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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Jul 20. 2020

엄마의 김치 레시피

김치할머니였던 외할머니에게서 친정엄마에게로, 그리고 또 나에게로

 김치를 담갔다.

 배추를 씻고, 자르고, 절이고... 김칫소를 만들고, 양념을 버무리고, 그러다 보니 반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한 달에 두 번씩 이 짓을 반복한다. 한 번에 많이 만들어두면 한갓지고 좋을 텐데. 조금이라도 김치가 시어버리면 손도 대지 않고 딱 알맞게 익은 김치만 고집하는 아이들 덕분에 한꺼번에 많이 담그지도 못한다. 물론 김치냉장고도 없다(여기는 유럽이니까). 배추 두 포기를 담그면 신혼 때 산 작은 김치통에 똑떨어지게 들어간다. 부디 이번 달에는 좀 오래 두고 먹었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유치원이 문을 닫고, 봄부터 집에서 삼시 세 끼를 먹다 보니 여섯 살 둘째의 입맛이 완전 한국적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김치 없이는 밥을 못 먹는 아이가 되었다. 매 끼니마다 한 접시씩 뚝딱 먹는데 그러다 보니 김치 떨어지는 속도가 어마 무시하다. 예전에는 남편은 매일 야근에 회식이라 집에서 밥을 먹지 않고, 아이들은 김치가 맵다며 기피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얻은 김치가 시어버리고 쉰내가 날 때까지 그대로 냉장고에 있었다. 아깝다고 부랴부랴 찌개 끓여 먹이던 게 불과 얼마 전의 이야기인데 이제는 찌개 끓여먹을 틈도 없이 김치가 동이 난다.

오늘 갓 담근 막김치

 폴란드 배추는 한국 배추보다 심이 굵고 억세서 포기김치를 담그기가 어렵다. 통째로 절이다 보면 속까지 절이는 데 하루 종일 걸리고, 그러다 보면 염도를 조절하기가 어렵다. 한국 배추랑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다 보면 덜 절여져서 하얗게 골마지가 생기더라고, 다들 이곳 배추의 애매한 난이도로 인해 한 번씩 김치가 실패한 적이 있단다. ('김치를' 실패한다고 목적어로 써야 원래 맞지만, 왠지 '김치가'라고 쓰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나의 의도와 목적과는 상관없이 김치는 때로 주체성을 가지고 성공과 실패를 스스로 결정한다.) 국제학교 학부형 모임에 갔다가 이런 이야기를 주워듣고 난 이후로 나는 포기김치는 깔끔하게 포기하고(포기를 포기한다.) 항상 막김치를 담근다. 그리고 정해진 레시피를 참고는 하되, 정해진 수치보다는 그때의 감을 따른다. 계절에 따라 절이는 시간이나 양념을 늘 달리하면서 내가 지금 다루고 있는 재료가 서양채소라는 사실을 잊지 앉는다.



 김치 레시피는 기본적으로 작년 여름에 폴란드에 오신 친정엄마가 가르쳐주신 방법을 따르지만, 딱히 레시피라고 부를 것도 없다. 커다란 다라이에 배추를 넣고 소금에 절인다. 소금을 얼마큼, 시간을 얼마큼 정해두고 절이는 게 아니라 배추의 탄성을 손으로 조물거리며 판단해야 한다. 김칫소를 만드는 것도 똑같다. 커다란 양념통에 액젓을 휘휘 두르고, 소금과 설탕을 넣고, 다진 마늘과 생강을 넣는다. 양파나 배즙 같은 것들, 푸른 채소들, 고춧가루... 뭐든지 적당히 넣고 맛을 보면서 김칫소를 만든다. 몇 컵, 몇 그램이 아니라 맛으로 기억해야 하는 레시피.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늘 먹던 그 맛이라 혀끝으로 계량하는 양념이 오히려 더 정확하다. 좀 덜 짠데, 더 매워야겠는데, 흠 뭔가 부족한데. 이러면서 양념을 만들어간다.


 내가 담그는 김치는 짜거나 맵지 않고 슴슴하면서 시원하다. 아이들 입맛에 맞춘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북 출신인 외할머니의 레시피가 친정엄마를 거쳐 내게 내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 그러니까 친가 혹은 외가 따위의 흔하게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을 배우기 전에 외할머니를 '김치할머니' 또는 '만두할머니'라고 불렀다. 외할머니는 항상 우리들에게 김치와 만두를 주는 사람이었다.

