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닌 젖소로 다시 태어나는 시간

모유수유의 진실 2

by 주정현
일단 아팠다. 먹고 살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야무진 입에, 연약한 부위의 살을 계속 깨물리는 쓰리고 아픈 건 당연하다. 누군가는 아스팔트에 가슴을 가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내 비록 직접 갈아본 적은 없지만 몹시 비슷할 것 같았다. 피가 나서 아픈데 어쩔 수 없이 또 물려야 할 땐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비명이 절로 나왔다. 아기가 이가 나기 시작했을 땐 귀여운 아기 악어 입에 가슴을 넣는 기분이었다.

이진민 저,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중에서


진짜 피가 나는 피나는 노력


'피나는 노력'

엄청나고 대단한 노력을 일컫는 이 관용적인 표현이 현실이 되었다. 모유수유를 시작한 지 사흘만에 가슴에 검붉은 것이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피딱지였다. 피딱지는 피딱지인데 차마 딱지가 굳어질 틈이 없이 계속해서 혹사받는 피딱지였다. 가슴 끝부분이 갈라져서 마디마디 피가 맺히고, 그 상처를 아물기 위해 딱지가 막 굳어지려는 찰나마다 나는 아이 입 속에 다시 가슴을 넣어 딱지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힘껏 가슴을 빨아들일때마다 악 소리가 절로 나는 쓰라림과 찌릿한 고통이 가슴 전체를 덥쳤다. 와, 모유수유가 이런 거였어?



그동안 내가 상상했던 모유수유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보다 평화롭고, 아늑하고, 엄마와 아이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깊이 교감하는,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모성철철'의 시간이었다. 피철철이 아니었다고. 이렇게 피와 고통이 난무하는 모유수유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 입 속에 가슴을 넣어야 할 때마다 곧 닥쳐올 고통의 두려움 속에서 아이를 안은 손은 싸늘하게 차가워지고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나 막 아이를 출산한 이 시기에 제때제때 수유를 하지 않으면 젖양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가슴 속에 남아있는 젖이 염증을 일으켜서 젖몸살이 올 수 있었다. 못해도 세 시간마다 가슴 속을 완전히 비워줘야 했다.

아이에게 직접 젖을 물리는 것보다 유축기를 사용해서 모유를 빼 내면 적어도 상처에 침이 닿아 느끼는 쓰라린 고통은 없었다. 아이 입 속에서 피딱지가 퉁퉁 불어서 흐물거리지도 않고 조금 상처를 건조시킬 수 있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유축기의 압력에 또다시 상처가 벌어지고, 모유에 피가 섞여 나오며 분홍빛 철분 가득한 철분맛 우유(그러나 색깔은 딸기 우유)가 만들어지자 나는 젖병을 들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걸 아기한테 먹여도 될까. 이걸 신생아실에 갖다줘야하나 말아야 하나. 그리고 이 피투성이 현실 속에서 대체 왜 아무도 그동안 모유수유의 진실을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내가 상상했던 아늑하고 평화로운 모유수유가 가능해진 건 적어도 아기가 태어난 지 백일은 지난 후, 그러니까 산후조리 기간이 한참 다 지난 후였다. 그제서야 내 가슴은 '엄마의 가슴'이 되었다. 살갗이 벗겨지고 아무는 일이 여러번 반복되자 매일 여러번 수유를 반복해도 상처가 생기지 않을 만큼 두꺼운 피부를 얻을 수 있었고 매일 젖을 생성하고 비워주며 유선이 제대로 뚫리자 젖몸살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인 순환력을 갖추었다. 엄마 뱃속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바깥세상에 적응하는 시간, 출산으로 손상된 몸이 회복되는 시간, 그리고 엄마의 몸으로 거듭나는 시간. 그 시간이 꼭 백일만큼 필요했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가 닿기 위해 매일 2-3시간마다 한 번씩 젖을 물리는 내 가슴은 그때마다 피를 흘려야 했다. 그야말로 모유 수유를 계속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강남역으로 출근하는 '목장에서 일하는 여자'


모유수유라는 게 이렇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기에, 우리 초보엄마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앞서 얘기한 대로 내가 있던 조리원에는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원장님'이 있었지만, 수십명의 산모들을 원장님 혼자서는 커버할 수 없었다. 적어도 조리원에 있는 기간 동안에는 젖몸살을 예방하기 위해 누군가가 매일 가슴마사지를 해줘야 했는데, 여러 명의 산모들을 원장님 혼자서 케어하려면 아마 그분의 손목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있는 조리원에는 세 명의 전문 마사지사들이 따로 있었다.

