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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Aug 03. 2020

다시 유치원에 갈 수 있을까

코로나에 대응 (안)하는 폴란드를 바라보는 속 타는 마음

3월에 휴교령이 내린 이후로 5개월이 흘렀다.

여전히 집에서 아이들이랑 지지고 볶는 일상을 견디는 가운데, 가을학기가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학교는 8월 18일, 개학을 준비하는 중이다.

온라인이 아닌 대면 수업으로.

폴란드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상륙하기 이전인 2월, 밸런타인데이 때 반 친구들이랑 함께.

 의무교육 나이인 첫째를 제외하고, 6살 둘째와 4살 셋째는 유치원 등록을 하지 않았다. 원래는 올해 8월부터는 큰애가 다니는 국제학교의 유치부로 두 아이들 모두 옮겨가려고 입학허가를 받아둔 상태였다. 그러나 학교 측으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자마자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기존에 다니던 현지 유치원은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며 기존 학비의 70%의 수업료를 요구했다. 하지만 갓 세돌이 지난 아이에게 온라인 수업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미 여름방학까지 수업이 정상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고 유치원을 그만뒀다. 예상과 다르게 하루 확진자가 수백 명씩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유치원은 한 달 만에 다시 오픈을 했지만... 보내지 않았다.


 아직은 학습적인 공백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나이이기도 하고, 하루 종일 마스크를 하고 수업을 한다는 것을 차마 상상하기 어려운 나이기도 하다. 물론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고 있는 사람을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보기 어렵듯이, 학교는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씌울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것 같다. 기존에 다니던 유치원에서도 수업 사진을 여전히 뉴스레터로 보내주지만, 사진 속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마저도 아무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 않다. 여러 가지로 이 나라의 전염병을 대하는 안이한 태도와 방역수칙에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 와중에 지난 며칠간 확진자 수는 월평균값의 2배로 치솟았다.



 이틀 전인 금요일, 폴란드는 역대 코로나바이러스 최대 확진자 수인 일일 확진자 657명을 기록했다. 전날 615명의 확진자 수치를 보며 사람들이 "뭐? 600명이 넘었다고?"하고 부르짖은 지 하루 만에 최대 기록 치를 경신한 것이다. 그리고 어제 토요일, 일일 확진자 658명을 보고하며 또다시 기록을 갈아치웠다. 3일간 이천 명에 가까운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 7월 초에는 잠시 그래프가 하강곡선을 그리기도 했으나, 그것이 마침 대통령 대선 날짜와 딱 겹치는 바람에 사람들은 그 데이터를 아무도 신뢰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선을 위해 의심환자를 적극적으로 검사하지 않고, 데이터 수치를 조작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나라 정부가 국민들에게 받는 신뢰는 딱 요정도였으나, 나는 사실 이 나라 사람들의 시민의식마저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슈퍼마켓과 병원을 제외하고서는 길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심지어 그마저도 코나 입을 그대로 내놓은 채 불량하게 착용하는 일이 빈번했다. 집 근처 슈퍼마켓에 있는 캐셔는 늘 항상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 손님들을 상대하곤 한다.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마트에서 저렇게 무방비하게 있을 수 있다니... 그녀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오만가지로 복잡하다. 불안해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면 그녀가 대범한 걸까. 만약 저 캐셔가 누군가, 불특정 다수 중 하나에게 병이 옮은 상태에서 손님을 계속해서 상대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심지어 이제는 마스크를 하고 오지 않는 손님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내 앞에 그런 손님이 있을 때마다 나는 스을쩍 2미터 이상 거리를 둔다. 그리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손님과 마스크를 쓰지 않은 캐셔가 마주 보고 있는 상황을... 나 혼자 안절부절 불안해하면서 쳐다본다.

제발. 마스크는 패션이 아니라고요....


 바이러스에 맞서 싸우는 것은 거대한 2인 3각 경기라고 했다. 지금은 모두 발목에 묶인 줄을 풀어헤치고 될 대로 되라며 손을 놔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방학 동안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을뿐더러, 아주 가끔씩 아이들과 함께 마스크를 하고 밖으로 나가면 거리에 마스크를 한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눈에 띄는 동양인인데 마스크마저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고 지나간다. 눈에서 불이 나올 수만 있다면, 나야말로 모두를 있는 대로 째려보고 싶은 심정이다. 왜,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가.


 폴란드는 한때 2미터 거리 유지를 하지 않은 채 지나가면 경찰이 벌금을 물리고, 만 4세 이하의 어린이들을 제외하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행인에게도 벌금을 물렸다. 그때는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나 스카프 등으로 코와 입을 막고 다녔다. 그러나 5월 경, 여러 가지 제한 조치를 해제하면서 마스크 의무 착용령도 해제되었다. 경기침체와 마스크 착용은 하등 상관없지 않아? 하며 왜 마스크 의무 착용령을 해제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 '알아서' 마스크를 쓰고 다닐 줄 알았다. 이렇게까지 옳다구나 하고 모두가 벗어버릴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상황이 이런데 과연 폴란드의 코로나 19 사태는 나아질 수 있을까?




