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포유류였다

모유수유의 진실 1

by 주정현
고개를 들자 주위의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이제 세상은 서로 나란히 존재하는 물체와 사물, 현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크워스카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하나의 덩어리였다. 싹을 틔우고, 죽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다양한 모습을 가진 한 명의 거대한 인간 혹은 한 마리의 거대한 짐승이었다. 크워스카 주위의 모든 것은 한 몸이었고, 그녀의 육신조차도 그 거대한 몸의 일부였다. 그 몸은 장대하고 전능하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막강했다. (...) 크워스카는 어떤 방식으로 메뚜기가 하늘과 이어져 있는지, 숲길의 개암나무는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더 많은 것도 보았다. 모든 걸 관통하는 힘을 보았고, 그 힘이 작동하는 순리를 이해했다. 우리의 위와 아래에 펼쳐진 또 다른 시간과 또 다른 세계의 윤곽들도 보았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들 또한 보았다.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들> 중에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 속 인물인 크워스카는 아기를 낳은 직후 세상과 생명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세상의 만물들은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고 연결되어 있는지, 그런 세상의 이치들이 여성에서 엄마로 재탄생한 그녀에겐 보였던 것이다. 출산 직후, 나는 소설 속에 묘사된 것과 같은 극적인 깨달음은 얻지 못했지만 단 한 가지, 나라는 존재의 새로운 정체성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바로 내가 '포유류'라는 자각이다.



그러나 나는 제대로 된 '포유류'가 맞을까


인간은 척추동물의 하위분류인 포유류, 즉 젖먹이 동물에 속한다. 포유류의 가장 큰 특징은 젖샘이 있어서 수유를 한다는 것이다. 즉, 포유류의 암컷에게는 새끼에게 양분을 공급할 젖을 만들어내는 유선이 있다. 나는 그전까지 한 번도 내가 포유류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렇다는 자각도 없었다. 스무 해가 넘는 동안 가슴이란 존재는 그저 그곳에 있을 뿐 내게 있어 어떤 실용적인 효용을 가진 신체 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 기관이, 속에 내재되어 있는지조차 몰랐던 유선이라는 존재가, 출산한 지 사흘쯤 지나자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흘이 지나서야 정체를 드러냈다는 건, 그 이전까지도 아무런 '포유류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능적인 것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그랬다. 임신을 하면 평소보다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나도 임신 7개월 무렵부터 예전에 입던 속옷이 꽉 끼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가슴뿐만이 아니고 신체 모든 기관이 다 '부풀어' 있었다. 아이를 임신하기 전에는 앞자리가 4로 시작했던 몸무게가 출산 직전에는 70킬로그램을 훌쩍 넘기게 되었는데, 이는 무려 50퍼센트에 가까운 체중 증가량으로 의학적으로 권장되는 적정 체중 증가량을 훨씬 상회한 수치였다. 그래서 임신 기간 내내 '몸무게가 너무 많이 늘었다'는 비판, 아니 비난을 정기 검진 때마다 들어야 했다. 나는 '여자들은 적당히 마르고 날씬해야 한다'는 신체 고정관념으로 인해 20대 내내 체중에 늘 민감하게 반응했었고, 일 년 내내 '다이어트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며, 실제로 결혼 직전에 예쁜 웨딩드레스 핏을 위하여 급진적인 식이요법을 강행하기도 했었는데, 그러다가 신혼 초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식욕이 임신을 핑계로 '봉인 해제'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급격한 체중 증가 속에서도 '가슴만은 그대로'였다.


