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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Nov 22. 2020

책, 이게 뭐라고 : 말하고 듣는 나

 이 글은 장강명 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를 읽고 썼지만, 책 이야기보다는 책에 나오는 화두를 가지고 쓰는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두 편의 글을 통해 '말하고 듣는 나'와 '읽고 쓰는 나'의 개인적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장강명 작가의 책, <책, 이게 뭐라고>를 읽고 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지만 아직 '읽는 중'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렇게 끝나도 되는 거야???" 하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스무 개쯤 떠오를 만큼 두루뭉술하게, 그리고 쓸쓸하고 적막하게 책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끝이 아닌 듯한 끝맺음 이후로 머릿속에 '나'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어쩌면 이 책의 끝맺음은 작가가 내는 게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독자인 내가, 내 생각을 선명하게 정리하는 순간에 완성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책을 '완독'하고자 이 책이 안겨준 많은 생각거리와 고민을 '쓰는 행위'를 통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책에는 '읽고 쓰는 사람' 장강명이 '말하고 쓰는 직업' 팟캐스트 진행자가 되며 체험한 일화와 감상들이 담겨 있다. 저자는 끝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읽고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말하고 듣는 행위가 수반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현대사회, 특히 작가의 생태계에 대해 투덜거리면서 자신의 읽고 쓰는 행위가 어떤 삶을 기반으로 했고, 어떻게 확장되어 나가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말하는 듣는 세계에서 소진된 그의 에너지가 읽고 쓰는 행위의 에너지마저 갉아먹으며, 글이 써지지 않는 우울함과 자신의 재능에 대한 회의, 말하는 세계를 떠나는 장면으로 책은 끝난다. 장강명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리고 종이책의 물성 따위는 모르겠고 이제는 전자책으로 틈틈이 책을 읽는 게 어느 순간 더 편해진 애독가로서 책의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읽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읽고 쓰는 사람'이라 확신하며, 책의 저자인 본인과 책의 독자인 나를 묶어 '우리'라 지칭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내가 읽고 쓰는 사람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장강명 씨의 팟캐스트 오디오는 들은 적 없지만, 그의 책은 이미 세 권쯤 읽었으니... '읽는 사람'은 맞는 것 같은데, 그리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브런치에 주절주절 쓰고 있으니 '쓰는 사람'도 맞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말하고 듣는 세계의 거주자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말하고 듣는 세계의 거주자들과는 달리 우리의 소통 대상은 현재에 있지만은 않다. 우리는 읽으며 과거와 대화한다. 우리는 쓰면서 미래로 메시지를 보낸다.
 

 20대의 나는 말하고 듣는 인간이었다. 여러 가지 계기로 인해 20대 초반의 나는 확실히 '말하고 듣는 행위'에 남들보다 더 재능이 있다고 여겼다. 처음으로 그 재능을 콕 집어 이야기해 준 건, 대학교 1학년 때 수업으로 만난 어느 교수님이었다. 대학 다닐 때의 나는 일부러 나서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기말 조발표에서 발표자를 선정할 때면 열에 아홉은 내가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대학교 2학년 때까지는 전공수업에 들어가면 나보다 더 윗 학년 선배들이 많으니 굳이 나서서 발표하려 들지 않았지만, 늘 항상 그들이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아유 답답해 미치겠다'라고 혼자서 속으로만 화냈다. 1학년 교양 수업 때, 딱히 발표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하겠다고 직접 나섰고, 주변에서도 '오 땡큐'하고 반기는 분위기라 300명이 듣는 대형강의의 강당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제법 잘했다. 그건 일종의 내재된 성향이었다. 딱히 잘하겠다고 애쓰고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 밖으로 나가는데, 교수님이 나를 불렀다.

 "오늘 발표 내용과는 무관한 이야기지만, 자네는 가능하다면 직업을 방송 쪽으로 꼭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네. 타고난 게 있어. 방송에서 말하는 직업을 가지면 좋을 거야."