매일 아이를 찾을 때마다 탁아소의 보모는 아이가 낮잠을 잤는지, 얼마나 먹었는지, 혹시 열이 있는지, 오늘 무슨 말을 했는지 등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곳에 아이를 찾으러 오는 엄마 혹은 아빠 또는 나 같은 베이비시터들과 탁아소 보모들 사이엔 평등과 신뢰와 기쁨이 공존했다. 함께 아이를 키워나가는 그 모든 파트너들 속에 속하여 은은한 연대의 감정을 느끼던 그 시절, 온전히 행복했다.


 목수정 작가의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를 읽다가 '은은한 연대'라는 말에 시선이 갔다. 그렇다. 함께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과의 연대의 감정. 선생님과 부모 사이에 공존하는 평등과 신뢰와 기쁨의 감정. 그러나 나는 지금 아이를 학교에 보낸들 그런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개학이 다가오면서 주변 엄마들은 아이들을 다시 학교에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 중이다. 코로나 상황이 가장 극심했던 5월까지만 해도, 의무교육 나이가 아닌 유치원생 엄마들은 다들 가을학기에는 집에 데리고 있겠다고 입을 모았는데 막상 개학이 다가오니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한 모양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오히려 5월보다 현재 확진자수가 훨씬 더 많다. 도서관, 수영장, 레스토랑... 심지어 키즈카페마저도 아무런 운영 제제가 없는 상황이다. 휴가시즌이라 어딜 가도 사람들이 버글거린다. 이 상황에서 개학을 한다면? 상상하기조차 싫다.


 9월부터 온라인 수업이 아닌 반드시 대면 수업으로 학교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던 폴란드 교육부는 지난 며칠간 확진자가 두 배로 치솟자 다시 상황을 살펴보겠다며 결정을 유보한 상태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국제학교의 개학은 공립학교의 개학보다 2주 앞선다. 사립학교고, 폴란드 교육시스템을 따르지 않다 보니 교육부의 결정과 무관하게 학교 운영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동생들은 그렇다 쳐도, 초등학교 4학년인 큰애의 경우 학교가 대면 수업으로만 오픈을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한다. 총 15개 학년의 학생들이 모여있는 대규모의 국제학교로.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안전할 래야 안전할 수가 없는 곳이다. 폴란드의 확진자 그래프가 단 한 번도 하강세를 보인 적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학교는 안전할 때만 가야 한다. (사진출처: @mo.willems.studio)

가장 나를 괴롭고 힘들게 만드는 것은 여기에서 발생하는 '상대적 선택'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학교는 도무지 안전하지 않은 장소이고, 오로지 '운'에만 의존하며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기엔 아이의 안전과 생명이 너무나 중요하다. 그렇지만 많은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면 수업을 받으러 학교로 등교하고, 또 자유롭게 학교 수업을 받고 있다면? (남들의 시선에선) 바이러스에 유별나게 민감한 엄마 때문에 그 모든 기회를 누를 수 없다면? 그동안에 아이가 느낄 상대적 박탈감은 어찌해야 할까?


이미 동생들은 비슷한 경우를 한 차례 경험했다. 유치원은 지난 5월에도 문을 열었고, 다른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오픈하자마자 다시 유치원에 다녔다. 비록 우리 집에서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유치원에서는 5월 중 기관 내 확진자가 발생해서 유치원이 문을 닫았지만, 아이들이 다니던 유치원은 무사히 방학을 맞이하고 심지어 썸머 캠프마저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아이들은 당연히 '유치원이 너무 그립다.'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아이들을 차마 유치원에 보낼 수 없었다. 아이들이 다시 단체생활을 시작하고 나면 그 불안감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으리라.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아이들이 온전히 유치원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바이러스 탓도 있었지만 엄마 탓도 생겨버렸다. 엄마가 유난한 탓.


 조심스럽게 큰애에게 "학교 다시 가고 싶니?"라고 물어본다. 아이는 100%, 당연히 학교에 어서 가고 싶다고 소리친다. 교실에서 직접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고 싶고,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뛰놀고 싶고, 학교 매점에서 수다를 떨며 점심을 먹고 싶다. 온라인 수업은 가만히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야 하니 지루하기만 하고 지긋지긋하단다. 그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가서 슬펐다.


직접 등교 여부는 오롯이 학부모의 선택에 맡긴 채, 학교는 개학을 강행할 모양이다.

무엇이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까. 나는 오늘도 머리를 싸매 쥔 채 고민한다.



아이들은 다시,

학교와 유치원으로 안. 전. 하. 게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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