대체적으로 신체 사이즈가 다 증가했었기 때문에, 막달에 백화점에 있는 한 속옷 가게에서 모유수유용 브래지어를 구매할 때는 내심 '이제는 사이즈를 나타내는 알파벳이 하나쯤 늘어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러나 가차 없이 솔직했던 속옷 가게 직원은 줄자로 내 사이즈를 재 보더니 "아직 B는 아니고요..."라는 멘트와 함께 그래도 출산까지 한 달 정도 남았으니 B를 기대해볼 수도 있겠다며, 하지만 아직은 여지없이 A라고 나의 현 상태를 정확하게 지적해주었다. 그리고 기대와는 달리 출산 이후에도 사이즈 변동은 (없진 않았으나) 매우 미비하여 예비로 장만해 둔 B 사이즈 속옷은 결국 영영 옷장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출산 사흘째 되던 날, 산후 조리원에 도착해서 '수유실'이라는 공간에 입성했을 때 나는 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신체적 변화가 오로지 나만의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글래머러스한 여자들이 그 공간에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왜 나만 아직까지 그대로인가, 왜 나는 제대로 포유류 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달라진 몸의 변화에, 그리고 그녀들로서도 생전 처음 접해보는 알파벳인 D나 E나 F에 대해 "어머어머, 웬일이니." 하며 스스로 놀라고 탄복하는 사이에, 왜 나만 여태껏 계속 A로 남아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형적인 것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면에서도 나는 위축되기 시작했는데, 나는 보통 출산한 지 사나흘쯤 지나면 유선이 발달하고 자연스럽게 젖이 퐁퐁 샘솟는 줄 알았다. 아기를 출산했던 산부인과에서는 모유수유를 권장한다며 하루에 서너 번 정도 병실로 아기를 데리고 와 젖을 물게 했는데, 본능적으로 엄마의 젖을 쪽쪽 빨아대는 아기를 보면서, 과연 무엇을 제대로 먹고는 있나 하는 궁금증이 절로 생겼지만 직접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러다가 산후조리원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침실에 구비된 유축기(모유를 젖병에 담아 아기에게 먹일 수 있게 젖을 짜내는 기계)를 처음으로 써 봤는데, 가슴에서 무언가 조금 나오기는 했지만 젖병의 가장 아래 눈금인 10밀리미터도 미처 채우지 못했던 것이다.


수유실에서 본 언니들은 모두 젖병 가득히 찰랑거리는 액체를 담아갔는데. 나는 왜 이렇게 스프레이로 젖병에 한두 번 모유가 뿌려지는 듯하다 그대로 멈췄을까. 대체 내 가슴은 왜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가...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며 유축 시간을 늘려보았다. 그러나 10분이고 20분이고 아무리 기계를 가슴에 대 봐도 더 이상 나오는 건 없었고, 나는 처음으로 유축한, 그러나 젖은 담겨 있지 않은 젖병을 들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고민은 이걸 아기에게 먹여달라고 신생아실에 갖다 줘야 하는가... 의 문제였다. 겉으로 보기엔 거의 빈 젖병이나 다름없었는데 여기에 내 이름을 써넣고 냉장고에 넣으면 과연 신생아실 간호사들은 이걸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이 엄마는 왜 빈 병을 넣어놨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빈 젖병일지언정 이미 한 번 사용한 젖병이니 그대로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반납하고 소독해서 다시 써야 하는 물건이었고, 그렇다면 어쨌거나 이 젖병은 언젠가는 제출되어야 할 물건이었다. 게다가 이름을 안 써서 보내면 그냥 사용 안 한 빈 젖병으로 알고 소독도 하지 않고 재사용을 할 것 같았고, 그렇다고 이름을 써서 보내자니 너무 부끄러웠다. 마치 정답이 하나도 쓰여 있지 않은 빈 수학문제지를 제출하는 느낌. 왜 하나도 안 풀었어?라고 누군가 되물으면 그거 한 시간 넘게 풀었지만 고작 그것밖에 답을 못 쓴 거예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그런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턱없이 젖양이 부족한 엄마였다.



엄마의 자존감은 모유 양으로부터 온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주인공 딱풀이 엄마 현진(엄지원 역)은 나처럼 모유수유가 어려운 엄마로 나온다. 남들은 수유실에서 아기들 잘만 먹이는 것 같은데, 나만 매번 모유수유를 실패하고 분유로 '보충'을 한다. 겨우겨우 있는 젖 없는 젖 끌어모아 젖병에 유축해서 담아가니 신생아실 선생님은 "엄마가 간식 가져오셨네"라고 말씀하신다. 악의는 없는데 가슴에 쿡 박히는 그 말. 나도 산후조리원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을 들어봤었다. 내 경우에는 10밀리미터가 채 되지 않는 모유를 아래 베이스로 깔고, 그 병에 분유를 타서 먹였다. (이건 뭐 칵테일도 아니고...) 그런데 왠지 모유가 그냥 부족하면 부족한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왠지 부끄러웠고 실패한 것 같았고 뭔가 나라는 사람이 부족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지 모르겠는데 뭔가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았다. 드라마에 나온 대사처럼 과연 '젖양과 모성은 비례'하는 것일까? 엄마의 사랑은 젖양으로 입증될 수 있을까? 완모(분유를 섞여 먹이지 않는 완전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는 성공한 엄마고, 혼합(분유와 모유를 섞여 먹이는 것) 수유를 하거나 완분(분유만 먹이는 것)을 하는 엄마는 실패자일까?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리고 무려 세 아이를 30개월 동안 모유수유를 했던 지금은 '그딴 게 어딨어'하며 웃어넘길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고 처절하게 노력했다. 조리원에 있는 3주의 시간 동안 분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어떻게든 젖양을 늘려서 완모에 성공하고 퇴원해야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미역국도, 스틸티(모유촉진차)도, 두유도 물배가 차오를 만큼 한가득 마시고, 틈나는 대로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이맘때 남겨놓은 모유수유 일기가 있는데, 매 세 끼니마다 미역국을 먹고, 하루에 두유 3팩을 마시고, 매일 스틸티를 2리터씩 마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우, 독한 것. 그 모든 게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노력이 무색하게도 조리원에서 나갈 때까지 그렇게 애를 썼지만 아기가 먹는 양만큼 충분히 모유가 나오지 않았다. 정작 아기가 엄마 젖으로만 모든 영양분을 충족했을 때는 태어난 지 백일이 좀 지났을 무렵이었다. 꼬박 4개월 동안 완전 모유수유를 하겠다고 발을 동동거렸다는 것이다. 매번 분유를 먹일 때마다 좌절감을 느끼며 말이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는 거 아니듯이 가슴 크다고 수유 잘하는 거 아니다


