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10살 첫째는 혼자, 6살 둘째는 엄마와, 4살 막내는 아빠와, 이렇게 다섯식구가 각각 팀을 짜서 따로 잠을 잤었다. 그러다가 혼자 자는게 아직은 좀 외롭고 무서운 첫째딸과 잠들기 직전까지 언니와 조잘조잘 수다를 떨고 싶은 둘째딸의 목적이 서로 맞아들어가 최근 들어 두 자매가 함께 자는 날이 늘어갔다. 막내는 늘 그렇듯이 남편이 데리고 잤다. 그런 날이면 나는 싱글침대 하나가 고스란히 남은 첫째의 방에 들어가 밤새 책도 읽고, 아이 방에 있는 노트북으로 글도 쓰면서 '고독해서 너무 신나는' 밤라이프를 즐겼다. 토닥거려달라고 징징대는 아이도 없고 누구의 발길질에도 방해받지 않았다. 고퀄리티의 깊은 수면을 즐기며 맞이하는 상쾌한 아침.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런데 누나들끼리 알콩달콩 한 침대에서 자는 모습이 부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뭐든지 다 손윗형제들을 따라하려는 막내의 특성이었을까. 셋째가 엄마도 아빠도 아닌 누나들이랑 자고 싶다고 했다. 6살 둘째는 그렇다 쳐도 4살 막내는 아직 어른의 돌봄 없이 혼자 자기에는 어린 나이인데. 정말? 정말로 괜찮겠어? 하지만 여러 번 물어봐도 제 뜻이 그런 걸 그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부모님의 육아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는 어른스러운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최근들어 동생을 데리고 자 보니 별 거 없더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을까. 그 상황이 가장 부담스러울 첫째마저도 저희들 셋이서만 잘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길래 그러라고 했다.
졸지에, 육아인생 9년만에 안방에 나와 남편이 오롯이 남았다. (두둥)
올해로 결혼 11년차. 굳이 스물다섯이라는 이른 나이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한 이유를 대라면, 너무 사랑한 나머지 늘 항상 함께 있고 싶어서 결혼했다고 말하겠다. 5년 가까운 연애기간동안 늘상 반복했던 주말 데이트는 성에 차지 않았고, 그와 일년 365일 하루종일 붙어있고 싶어서 한 것이 결혼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10년의 결혼생활 중 9년의 시간을 부모로 살아오다보니 이렇게 단 둘이 있는 순간을 우리는 항상 아쉬워했었고 간절하게 바래왔다. 그리고 그 드물고 귀한 순간이 드디어 찾아왔는데...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그때 남편 옆에 있기보다는 글을 쓰고 싶었다.
처음에 나는 당연하게 노트북이 있는 첫째 방으로 도망(?)가려고 했다. 왜냐하면 하루종일 이 순간을 기다렸기 때문에.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육퇴 후에 나 혼자 오롯이 글을 쓰는 시간. 그것은 내가 일상을 지탱하는 힘이었고, 하루 중 유일하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하루에 딱 한시간이었을망정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위안이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나는 그 시간을 포기하고 남편에게 붙들려 안방 침대에 둘이 나란히 눕게 된 것이다. 나는 잠자기 전에 혼자서 책도 느긋하게 읽고, 블로그에 글도 남기고 싶었는데... 그러나 이런 흔치않는 기회에 남편 곁을 떠난다는 것은 일종의 배신이었다. "어디가?"라고 묻는 그의 눈빛에서 신혼보다도 더 달콤하고 오붓하게 있어야 할 것 같은 압박 아닌 압박이 느껴졌다. 내가 지금 봐야할 것은 책도, 노트북화면도 아닌 그의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분위기가 뜨거워질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곁에 남았을 것이다. 옆방에서 아이들은 조잘조잘을 넘어 와글와글 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수다를 떨며 장난을 치고 있었고(엠티 왔니...?), 나와 남편은 '정말 셋이서만 자겠어? 분명 중간에 무섭다고 누군가 안방으로 오겠지.' 하며 다만 그게 밤 10시냐 11시냐 한밤중 새벽이 될것이냐 그것을 궁금해하던 차였다. 그러나 평소에 우리 부부는 세 아이들에게 치여 단둘이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고, 지금 이 순간이 그동안 우리에게 부족했었던 소통의 시간이 될 수 있었으리라. 비록 저 옆방에서 마치 수련회 첫날밤 친구들과 한방에 누워있는 것 마냥 신나있는 아이들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도 좀 더 이 순간을 재미나게 즐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은 일단 나의 뜨뜻미지근했던, 그리고 첫째의 방으로 도망가려했던 행위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처음에는 내 자유시간을 뺐겼다는 박탈감에 죄없는 남편에게 눈을 흘겼으나, 결국은 나의 배신행동(?)에 대한 변호로, 대화의 물꼬를 열었다.
"사실은, 전부터 쓰고 싶은 글감이 있어서 며칠 내내 잔뜩 메모해 두었는데... 그걸 아직 글로 옮기질 못했어. 요즘은 아이들이랑 스물네시간 붙어있다 보니까 내 자유시간이 전혀 없거든. 그래서 조금이라도 기회가 생기면, 가능하다면 글을 쓰기 위해 혼자 있고 싶어. 지금 내게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해."
