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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Apr 27. 2021

락다운과 코로나의 냄새

대문 안에 갇혀 느끼는 봄내음

 폴란드에도 봄이 왔다.


 그러나 올해 봄은 좀 많이 변덕스러운 것 같다. 어제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은 교문 앞에서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 아까 눈 내리는 거 봤어?"


 3월에는 폭설이 내려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더니, 바로 다음날 영상 20도까지 온도가 급상승했다. 뭐 이렇게 날씨가 하루 만에 널을 뛰는지 참 황당했는데, 이곳 현지인들은 봄의 변덕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긴다. 항간의 소문에는 5월에 눈이 내리는 것도 본 적 있다 한다. 내가 상상하는 봄의 풍경이랑 좀 많이 달랐지만 봄햇살에 외투도 입지 않고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그들의 웃음소리를 닮은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은 감격스러웠다.


아직 겨울인가 하는 감상에 젖어있을 틈도 없이, 이제 온다는 예고도 없이, 봄이 훌쩍 다가왔다.

 


3월의 봄내음은 실로 독특했다. 아직 공기는 차가운데 겨울의 냄새와는 많이 달랐다. 공기에 섞여 들어온 봄내음을 맞고 있자니 익숙한 봄 냄새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 이거... 락다운의 냄새다."




 폴란드는 작년 3월에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독일 국경에 인접한, 영어로 번역하면 '그린마운틴'이라는 지명을 가진 '지엘로나 구라'라는 도시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다. 독일에서 폴란드로 입국하는 고속버스에 탔던 확진자를 중심으로 버스운전기사, 같은 도시의 거주민 등 또 다른 제2의, 제3의 확진자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아직 확진자가 채 40명도 되지 않았을 시절 총리는 락다운을 선언했다. 이미 다른 유럽 국가에서 걷잡을 수 없이 코로나가 확산되었던 시기, 초반의 작은 불씨를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였을 것이다.


 아이들 사물함에 있는 물건을 채 비울 새도 없이 모든 유치원과 학교가 문을 닫았다. 한두 달이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면 나는 상당히 비관적이었다. 그 예감은 그대로 현실이 되어 여름방학까지 휴교가 이어졌고 그래도 되돌아 생각해보니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절이었다. 매일 아이들이랑 하루 일과를 계획해서 유치원처럼 홈스쿨링 수업을 하고, 부지런히 삼시세끼 식사와 간식을 챙기고, 그리고 매일 열심히 마당에서 뛰어놀았다. 대문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지만 성장기 아이들에게 바깥 활동이 줄어든다는 것은 코로나 시국의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이 될 거라 판단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햇살이 내리쬘 때면 무조건 마당으로 아이들을 잡아끌었다.

 그때 마침 계절은 3월. 그 절망스러웠던 3월의 일상을 채운 봄의 공기가 있었다.


 일 년이 지나 다시 3월의 봄내음을 맡았을 때, 그날의 기억이 선연히 떠올랐다. 억지로라도 매일 마당에서 서너 시간씩 시간을 보냈던 덕분일까. 기억 속에 각인된 냄새, 그 공기 냄새는 올해 3월에도 여전했다. 이걸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급격한 일상의 변화만큼이나, 급격한 계절의 변화만큼이나 달라진 공기의 냄새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겨울의 공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눈이 소복이 쌓여있던 3월인데도 차이가 느껴졌다.


 그런데 이 냄새를 나는 무의식 중에 '락다운의 냄새'라고 이름 붙여버렸다. 이 공기 냄새는 내게 일 년 전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마음껏 바깥공기를 쬐고는 있지만 대문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던 그때의 씁쓸한 감정들을 뭉클하게 되살렸기 때문이다. 이 냄새는 거리의 자동차 매연도, 길거리의 식당 냄새도 전혀 끼어들지 않은, 순전히 우리 집 마당에서만 느낄 수 있는 봄내음인데, 그만큼 정확히 똑같은 어떤 특정한 냄새가 우울했던 작년 3월의 감정을 훅 불러일으켰다.