일반적인 마사지샵과 다르게 산후조리원의 마사지사들은 '배'과 '가슴'만을 전문적으로 공략한다. 우선 '배'가 공략대상인 이유는 출산 직후 산모의 배를 보면 납득할 수 있다. '이거이거 어떻게 좀 해야겠군.' 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데 분명 아기가 쑥 빠져나왔는데도 D라인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다리의 부종이라든지, 수유하느라 굽은 어깨라든지, 그동안 아이를 이고지고 다니느라 혹사당한 허리라든지 도움이 필요한 신체부위는 너무 많았지만 그곳은 가볍게 '터치'만 할 뿐, 그녀들의 목적은 '가슴'이었다. 가슴마사지는 앞서 말한대로 젖몸살을 예방하고 원활한 모유수유를 돕는 마시지로, '오케타니'라고 해서 이것만 따로 하는 전문 마사지사들도 있다. 손마사지로 유선 내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막힌 유관을 열어 젖 생성과 배출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산후조리원에서 이 마시지를 받아본 산모들이라면 아마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일단 남의 손에 이렇게까지 무방비하게 나의 가슴을 맡겨본 적이 없었고, 또한 타인이 내 가슴을 이렇게 주무르고 저렇게 조지는(!) 엄청난 경험을 침대에 누워 온전하게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산 이전까지 내게 풍만한 여성의 가슴은 어딘지 모르게 로맨틱하고 색슈얼한 느낌의, 에로틱한 느낌이 가득한 신체부위였는데, 출산 이후의 가슴은 그저 젖을 생산하는 신체기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매일 수십개의 젖가슴을 상대해야 하는 그녀들에게도 가슴은 그저 가슴일 뿐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이 사정없이 내 가슴을 주무르는 경험. 굉장히 '굴욕'적인 순간이긴 한데, 이미 출산하면서 있는굴욕 없는굴욕 다 경험해본터라 이쯤 되면 이정도 굴욕에는 그저 덤덤해지기 마련이다.

가슴에서 모유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하면, 그리고 그걸 적절한 손놀림으로 잘 짜주면 젖소 못지않게 풍부한 모유를 생산할 수 있다. 그리고 침대에 누운 나는 마사지를 받은지 사흘만에 그 솟구치는 모유가 내 얼굴로 흩뿌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젖몸살로 가슴이 돌덩이만큼 딱딱해져 있었는데, 마사지사의 은혜로운 손길이 닿자 유선이 퐉 하고 뚫리면서 그대로 가슴에서 분출된 모유가 천장까지 닿았다는 경험담을 전해주기도 했다. 천장까지 닿았다고? 그게 가능해? 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솟구치는 모습을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고개를 끄덕일만 하다. 내 마사지사도 워낙 젖량이 적었던 나를 고무하려는 의도에서였는지 젖이 원할하게 나오기 시작하자 보이세요? 보이세요? 를 연신 외치며 온 사방에 나의 젖을 흩뿌려주었다. 오른쪽, 왼쪽, 360도 모든 유선이 제대로 잘 뚫려있다는 걸 증명해주기 위해 그녀는 그런 액션을 보여줬는데, 마사지사의 유쾌한 목소리와 주변의 박수소리와 어우러져 '모유분출쇼'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 듯만한 이벤트였다.

문제는 그 '모유분출쇼'를 하면서 내 얼굴과 몸에만 모유가 튀는 게 아니라 마사지사에게도 묻는다는 거다. 나야 뭐, 원래 내 몸에서 시시때때로 흘러나오는 게 모유고, 그래서 매번 조리원에서 뽀송한 새 옷과 수시로 닦을 수 있는 스팀타월을 제공해주지만 마사지사는 어땠을까? 강남역 근처에 있었던 그 조리원으로 출퇴근을 하는 그녀는 가끔 여름철에 자기가 버스에 오르면 주변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자신을 바라볼 때가 있다고 했다. 조리원에 있을 때는 산모들과 신생아들에게 둘러쌓여 있어서, 워낙 익숙한 냄새에 묻혀사는지라 체감하지 못하는데 그녀의 옷과 머리카락에서는 사실 젖비린내가 폴폴 풍겨나오고 있다는 사실. 겨울철에는 그나마 나은데 날이 습하고 더운 여름철에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그 잠깐 사이에 그 냄새가 '썩은 우유 냄새'로 변한다. 그런 그녀가 버스에 올라타면... 그 이후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그저 너무 웃기기만 했지만, 성냥갑처럼 사람들로 빽빽한 여름날의 버스에서 바로 옆사람이 그런 냄새를 풍기고 있다면 나라도 표정관리가 안 되었을 것 같긴 하다. 그리고 하루이틀이아닌 매일매일 모유와 함께하는 삶. 그렇게 축적된 몇 년의 시간들. 그런 그녀를 보며 평소 그녀의 체취에 의아해했던 한 지인이 조심스레 물어봤다고 한다.

"혹시, 목장에서 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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