 2학년 때 이중전공을 신청해서 신문방송학과를 다니게 되었다. '상담'을 배워야 하는 심리학과와, '콘텐츠 생산'을 배우는 신문방송학과. 두 전공을 공부하며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는 수업으로 일상을 채워나갔다. 그리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내가 '말하고 듣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주는 사건은 여럿 더 있었다. 한 번은 학회에서 상담 토크쇼 같은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는데, 나와 두 학번 위의 남자 선배가 진행자로 나섰다. 이 선배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학 응원단의 부단장 출신으로, 내가 아는 지인들 중에 가장 말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청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다. 실제로 현재까지도 여러 곳에서 강연을 하는 그는 몇 년 전에 EBS 세계 테마 기행의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인종과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며 말하는 사람의 재능을 아낌없이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런 그와 나란히 마이크를 잡았을 때, 첫 리허설이 끝나고 그가 만족스럽다는 듯 씩 웃으며 내게 한마디 툭 던졌다. "야, 정현아. 너 잘한다."


 대학생활 중 마지막으로 이 말하는 재능이 꽃피웠던 수업은 4학년 때 들었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수업이었다. 이 수업은 실제 모 기업에서 마케팅 프로젝트를 수주받아서 모든 학생들을 16개 팀으로 나누어 경쟁시키고 그중 1위 팀을 선정하는 형식이었다. 부장님을 모시고 했던 파이널 프레젠테이션에서 내가 팀장으로 있었던 우리 팀이 영광의 1등을 거머쥐었다. 약간의 상금도 탔다. 그다음 주엔 종로에 있는 모 기업 회의실에 가서 전무님 앞에서도 같은 발표를 했다. 전무님을 포함한 임직원 백여 명이 그날 대회의실에 함께 모였다. 큰 액수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나의 발표를 듣겠다고 그들의 소중한 1시간을 할애했다는 것은 일개 대학생에게 꽤 뿌듯한 경험이었다. 발표가 끝나고 점심을 사주던 부장님이 '전무님이 꼭 스카우트 해오라고 그랬다.'며 인턴 자리를 제안했지만, 당시 4년째 사귀고 있던 같은 그룹 계열사 직원 이대리의 피폐한 일상을 알고 있던 나는 대학원에 진학할 거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때 '나내던' 내 모습을 기억하는 친구들은 훗날 전업주부로 사는 나의 모습을 보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 그렇게 살 줄은 몰랐다고 이야기한다. 20대의 나를 보면 조용하고 얌전한 주부의 일상을 상상하기엔 괴리감이 컸다. 결혼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공은 임상심리였다.


 심리상담 혹은 심리치료는 말에 기반한 행위이다. 잘 말하는 것보단 잘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렇지만 말하고 듣는 유형의 사람이었던 나는 상담실이라는 적막한 공간에 남아 전문적인 '말하고 듣는' 행위를 해야 했을 때도 크게 부담스럽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내게 주어졌던 읽고 쓰는 행위들, 문을 읽고, 검사보고서를 쓰고, 논문을 쓰고, 심사의견서를 읽는 그런 과정들이 더 어렵게 느껴졌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것은 심리검사보고서를 쓰는 일이었다. 차라리 논문을 쓰는 것은 그에 비하면 백 배는 쉽게 느껴졌다. 그러나 학위를 받기까지 논문은 한 편만 쓰면 되는데 심리검사보고서는 스무 편은 써야 한다. 졸업하고 수련을 시작하면 못해도 일주일에 서너 편은 써야 한다. 입체적이고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인격체를 심리검사보고서라는 영구적이고 경직된 활자의 형태로 고정시키는 일은 너무나 어려웠다. 아무리 반복해도 보고서를 쓸 때마다 말도 못 하는 부담감이 나를 덮쳐 왔다. 어쩌면 대학원 졸업 이후 수련을 포기했던 이유 중에 하나도 대학병원에서 수백 명의 환자에 대한 검사보고서를 기계적으로 써야 하는 일상이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과 보고서를 받아 든 몇몇의 사람들이 추가적으로 문의할 게 있다며 전화를 해 오면 나는 오히려 그게 더 편했다. '말'은 유연하고 부드러웠다. 내 안에 흔들리지 않는 생각이 있으면,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러한 단어를 선택해서 보고서에 썼는지, 그 이면에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보고서에는 담기지 않았던 어떤 서사가 있는지.... 그런 것들을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동료들은 오히려 그런 전화통화를 부담스러워했다. 말실수를 두려워했고, 끝나지 않는 전화통화를 두려워했다. 그들에 비하면 확실히 나는 말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둘째를 임신하고 '엄마'라는 직업에 더 충실하자고 커리어 루트에서 이탈한 순간, 나의 '말하는 무대'는 사라졌다. 그 때야 깨달았다. '말하기'는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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