 그 뒤로 발코니를 나설 때마다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아, 오늘도 또 나네, 이 락다운 냄새. 이 공기를 담아 향수를 만들 수 있다면, 나는 냄새를 맡을 때마다 무조건 2020년의 3월을 떠올릴 것 같았다. 마당에서 아이들과 달팽이를 수집하던, 봄햇살에 비눗방울을 불어주던, 막 두 발 자전거를 연습하던 그런 기억의 냄새.




 그 기억의 냄새는 온전히 2020년의 봄을 위해서만 헌정되었다. 현재 2021년의 봄은 아무런 냄새 없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4월 첫째 주, 부활절의 시작을 알리는 성 금요일부터 남편은 열이 났다. 처음엔 가벼운 몸살 기운과 미열로 시작했던 그 증상은 빠르게 고열과 극심한 근육통, 그리고 깨질 것 같은 두통으로 연결되었다. 부활절 연휴가 끝나고 휴일이었던 성 월요일까지 지나고 나서 남편은 화요일 아침에 두 시간이나 줄을 서서 겨우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저녁 무렵 보고된 결과는 양성이었다. 환자 본인은 열흘간, 그리고 밀접 접촉자인 가족들은 17일간 자택 격리되었다.

 당시 일일 확진자가 3만 명에 육박하던 폴란드는 2차 대유행에 한참 시름하던 중이었다. 병원에 빈 병상은 없고, 있더라도 환자 개개인을 신경 써줄 만한 여력이 없고, 창고 같은 병실에 수십 개의 병원 침대가 늘어서 있는 풍경을 전해 듣고 남편은 집에 머물렀다. 아슬아슬했다. 아프고 힘들었던 4월이었다. 고열과 호흡곤란에 괴로워하며 누워 있던 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감염 위험 때문에 가까이에서 간호해주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봐야 했던 아픔도, 가슴 졸이며 방문 밖에서 기침 소리를 듣던 밤도, 새벽에 일어나 문틈으로 들리던 작은 숨소리에 겨우 안심하며 다시 아이 침대 옆으로 돌아가 누웠던 순간들도,

 모두 현실에서 기억으로, 현재에서 과거로 바뀌었다.


 격리 일주일째, 나도 열이 나기 시작했을 때의 절망스러웠던 기억도 말이다.



 

 비교적 최근의 기억과 감정이라, 쓰다 보니 울컥 눈물이 나서 여기에 더 구체적으로 글로 옮기기는 힘들지만 결론적으로 4월의 나는 코로나 후유증으로 후각을 상실했다. 지금은 발코니 문을 열고 나가도 아무런 공기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뽀송한 빨래의 햇빛 냄새 같은 그 봄내음이 있었는데, 그리고 아마 지금도 있을 터인데 아무리 코를 킁킁거려봐도 느껴지는 건 무감각뿐이다.

 지난주에는 바로 옆에서 남편이 라면을 끓이고 있었는데, 그걸 못 알아채고 있다가 탁자 위에 올라온 라면 그릇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라면 냄새를 바로 옆에서 못 맡을 수 있지. 신기하리만치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내 후각은 참으로 기묘하다. 냄새라는 건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질이라서, 거기 있는데 못 느끼는 건지, 아니면 없어서 안 느끼는 건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마당에 나갈 때마다 아마 여전히 그 봄내음이 있겠지만 내가 못 느끼는 거겠지, 지금도 계속 봄은 향기를 풍기며 다가오고 있겠지, 하고 그저 상상할 뿐이다.

 봄에 대한 감각을 하나 잃어버리고 봄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도 모든 일엔 시간이 약이니 기다리다 보면 후각은 돌아오리라 믿는다. 그때 이미 마당의 봄 냄새가 여름 냄새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면 또 봄내음을 맡으려면 내년 3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1년이란 시간은 아직은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시간, 그러나 늘 그랬듯 정신 차려보면 성큼 다가와있을 시간이다. 내년 3월쯤 어느 날, 발코니 창문을 열며 "아, 락다운의 냄새다."라고 감탄할 나를 상상해본다.

 그때쯤이면, 이 모든 어려운 시간이 끝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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