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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Jul 15. 2021

빼기의 일상


미용실에서 필요한 언어란 얼마나 구체적이면서도 미묘한가. 앞머리는 가볍게 쳐주세요, 귀밑은 칼단발로 쳐주세요, 층은 내지 말아주세요, 목덜미는 바리깡으로 마무리 해주세요… 모국어도 영어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끼리 그런 말들을 정확히 주고받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이슬아 저 <일간 이슬아 수필집 >





 한국에 온 지 2주가 지나고 해외 입국자 자가격리가 해제되었다. 길고 지루했던, 그러나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지나갔던 나날들. 목요일 정오를 기점으로 격리가 해제되어 그날 오후부터 외출이 가능했다. 자유의 몸이 된 내가 가장 처음으로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미용실'이다.  


엄청 건강한 모발이네요.


 내 머리카락을 꼼꼼하게 살펴본 미용사가 건넨 첫마디였다. 10대 때부터 늘 항상 미용실에 가면 머릿결이 상했다더니, 영양 테러피가 필요하다느니, 샴푸를 바꿔야 한다느니 늘 항상 혼나기만 했었는데... 살아생전 미용실에서 이런 말은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 생경한 경험이 너무 낯설어서 웃겼다.


 그리고 이어진 미용사의 말은 더 재미있었다.


머리에 진.짜. 아무것도 안 하셨나 봐요.



 

 내가 사는 폴란드 바르샤바에도 미용실이 있지만 한 번도 머리를 하러 간 적은 없었다. 일단 원하는 머리스타일을 폴란드어로 설명하기가 어렵고,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미용사는 만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동양인과 서양인은 모발의 성질 자체가 달라서 선뜻 내 머리를 맡기기가 어렵다. 예전에 미국에서 유학할 때도 서너 시간씩 고속도로를 달려 동양인 미용사를 찾아가곤 했었는데, 서양인 중에 선뜻 내 머리를 맡겠다고 나서는 미용사도 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모험정신과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용감한 미용사가 가끔 가위를 들어주는데, 한창 작업하던 미용사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치기라도 하면....(이하 생략).


 그렇다고 동양인 미용사는 아무 문제없냐면 그것도 아니어서, 예전에 일본인 미용사가 운영하는 샵에서 양쪽의 밸런스를 맞춰간다며 내 머리는 계획했던 것보다 속절없이 짧아지는데 뭐라 말도 못 하고 그저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묵묵히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웬만하면 한인 미용실을 찾아가고, 기왕이면 한국에서 해결하려 한다.  


 작년에는 거기에 더해 코로나바이러스도 문제였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 폴란드 정부가 셧다운 정책을 펼치자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미용업이었다. 오랜 시간 근거리에서 긴밀하게 접촉해야 하는, 어찌 보면 바이러스에 가장 취약한 서비스. 1차 유행시기 동안 몇 달, 2차 유행시기 동안 또 몇 달, 근 반년 넘게 정부 정책으로 영업이 강제 중지되었다.

 

 덕분에 한 달에 한 번씩 다듬어줘야 하는 남편과 아들의 머리는 내 손에 맡겨졌다. 바리깡을 손에 들고 소매를 걷어붙이면 남편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쳤다. 아들만 한두 번 내 손으로 해주고 남편은 슬슬 장발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버티고 버티다 남편이 처음으로 내 손에 머리를 맡겼던 그다음 날, 10대 딸아이 손에 바리깡을 맡겼던 어느 부하직원은 화상회의에 삭발을 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아마추어 미용사가 이리저리 해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니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확 다 밀어버린 것이다. 내 솜씨에 내심 불만스러워했던 남편은 그 모습을 보고 그나마 사람답게 깎아줘서 삭발을 하지 않아도 된 것 자체만으로도 내게 감사했는데 이게 다 3년 전에 엄마 손에 머리를 맡겼다가 홀랑 망쳐서 삭발을 경험했던 아들 덕분이란 걸 남편은 알까. 남편은 내게 감사할 게 아니라 앞서 희생했던 아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남들 머리도 못 깎으니, 제 머리는 더 못 깎을 수밖에.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머리카락은 속절없이 길었고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 싶을 적에 한국에 왔다. 거울을 볼 때마다 '미용실 미용실 미용실...'을 얼마나 외쳐댔는지 모른다. 그러는 동안 머리카락은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길어졌다. 물론 파마니 염색이니 하는 시술도 전혀 없었고 말이다. 미용사의 말마따나 머리에 진.짜. 아무것도 하질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엄청 건강한' 머리카락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을 열심히 자르고 다듬어서 파마약을 듬뿍 바르고 열처리를 했다. 이제 엄청 건강한 머리카락은 덜 건강한 머리카락이 되었고 그 자리에 자기만족이 남았다. 빼고, 빼고, 빼고... 코로나와 해외살이로 뺄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뺐던 일상에 다시 더하기를 하나씩 추가하는 중이다.


 빼기의 일상. 그리고 더하기의 일상. 둘 중에 어느것이 더 좋다고, 더 낫다고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뺄 때는 답답했는데 지나고 보니 장점이 있었고, 더할 때는 즐거웠는데 나중에는 부질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2년 동안 미뤄왔던 커트와 파마를 하는 동안, 오전 내내 나 말고 다른 예약손님이 없었던 한산한 미용실을 떠올려 본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 내 머리카락이 튼튼하고 건강해지는 동안, 그 빈자리를 한숨으로 채우던 사람들이 있었다. 2년 전에 내 머리를 다듬어줬던 미용사는 작년 여름에 가게를 그만뒀다고 한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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