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비만대사센터 외과 박영석 교수입니다. 오늘은 비만대사수술에 대한 글은 아니지만 우리가 꼭 한번 생각해봐야할 "비만 낙인(obesity stigma)"에 대해 이야기보려고 합니다.
"질병 낙인(stigma)"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
한센병(과거의 문둥병)은 오랜 세월 동안 질병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큰 차별을 경험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한센병과 관련된 낙인은 단순히 질병 자체가 아니라, 이를 둘러싼 오해와 과장된 공포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한센병은 실제로 전염성이 매우 낮은 질병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 면역을 가지고 있으며, 감염되더라도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한센병이 치명적이고 쉽게 전염되는 병으로 잘못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오해는 환자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한센병은 치료받지 않을 경우 피부와 신경에 변형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외형적인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이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유발했습니다. 특히, 이 증상들은 ‘불결함’이나 ‘저주받은 상태’로 인식되면서, 환자들이 인간적인 존엄성을 상실한 존재로 취급받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비만 낙인: 우리가 외면한 문제와 해결 방안
비만은 단순히 개인의 잘못이 아닌,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병입니다.
내가 정말 다른 사람들보다 배고픔을 더 잘 느끼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내가 배부름을 더 못 느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은 꽤 있으실겁니다. 실제로 비만에 유전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는 상당히 많습니다. 다만, 어느 한 가지 유전자가 잘못되어 그런 경우는 굉장히 드물고, 여러 유전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유전적 원인을 쉽게 설명하긴 어렵고 그러니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과소평가되고 있습니다. 유전적 요인 뿐 아니라 여러가지 사회적, 환경적 요인은 비만에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며 개인의 책임 범주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비만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간주하며,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비만 낙인’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낙인은 사회 곳곳에서 심각한 차별과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비만 낙인의 원인
1. 개인의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
비만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문화가 비만 낙인의 핵심 원인입니다. 미디어, 광고, 심지어 공공 캠페인도 비만을 개인의 의지 부족 탓으로 돌리고 있어요. 비만에 대한 사회적·환경적 요인은 크게 간과되고 있습니다.
2. 정치적, 경제적 요인
다이어트 산업은 비만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며,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비만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수익을 위해 훨씬 좋습니다. 사회적, 환경적 원인을 해결하여 비만이 줄어들면 다이어트 산업 규모는 작아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자연스럽게 광고 역시 비만인을 주로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다이어트 제품이나 운동 장비를 통해 비만을 “개인이 극복해야 할 문제”로만 강조합니다.
3. 미디어와 문화 속 비만 낙인
미디어는 비만 낙인을 조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는 비만한 더즐리 가족(Dursley family)이 악역으로 묘사되며, 비만한 모습과 함께 탐욕스러운 행동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묘사는 비만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듭니다.
또한,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애니메이션에서도 비만인 캐릭터가 친구가 없거나, 비호감이며 ‘악역’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어린이들에게 비만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지요.
유튜브에서 비만인을 비하하는 영상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이러한 영상들은 개인의 노력 부족을 비난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요.
비만 낙인의 문제
1. 정신적, 신체적 피해
비만 낙인은 비만인 사람들이 우울증이나 불안 같은 정신 건강 문제를 겪게 하고, 심지어 체중 증가를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cortisol)이 과도하게 분비되며 건강을 해칠 가능성도 증가합니다. 비만환자들이 정신 질환을 동반한 경우가 다른 질환에 비해 너무 흔한데 이런 원인이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2. 사회적 차별
비만 낙인은 고용, 교육, 의료 서비스에서 심각한 차별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비만인 사람들이 동일한 자격을 갖췄더라도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할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의료진조차 비만인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고, 비만한 환자에게는 필요한 치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의 결론을 비만대사수술과 연관지어 내려보자면,
비만은 질병입니다. 비만인 환자들은 실제로 단 맛, 탄수화물에 더 중독적이고 (더 자극을 크게 느끼고), 배고픔을 더 자주 느끼고, 배부름에는 덜 예민합니다. 이런 '증상'을 치료해야만 비만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운동이나 칼로리 섭취를 줄이는 것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필요하지요.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적절한 '치료'를 함께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치료는 비만 약물이 될 수도 있고, 비만대사수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비만대사수술을 차갑게, 무슨 해서는 안될 수술을 하는 것처럼 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심지어 의사나 의료계 종사자들도 그런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자신들이 비만 낙인을 찍고 있는 줄은 알고 있을까요? 알면 아마 안 그럴 것인데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 봅니다.
비만대사질환 환자분들, 기운 내세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비만대사센터 박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