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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Dec 01. 2020

따뜻했던 내 사랑, '공순이'를 추억하며



 김민섭 작가의 <아무튼, 망원동>을 읽었다. 나는 망원동에서 대각선으로 멀리 떨어진, 잠실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왔다. 때문에 신촌으로 대학을 다니기 전까지는 살면서 한강 넘어 북쪽 동네에 가본 일이 거의 없다. 대학에 다닌 이후에도 학교-집-학교-집 밖에 모르던 조신한 모범생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은 아니고 워낙 집 근처도, 학교 앞도 유흥가여서 굳이 그곳을 벗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한 번도 망원동에 가본 적이 없다.


 망리단길이 급부상하기 시작할 무렵엔, 내가 한국에 없었거나 애둘 따린 임산부였거나 출산 직후였거나 하여 갈 기회가 없었는데... 아무튼 망원동이란 동네는 내 활동권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김민철 작가님의 '망원 호프'라든지, 김하나 작가님의 망원동 이야기가 나오면 늘 그 동네를 궁금해하면서도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떠올리기는 어려웠다. 대체 이 동네는 뭐길래 힙한 작가들은 다 이 동네 살지? 이러면서 궁금증만 몽글몽글 피워 올렸다. 이 <아무튼, 망원동>을 집어 든 까닭도 그 궁금증에서 기인했다.  일부러 제목에 '망원동'이 들어간 책을 찾아 읽는 것, 이 정도가 현재 폴란드에 살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적극적인 지역탐방 이리라.


 그리하여 살면서 망원동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그래서 그곳에 넘쳐난다는 힙한 식당들 중 한 곳도 가본 적이 없지만, 책을 읽다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포인트에서 내가 아는 식당과 내가 아는 음식이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책에 밑줄을 짙게 그었다. 마지막으로 먹어본 게 7년 전 여름인데,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맛.

 

 공학원 순두부, 공순이다.



다른 음식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날 먹은 순두부찌개는 스무 살 때 신촌 연세대학교 공학관에 일부러 찾아가서 먹은 것만큼이나 맛있었다. (연세대학교 공학관이 처음 생겼을 때, 구내식당에서 파는 순두부찌개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외부인들도 먹으러 가곤 했다.)



 아, 공순이. 그리운 공순이.

 새내기 시절 선배들은 높은 언덕배기 위에 위치한 문과대에서 저 아래 정문 옆에 위치한 공학원까지 일부러 우리를 데려가 공학원 순두부를 사줬다. 저렴한 학식 가격에 놀라고, 그리고 가격에 비해 너무도 충실한 그 맛에 깜짝 놀라면, 선배들은 마치 이 순두부 맛이 우리 엄마 요리 솜씨라도 되는 양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 맛을 자랑하곤 했었다. 늬 집엔 이거 없지? 하는 점순이처럼.

 

 고추기름이 동동 떠오른, 얼큰하고 얼얼한 공순이를 땀을 뻘뻘 흘리며 먹고, 후식으로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그리고 복도로 나와 으리으리한 대리석 바닥의 공학원 인테리어에 감탄하면서, 다 쓰러져가는 용재관의 과방으로 돌아왔다. 내가 학창 시절 상상하던 대학교의 건물이란 저 쪽에 가까웠는데, 막상 입학하고 나니 내 과방은 이 쪽에 있구나 하면서. 대학 건물과 학생 식당에서마저 자본주의의 생리는 선명하게 드러났다. 공학원 건물이나 대우관이라 불렸던 경영대 건물을 다녀오는 날이면, 온수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용재관의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이공계로 갔어야 했다느니 경영학과를 갔어야 했다느니 인문학은 돈이 되지 않는다느니 하며 동기들과 한탄하곤 했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공학원 순두부의 맛은 공평했었다. 이과생에게도, 문과생에게도.

 



 저 멀리 남쪽 동네까지, 굳이 순두부를 먹겠다는 핑계를 대 가며 후배들을 데려가는 선배들에게 약간의 흑심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생겼다. 원래 3월은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는 날이라며(그리고 반대로 4월은 보은의 달이라며) 후배들은 공공연하게 선배들에게 점심밥을 사줄 것을 요구하곤 했었다. 그렇게 친하지 않은 선배들에게도, 아직 친하지 않으니 한 번 친해질 기회를 만들어보자며 거리낌 없이 떳떳하게 밥을 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시기가 새내기의 3월이었다. 그런데 밥은 밥이고, 밥값이 나올 지갑은 선배의 것이니 먹는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선배의 몫이었다. 지갑 사정도 넉넉하고 시간도 많다면야 마음에 드는 후배에게는 교문 밖으로 나가 파스타라도 한 접시 사줄 수 있겠지만은... 사실 그게 잘못 소문이 나면 공명정대함을 따지는 다른 후배들에게도 비싼 바깥 음식을 사 줘야 한다. 그럴 때 만만한 게 공순이였다. 학식이니까 그렇게 비싸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멀리 행차해야 먹어볼 수 있는 특식이었으며, 또 식당까지 오가는 왕복 30분의 시간 동안 캠퍼스를 함께 거닐며 서로의 어색한 시간을 대화로 채우는 묘미가 있었다. 1학년 땐 몰랐는데, 내가 선배가 되고 보니 깨달은 생활의 지혜였달까. 그때서야 여자 후배들을 굳이굳이 먼 공학원까지 데려가서 밥을 사주는 남자 동기들을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보았고(흐음~ 내 눈엔 다 보이지롱), 작년 이맘때쯤 나를 일부러 공학원까지 굽이굽이 데려갔던 남자 선배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하지만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이미 입대해서 캠퍼스에 없었다).


