무 작업을 하던 중 사고로 두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는다. 인선은 병원을 찾은 경하에게 그날 안에 자신의 제주 집에 가서 혼자 남은 새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천신만고 도착한 인선의 집에서, 경하는 칠십 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얽힌 인선의 가족사를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