예전 글에 언급한 바 있듯이 내가 선택한 산후조리원은 전국적으로 잘 나가는 모유수유 전문가가 원장으로 있는 조리원이었다. 이 조리원 원장님은 정말 성심성의껏 엄마가 모유수유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초보 엄마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하고 깜깜한 '수유의 세계'를 환하게 비춰주는 구세주였다. 그런 그녀를 보고 이 산후조리원을 선택한 사람이 대부분인지라 내가 지냈던 곳이 다른 산후조리원에 비해 더 모유수유 성공의 의지를 다지는 엄마들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안 되면 그냥 분유 먹이고 말지'라는 나약한 소리는 차마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모유수유가 절대 원칙인 그 세계에서 나는 늘 풀이 죽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사이즈 작고 빈약한 가슴을 부끄러워했고, 남들은 펑펑 잘도 쏟아내는 젖을 늘 부러워하며 바라보았다. 그런 나를 보며 원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는 거 아니듯이 가슴 크다고 수유 잘하는 거 아니다."라고. 오히려 아이가 먹는 양에 비해 너무 젖양이 많으면 젖몸살도 올 수 있고, 유선도 막힐 수가 있고, 사출(모유양이 많아서 과도하게 뿜어져 나오는 현상) 때문에 아이가 모유를 거부할 수도 있는데, 나는 오히려 그런 문제가 없으니 그저 꾸준히 노력해서 차차 젖양을 늘려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유수유는 생각보다 너무 단순한 거라고, 우리는 '포유류'니까 자식이 먹을 젖을 만들어내는 건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일이니 지레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단, 동물적인 본능 때문에 엄마의 신체가 모유를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는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라고 했다. 엄마의 스트레스가 극도로 높으면 본인의 신체를 먼저 돌보고자 하는 생존 기제 때문에 모유 생산량이 줄어든다고. 그러니 모유양이 적다고 스트레스를 받는 게 제일 멍청한 짓이었다. 악순환의 반복이랄까.


물론 나더러 스트레스받지 말라던 원장님도 악의 없이 내게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가슴 마사지를 하는데 손으로 젖을 짜며 "오늘이 출산한 지 며칠 째라고?" "일주일째요." "하이고, 근데 아직도 요것밖에 안 나오나" 하는 식이다. 아니, 젖양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말라면서요. 그런데 그렇게 콕 집어서 젖양이 적다고 지적을 하시다니. 가뜩이나 유축기를 사용할 때마다 "제말 오늘은 30밀리미터는 넘기기를....!" 하며 애타는 마음으로 기계 앞에 섰는데, 늘 항상 바람보다는 적은 생산량을 보면서 고개를 푹 숙이는 게 일상이었다. 그게 뭐라고. 한편에서는 80밀리미터짜리 신생아 젖병에 다 담지도 못할 만큼 모유가 쏟아져 나와 120밀리미터짜리 큰 병을 개인적으로 구해다가 유축을 하는 엄마가 있었다. 수유실에서 나는 그저 입이 떡 벌어지며 그 광경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 넘치는 그 엄마는 오히려 너무 많은 모유양으로 인해 엿기름물을 내려 마시고, 유선염이 올까 봐 늘 전전긍긍했는데, 우리 둘이 딱 반반 섞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건넸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남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모유 미달 산모는 그저 해실 해실 웃으며 상처를 뒤로 삼켰다.


엄마의 자존감은 모유 양으로부터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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