지금 와서 2013년의 메뉴판을 다시 보니, 공순이뿐만 아니라 모든 메뉴들이 심하게 가격이 착하다.

 그랬던 우리의 공순이는, 안타깝게도 7년 전 여름, 모두에게 작별을 고하고 추억의 맛으로만 남았다. 당시 공학원 순두부를 더 이상 맛볼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일반 일간지 신문기사로까지 보도되었다.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연세대 '공학원 순두부': 머니투데이 뉴스) 대학교 구내식당 하나 없어진다고 신문기사까지 날 일인가 싶지만은, '공순이'는 분명히 그럴 자격이 있다! 이 신문기사는 페이스북을 타고 모든 동문들의 '좋아요'와 '슬퍼요'를 불렀고, 이미 사회인이 된 졸업생들마저 문 닫기 전에 공학원 순두부 한 번 더 먹고 오자며 캠퍼스로 발길을 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 동안 페이스북 뉴스피드는 그들의 '공순이 영수증 인증샷'으로 도배되었다. 마지막 날까지도 단돈 2,900원이었던 착한 가격의 공순이. 나 역시도 그때 고인물을 지나 화석마냥 그때까지도 학교에 남아있었기 때문에(대학원 과정 중에 출산하느라 학교를 좀 오래 쉬었더니...), 그 해 6월에 친구들과 함께 마지막 공순이를 영접하러 공학원 식당에 다녀왔었다. 그때 나도 혹시 영수증 사진 따위를 페이스북에 올렸던가...? 하고 페이스북 검색창에 '공학원 순두부'를 검색해보니, 영수증 사진은 찾지 못했지만 페이스북에서 인격화된 '함께 아는 친구 1명'의 공순이를 찾았다. (친구 추가 버튼을 누르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동문들이 이 페이지를 찾았을 때 함께 아는 친구에 내 이름이 있다면 너무 민망할 것 같아 손가락을 자제하였다.) 공순이를 그리워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구나. (대체 누가 이 계정 만들었을까.ㅋㅋㅋ)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했던 내 동문 공순이


 사실 공순이뿐이랴. 학교의 많은 것들이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한겨울에도 냉수만 나오는 슬픈 화장실의 용재관은 이제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 자리에 신경영관이 들어섰다. 76학번 친정아버지와 77학번 친정어머니가 대학 다니던 시절엔 도서관 건물이었다는 용재관. 공학원 대리석 같은 번쩍거리는 인테리어는 없었지만 바닥에 오랜 역사와 본래의 용도를 알려주는 책 그림이 새겨져 있던 그 건물도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백양로는 내가 알던 그 백양로가 아니라 한다. 심지어 선배에게 밥을 얻어먹어야 하는 새내기들마저 송도 캠퍼스로 사라지고 말았으니 그 학교는 내가 알던 학교와는 참 많이 다른 장소가 되고 말았다. 이제 학교에 가면 무엇으로 그 시절의 나를 추억할 수 있을까? 4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문의 딸기골 분식? 나를 수없이 먹여 살렸던 본관 옆 청경관 떡볶이? 언제까지 그곳에 굳건히 있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새로운 것들이 채운다. 하긴, 처음에 공학원이 그랬고, 처음의 공순이도 누군가에겐 새로운 것이었다. 그래도 내가 아는 것들이 더 이상 사라지질 않길 바라는 '라떼'의 마음이 가득가득 채워진다.


 어쩌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는가. 아 그래, 시작은 <아무튼, 망원동>이었다. 사실 이 책은 망원동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지금은 사라진 수많은 풍경들에 대한 책이다. 책에 말미에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누군가에게 당신만의 소중한 공간에 관한 서사를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어쩌면 이 글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책의 시작은 제목을 보고 책을 집어 든 독자들의 기대의 부응하기 위해서였는지 현재 시점의 망원동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망원동의 힙한 식당들에는 한 번도 들린 적 없고, 오로지 아는 음식이 공순이밖에 없었던 내 얕은 경험에서 이 글이 나왔다. 쓰면서 추억에 젖을 수밖에 없었던, 뜨겁게 사랑했던 공순이. 글을 여기까지 쓰고 나니, 하얀 쌀밥에 순두부찌개를 슥슥 비벼서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지만 냉장고를 열어봐도 순두부찌개를 만들 수 있는 재료는 오로지 양파뿐. 먼 폴란드에서 겨울을 보내며 한국의 많은 것들을 그리워한다. 보들보들한 순두부의 감촉도, 고추기름이 동동 떠오른 얼큰한 국물도,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뜨겁게 만들어주는 뚝배기의 정겨움까지도.


 모두 모두 정말 정말 너무너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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