그런데 그냥 별 얘기 아니었는데, 글을 쓰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을 뿐인데 몇 문장을 말하기도 전에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왈칵 나왔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다행히 방 안은 캄캄했고 남편은 내 눈물을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알면 남편과 대화가 이상한데서 중단되어버릴 것 같다는 위기감에, 나는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고 최대한 이야기를 본론으로 끌어가려고 노력했다. (나중엔 결국에 남편이 "너 지금 우니?" 하고 물어봐서 들켰는데, 그 때 나의 대답은 "우는 게 아니라 그냥 눈에서 물이 나오는거야..."라고 둘러대고 말았다.) 사실은 그 본론이라는 것도 별 거 아니었다. 나는 글을 쓰고 싶고, 그게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의미고, 나는 글을 쓰기 위해 혼자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금의 내 삶에선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때때로 나는 불행하다.
읽고 쓰고자 하는 열망. 나는 이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 때면 가끔 턱없이 부끄러워지곤 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글쓰기가 창출해내는 아무런 경제적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매일 8시간 이상 아주 중요한 직장에 나가 아주 중요한 돈을 벌어오는데, 나의 글쓰기는 그런 일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오히려 나의 주요 업무는 식구들이 먹을 식료품을 사러 쇼핑을 간다거나, 아이들의 학업 전반에 대한 자잘한 일과를 챙기거나, 식사를 챙겨주고, 청소를 하고, 옷을 갈아입혀주는 그런 것들이다. 식구들이 모두 깨어있는 낮 시간에는 끊임없는 돌봄 노동이 나를 찾아오고, 나 역시도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고 싶은 열렬한 욕구에 휩싸여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상태를 찾기 어렵다. 때때로 청소기를 밀고 있을 때나, 빨래를 개키는 것처럼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에 몰두할 때 머릿속에서 뭔가 쓰고 싶은 글감이 떠오르곤 하지만 나는 서둘러 그것들을 어디엔가 메모해두고 이내 잊는다. 그리고 그 메모를 하나의 완성된 글로 다시 재구성하는 일은, 철저하게 선택적인 과제로 남는다.
물론 글을 자꾸 쓰다보면, 어딘가 새로운 길이 열릴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을 하나의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길을 열기 위해서는, 꾸준히 글을 써야 한다. 여기서 하나의 딜레마가 생긴다. 나는 아직은 어디까지나 아마추어고, 글쓰기는 나의 직업이 아닌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의 본질적이라 생각되는 부분(아내, 엄마, 주부 등)의 역할을 다소 내려놓아야 한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작업은 하나의 취미생활 정도로만 폄하될 소지가 많고, 글을 쓴다는 것은 그저 부수적인 일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내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목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나는 언젠가 아이들이 엄마를 찾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노트북에서 쓰고 있던 글에 집중하려고 바둥거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문득 뒷통수에서 남편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너는 왜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니?) 그 순간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내가 글을 쓰는 걸 보면, 내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아니면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해?"
그 질문을 하면서 나는 왠지 부끄러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눈에서 열심히 물을 생성하며 뭔가 끊임없이 내 일상을 긍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쯤 안방 문이 벌컥 열렸다. 예상한 바였고, 우리의 대화는 그 지점에서 중단되었다. 다시 남편은 아빠의 역할로 돌아가 막내를 재웠고, 나는 엄마의 역할로 돌아가 딸아이 옆에 누웠다. 아이들의 짧은 엠티는 끝났고, 예상한 대로 아이들 셋이서만 자는 빅 이벤트는 조금 더 나중의 일로 미루기로 했다. 다만 그날 밤, 그간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응어리를 남편 옆에서 쏟아내듯 이야기하다보니 왠지 진이 빠져 옆에 누운 아이보다도 더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꿈에서도 나는 뭔가 쫒기듯이, 지금 이 자리에만 멈춰 있지 않겠다며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날의 눈물젖은 대화가 남긴 커다란 성과가 있다면, 그 뒤로 부쩍 남편이 나의 글쓰기를 지지해 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날 두서없이, 그러나 간절하게 고백했던 나의 열망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때때로 저녁 일곱시쯤 퇴근해서 다함께 저녁을 먹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을 때면 남편이 슬쩍 내게 말한다. 서재에 들어가서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자유시간을 주겠다고. 책을 읽든, 글을 쓰든, 운동을 하든... 온전한 너의 시간을 누리라고. 더 많은 시간을 더 주고 싶지만, 아이들을 재울 준비를 하려면 더 늦은 시간까지는 힘들고 남편에게도 버겁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시간은 딱 한 시간. 그러나 그 한 시간 동안 남편은 지난 몇달 간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내가 아이들을 돌봤던 것처럼, 내가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돌본다.
남편이 내 일을 긍정해주었다는 자신감에서였을까. 그 뒤로 노트북 앞에서 끙끙대는 나를 보며 아이들이 "엄마 지금 뭐해?"라고 물어보면 나는 답한다.
"엄마 일해."
"무슨 일?"
"글 쓰는 일."
남편의 저녁 독박육아시간은 나의 자기계발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글쓰기는 또 하나의 마땅히 해야하는 일의 범주로 포함되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글쓰기는 내게 필요하고, 앞으로도 글을 쓰는 시간을 벌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내 옆에는 그것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남편이 혼자서 아이셋을 보는 중노동을 하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그럴싸한 글을 써내야 할텐데 늘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어떤 날은 한 시간 내내 쓰던 글을 마음에 안 든다며 모두 지워버릴 때도 있고, 그럴 때면 왠지 아까운 한 시간이 고스란히 날아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오늘처럼 뭐라도 흔적을 남겨서 하나의 글을 완성할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퇴근 후의 휴식시간이 그 누구보다도 간절했을, 그 사람의 응원에 힘입어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 8시, 노트북 앞에 앉아 이 글을 쓴다. 그리고 글쓰는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다시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