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장강명 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를 읽고 썼지만, 책 이야기보다는 책에 나오는 화두를 가지고 쓰는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두 편의 글을 통해 '말하고 듣는 나'와 '읽고 쓰는 나'의 개인적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지난 글에서 계속)
뱃속에 둘째를 품고, 유학 가는 남편을 따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파트타임 주부에서 전업주부로 커리어가 바뀌었다. 모국어의 공간을 떠나 낯선 타지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일상의 많은 시간이 세 살 딸아이와의 대화로 채워졌다. 아직 어리고 말랑말랑한 언어의 뇌를 가지고 있던 아이는 가끔씩 한국어 단어를 까먹고 영어로 대신했다. 미국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은 동네라 말벗이 없진 않았지만, 대화의 깊이는 얕았고 때때로 많이 외로웠다. 캐나다 교포 출신의 이웃 언니가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너처럼 어렵고 복잡한 한국어를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너랑 이야기하고 있으면 내 한국어가 너무 어린애들이 쓰는 말 같아."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제가 하는 말들이 그렇게 현학적이에요?" 말을 내뱉자마자 깨달았다. 너무 현학적이었다.
한국에서 쓰이는 한국어와 외국에서 쓰이는 한국어가 다르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일상의 언어들은 우리의 삶을 예쁘고 오밀조밀하게 채우는 소중한 말이지만, 일상의 언어들로만 채워진 삶은 공허했다. 그때쯤부터 부지런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이 해외생활이 나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학위를 얻었고, 큰 아이는 이중언어를 얻었고, 이곳에서 태어난 작은 아이는 이중국적을 얻었다. 뭐가 됐든 평생 자산이 될 무언가를 가족들은 하나씩 얻어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나에겐 무엇이 남았는가? 나에겐 포기와 희생이 남았다. 그리고 그것을 전부라고 인정하기 싫어서 아이 젖을 물리면서 틈틈이 책을 읽었다. 많이 읽으면 뭐라도 남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한 독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학위과정을 시작할 생각이 있었기에 '읽는 뇌'를 영영 퇴화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에서 책이 담긴 소포가 집 앞에 배달되었다. 부지런히 읽었지만, 1년에 책을 150권가량 읽는다는 장강명 작가처럼 책을 읽는 속도가 붙은 건 아주 나중의 일이다. 그때는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한 달에 세 권을 넘기기 힘들었다.
남편의 유학생활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나는 임신 3개월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큰 애가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니까, 아빠 말고 엄마가 학교 다닐 차례네?" 엄마의 대학원 졸업식, 아빠의 대학원 졸업식에 모두 참석했던 아이는 으레 엄마에게 다시 돌아갈 자리가 있다고, 다만 그 자리가 한국에 있기 때문에 엄마가 미국에서는 집에만 있었다고 생각했다. 동생도 아직 어리고, 뱃속에 동생이 한 명 더 있으니 엄마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때쯤 나도 내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풀릴지,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그리고 그런 고민 따위는 사치스러운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로 복귀한 남편은 해외로 장기 출장을 갔고, 수시로 야근을 했다. 임신한 몸으로 두 아이 독박 육아를 하다가 몸에 탈이 났다. 출산예정일이 아직 두 달이나 남았는데 아기가 나오려고 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산부인과 응급실에 입원을 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누워만 있어야 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침대에 누워서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읽는 행위가 일상을 꽉 채우는 시기가 도래했다. 셋째 출산을 하면서도 진통이 오가는 틈틈이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진짜 웃기는 산모였다. 책을 읽다가 진통이 몰려오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진통이 사라지면 다시 책장을 펼쳤다. 출산을 하면서도 책을 읽었으니, 애를 키우면서 못 읽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독서 시간을 확보하겠다고 가장 치열하게 발을 동동거리던 게 그때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1년에 세 자리 수가 넘는 책을 읽었던 것도 그 해부터였다.
셋째를 출산하고 넉 달간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키웠다. 출산 과정에서 몸이 많이 상하기도 했고, 혼자서 모든 것을 신경 쓰기엔 아이가 셋이나 되었으니까. 출산한 지 백일이 가까워질 무렵, 몸은 많이 회복되었고 위의 두 누나들은 기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셋째는 산후도우미가 돌보고 있었다. 약간의 자유시간이 확보된 셈이었다. 산후도우미와 계약이 끝나기 전, 나는 전문 심리상담사의 도움을 받아 8주 동안 진로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라는 사람의 천성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빛을 발하는가.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의 해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성검사를 받아보니 허탈하게도 나의 적성 1순위 직업은 '심리치료사'였다. 어찌 보면 대학시절 나를 기가 막히게 파악하고 제대로 된 전공을 찾아갔던 것이며,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커리어 루트에서 이탈했으니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1순위는 일단 하다가 포기했으니 플랜 B를 찾아야 했다. 적성 2순위를 살펴보고자 보고서의 다음 장을 넘겼다. '작가'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문득 학창 시절 장래희망란에 거침없이 '작가'라는 두 글자를 적어 넣었던 10대의 내가 떠올랐다.
