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나누는 마음

스무날의 시 필사 모임

by 주정현


어느 작가가 자기 책의 리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내용이 훌륭하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분은 시를 쓰는 분이거나 적어도 매일 글을 쓰는 분 같다고. 그 구절에 혹해 링크를 눌러보았다. 생각이 고유했고 문장이 편안하니 흐름이 매끄러웠다. 장식적인 문장으로 치장하거나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글은 적어도 아니었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의 글. 이 말이 무슨 훈장처럼 들렸다. 나도 한때는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안 쓰는 날이 있다. (중략) 돌아가고 싶다. 매일 글을 쓰지만 글에 길들여지지 않던 그때로. 매일 쓰는 글 특유의 맛. 삶을 곱씹어 만든 단맛. 달지 않은 팥이 꽉 찬 단팥빵 같은 글. 그걸 누가 맛있게 먹고 말해 주면 좋겠다. "매일 글 쓰는 사람의 글이네요."
은유, <쓰기의 말들> 중에서


2월에 새로운 모임을 하나 시작했다. 시를 필사하는 모임이다. 왜 시를 필사하고 싶었냐면...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에 나온 저 구절을 읽었기 때문이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문장에 그런 티가 났으면 좋겠지만, 매일 긴 글을 토해내는 건 일상에 치여 너무 어려웠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사람의 문장을 닮아보면 어떨까. 고유한 생각과 밀도 높은 문장. 내 글엔 그게 없었고, 그래서 그런 글이 탐났다. 시를 써본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빈 통에서 무언갈 끄집어내는 건 어려우니 일단은 내 속을 시로 꽉꽉 채워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를 필사해보기로 했다.


혼자서는 매일 한 편씩 꾸준히 필사하기 어려울 것 같아 함께할 사람들을 모았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모임을 열겠다고 하면 과연 사람들이 모여들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목표했던 인원수만큼 사람이 금세 모였다. 내가 무엇을 하든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이번에도 큰 힘이 되어주었다. 대다수는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 없는 언택트 인연이다. 그중 두 명은 8년 전 그녀들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먼발치에서 얼굴을 봤던 게 마지막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오랫동안 인연이 계속되고, 서로 힘이 되어주고, 늘 곁에 있는 것처럼 응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른다. 국경을 넘어 손쉽게 시 한 편을 나눌 수 있게 해주는 현대문명의 축복 속에서, 매일 같은 시를 읽으며 깊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인연을 만났다.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각자 나누고 싶은 시 두 편을 갖고 모여서 스무날 동안 하루 한 편씩 필사하기로 했다. 손글씨로 시를 옮겨 적은 필사 사진을 올리고, 단톡 방에 짤막한 단상을 남기면 그날의 과제를 완수한 것이다. 모임 주선자인 내가 매일 한국시간 자정으로 시를 배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모임 첫날. 무슨 시를 공유할 까 고민하다가 최근에 50쇄를 찍었다는(시집을 50쇄를 찍다니)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서 한 편을 발췌했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세계 곳곳에서 함께 시를 읽은 사람들의 단상이 배달되었다. 각자가 가진 슬픔 한 조각이 단상에 담겨있었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으니까, 모두 용기 내며 내보인 깊은 속마음이었다.


개인적인 욕심에서 시작한 필사 모임에 이런 진한 마음들이 담겨올 줄이야. 기대하지 않았던 큰 선물을 덜컥 받아버린 느낌이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얼굴을 마주 보는 사이였다면 과연 오늘 나눈 문장들과 아주 비슷한 한 단어라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을까. 일상적으로 매일 마주치는 타인들은 오히려 각자가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혹은 버텨가고 있는지, 그걸 어떻게 감당하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 서로가 관심이 없다. 그래서 마주하는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공허하다. 왠지 그냥 계속 웃어야 한다고 강요받는 느낌이다. 어쭙잖은 슬픔을 내보였다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이상하고 유별난 사람이 되어버릴 테니까.


그래서 모두가 솔직히 드러낸 그 슬픔이 낯설었다. 그리고 낯설어서 좋았다. 함께 모임에 참여한 누군가의 말을 빌려보자면 우리는 '비슷한 온도'를 경험하고 있었다.


오늘로 모임이 시작된 지 사흘째. 오늘을 칼릴 지브란의 '아이들'을 필사하기로 했다. 밤에 필사 과제를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려고 했는데, 저녁 무렵 '엄마 샤우팅'을 시전하고(크아 아아) 한바탕 집에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나니 도저히 시를 마주할 기분이 아니었다. 이 와중에 "아이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아이들은 당신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와 같은 시구들을 마주하면 또 나 혼자 한밤중에 폭풍 오열할 테니까.


필사 노트와 필기감이 좋은 펜을 준비하고, 본격적으로 시를 필사하기 전에 심호흡을 할 겸 이 글을 쓴다. 시 한 편 읽는다고 말끔히 죄책감이 씻겨 내려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시를 옮겨 적기 전에 나와 옮겨 적은 후의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또 그렇게 울고 웃으며 좋은 엄마가 되어보겠다는 새로운(그러나 너무 많이 반복되어 더 이상 새롭기는 어려운) 결심을 다시 한번 더 하겠지. 우리의 인생이라는 게 늘 그렇게 덜그럭 거리며 일상을 마주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 곁에... 함께 시를 나누고 감정을 나누는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스무날, 스무 편의 시를 나누는 동안, 이 모임의 종착지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