 외할머니 집에 가면 그날 빚어서 막 찜기에서 쪄낸 따끈따끈한 만두가 가득했고, 외할머니의 냉장고에서는 김치가 끝도 없이 나왔다. 시원한 열무물김치, 총각김치, 배추김치를 종류별로 담아다가 늘 집에 가는 길에 바리바리 싸주셨다. 손님이 오는 날, 혹은 명절날 한가득 빚어서 쪄낸 만두도 잔뜩 얻어다가 집에 와서 식용유를 두른 팬에 구워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집에는 약간의 아린 마늘냄새와, 부추의 풋풋한 냄새, 그리고 밀가루풀의 포슬한 냄새가 늘 항상 섞여있었다. 김치를 담그거나 만두를 찌는 날이면 우리 집에서도 할머니 집의 냄새가 난다. 그때마다 나는 밤늦도록 사촌들과 어울려 놀았던 아득한 그 옛날의 외가댁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결혼한 후에도 가끔 외할머니의 김치를 얻어먹으면 어릴 때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외할머니가 건강하셔야 이 김치를 언제까지고 먹을 수 있을 텐데... 앞으로 과연 몇 년이나 남은 걸까, 하는 아슬아슬한 마음도 있었다.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면 외할머니는 구순이 되신다. 폴란드로 이사 오기 한 달 전쯤, 친정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총각김치 한 통을 외가에서 얻어다 주셨다. 아삭하게 한 입 베어 무는데 나는 이 김치를 과연 언제 다시 먹을 수 있을까, 내 평생 그런 날이 혹시라도 다시는 오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며 왈칵 울음이 터지기도 했었다. 할머니의 김치는 여전히 시원하고 맛있었지만, 나는 가장 행복한 순간에마저 불행을 염려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으니까.



 오늘 김치를 만들 때에는 믹서기에다 마늘, 생강청, 멸치액젓, 사과, 양파 등 적당한 양념을 모두 털어 넣고, 찹쌀가루가 없으니 흰 밥을 지어다가 함께 갈아버렸다. 얼갈이나 쪽파 따위를 같이 넣었으면 시원하고 맛있었을 텐데 구할 길이 없으니 폴란드어로 Por라 부르는 리크(Leek)를 대신 송송 썰어 넣었다. 한 입 먹어보니 뭔가 단맛이 부족한 것 같아서 대추야자시럽(!)도 조금 넣고, 빨간 색깔도 부족한 것 같아서 파프리카 가루도 추가로 좀 더 넣어본다. 그렇게 얼렁뚱땅 집에 있는 재료들을 휘휘 섞어 만드는 김치. 그런데 신기하게도 항상 일정한 맛이 난다. 혀끝으로 기억하는 김칫소의 맛만 얼추 비슷해지면 된다. 늘 이렇다 보니 레시피가 제대로 정립될 리 없지만 매달 만들어도 비슷한 김치. 우리 집 김치다.


 이렇게 매달 김치를 만들면서 가장 뿌듯한 것은 아이들이 기억하는 '엄마의 김치'가 생겼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종갓집이나 비비고 같은 시판 김치보다 엄마 김치가 맛있다고 해준다. 아이들 입맛에 맞춘 시원 달달한 김치. 내가 어린 시절부터 먹었던 이북식 김치. 사는 지역이 다르고, 계절이 다르고, 그날 손에 닿는 채소에 따라 매번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만드는 내 혀가 기억해서 만드는 이 김치를 우리 아이들은 '엄마 김치'라고 부른다. 언젠가 누군가에겐 '할머니 김치'라고 불릴지도 모르겠다. 내겐 영원히 엄마 김치로 남을 친정엄마의 김치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것처럼. 작년 여름에 엄마가 크게 한 통 담가 두고 간 것을 꺼낼 때마다 아이들이 "외할머니 김치가 최고로 맛있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던 것처럼.


 이 먼 타국에서 김치를 담그다 보면, 마치 조국의 문화유산을 계승하는, 어떤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된 것 같은 이상한 뿌듯함도 든다. 먼 폴란드에서 대추시럽과 서양채소가 섞여 한국의 맛이 다시 태어났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대를 잇는 어떤 맛 가운데, 그렇게 오늘 내가 담근 김치가 있었다.






덧) 글을 쓰다 보니 오늘의 이 글이야말로 지난 5월에 있었던 <브런치 X 우리가 한식>에 맞는 글이 아니었을까. 그때는 그렇게 글을 쓰려고 아등바등해도 글이 써지지 않더니, 오늘 김치를 담그다가 문득 글이 한 편 나왔다. 내가 글을 쓰겠다고 써지는 게 아니라, 그냥 어느 날 글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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