20대의 내가 '말하고 듣는' 인간이었다면, 10대의 나는 '읽고 쓰는' 인간이었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는 90년대 어느 동네나 그랬던 것처럼 만화책이 주를 이루는 책 대여점이 있었다. 이미 만화코너에서 더 이상 빌려볼 새로운 책이 없을 만치 다 빌려보고 나서, 나는 판타지 소설과 무협소설의 세계에 빠져든다. 만화와 라이트노벨의 차이점은, 온라인에서 남들이 소설을 쓰는 걸 보고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 싶어서 그렇게 했다는 장강명 작가처럼, 어느 정도 읽다 보면 소비자에서 창작자로,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전환이 일어난다는 데 있다. 나도 그렇게 중학생 때 인터넷이란 공간에 소설을 연재했었다.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투자하는 시간이 2할이었다면, 소설을 쓰는 데 투자하는 시간은 8할이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해야만 해서 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순수하게 즐거워서 소설을 썼던 시간들. 지금 내 이메일, 인스타그램, 트위터, 브런치 및 블로그 계정에 공통으로 쓰는 '세르티아(seluetia)'라는 아이디는 그때 썼던 필명이었다. 30대가 되어 받았던 적성검사에서 읽고 쓰던 10대의 내가 떠올랐다. 다시 읽는 행위에 몰입하던 그 시기에 나는 쓰는 행위를 시작해보기로 한다.
'쓰기'는 '말하기'보다 개인적인 일이었다.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얼마든지 혼자 쓸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꽤 오랜 시간 혼자서 써 왔다. 보통은 읽는 행위에 대한 글을 주로 썼고, 그러다 보니 같이 읽고 쓰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지금은 읽고 쓰는 행위에 일상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읽고 쓰는 행위도 내게 어떤 '본능적인' 즐거움을 주었다. 이쯤 되면 나의 천성은 무엇인가, 고민되기 마련이다.
그 사이에 세상이 변해서 무대가 없이 말하는 사람들의 세상이 왔다. 유튜버들, 그리고 팟캐스트 진행자들. 누군가 마이크를 건네주지 않아도 스스로 무대를 만들고 마이크를 잡는 사람들이다. 나는 또 온라인에서 남들이 말하는 걸 보고 '저 정도는 나도 말하겠다' 싶어서 몇 번 시도를 해보았다. 중학교 때 소설 연재를 그렇게 시작했던 것처럼. 그런데 청중이 전제되지 않은 말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여기서 쓰기와 본질적인 차이점이 느껴졌다. 쓰는 것은 읽어 주는 사람 없이도 혼자서 지속할 수 있는 행위였지만, 말하기는 단 한 명의 내담자라도 있어야 할 수 있는 행위였다. 청중이 수백 명, 수천 명이 되어도 무대 공포증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한 명도 청중이 없는 자리에서는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깨작깨작 아마추어답게 만드는 나의 유튜브 클립에는 그래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꼭 함께 나온다.
다행히 요즘은 말하는 작은 무대가 생겼다. 한글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세 시간 동안 목이 쉬어라 떠든다. 독서논술 수업이라 '읽고 쓰는 행위'를 '말하고 들으며' 가르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좋은 논술 선생님이라면 나 혼자 떠들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더 많이 말할 기회를 주고 더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과묵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건 너무 어렵다. 적막한 컴퓨터 오디오를 나 혼자서 열심히 채우며, 저 아이들의 눈을 직접 마주하며 교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날은 대체 언제쯤 오려나 그리워한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읽는가.
결국 이 읽고 쓰는 행위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말하고 듣는 세상에서, 내게 다시 마이크가 쥐어지는 날이 올까.
많은 생각거리와 고민을 안겨준 이 책을 마주하며, 장강명 작가는 타고나길 읽고 쓰는 인간이며 좋은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 그의 장편 소설이 출간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구매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좋은 글에 화답을 해주려 한다. 그가 번민하지 않는 돈. 눈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돈. 한겨울 함박눈처럼 펑펑 쏟아지길 바라는 인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면서. 인세로 먹고살고 싶은 '읽고 쓰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그의 책을 사서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사실 브런치의 글을 찾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읽는 유형의 인간일 거란 생각이 들지만,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는 읽고 쓰는 사람인가, 아니면 말하고 듣는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