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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May 11. 2020

코로나 사태 속 폴란드의 풍경


 폴란드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매일 300~40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매일 수십 명의 사망사례가 보고된다. 최근에는 남부 실롱스키 지역의 광부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코로나 19가 확산되고 있고, 노인요양원 집단감염 사례도 계속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확진자가 아직 40명에 불과했을 때 빠른 휴교령과 휴업령, 그리고 국경을 일찌감치 봉쇄했던 폴란드는 제한 조치가 2달이 가까워져 가자 버티지 못하고 몇몇 규제조치를 해제하게 되었다. 그중에 유아원과 유치원의 휴교령 해제 조치도 있었다.

 과연 이 상황에서 유치원의 문을 여는 게 옳은 일일까? 가장 어린아이들부터 다시 등교를 하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과연 학부모들은 안심하고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보낼 수 있을까? 사실 유치원이 다시 문을 열게 된 데에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배려하고, 존중한다기보다는 어른들의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경위는 이렇다.



 폴란드에는 만 8세 미만 자녀가 보육시설의 이용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정부가 육아보조금을 의무 지급해야 하는 법이 있다. 즉, 지자체장이 보육시설 폐쇄를 결정할 경우, 보육시설이 전염병으로 인해 보육이 불가능한 경우, 부모가 자녀를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한 경우 등이 이에 해당된다. 코로나 19로 인해 장기간 보육시설이 문을 닫게 되면 정부의 육아보조금 지출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데, 중앙정부는 5월 6일부터 유치원과 유아원의 문을 열어도 된다는 승인을 하며 단, 국공립 유치원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이 최종 결정한다고 조건을 걸었다. 사립유치원의 경우 보육원장(개인 또는 단체)이 지자체장 결정에 관계없이 최종 결정할 수 있다. 최종 결정권을 지자체와 보육원장에게 미루면서, 정부는 보육시설을 열든 닫든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어른들의 비인간적인 정치 행위에 밀려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내야 하는 장소가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도 휴교령 해제 조치에 따라 지난 5월 4일 다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보내지 않았고, 완전히 유치원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내가 살고 있는 바르샤바 시의 국공립 유치원은 지자체장의 결정에 따라 문을 열지 않았지만, 우리 아이들은 폴란드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하는 교육기관인 사립유치원에 다녔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었다. 주변의 다른 사립유치원은 개원에 앞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지의 여부에 관해 설문조사를 거치고, 80% 이상의 학부모가 보낼 의사가 없음을 밝히자 개학을 다시 연기하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은 그런 과정이 없이 일방적인 보육원장의 개학 알림 메일이 왔고, 바르샤바 시가 제시한 보건위생조건에 대한 장문의 안내 메일이 왔다. 아이 한 명당 4제곱미터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최대 12명까지만 입실 가능하다, 아이들을 필수적이지 않은 개인위생용품(칫솔, 치약 등)은 유치원으로 가지고 오지 않는다... 등등. 우리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나이는 만 18개월에서부터 만 6세까지.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계속해서 서로 떨어져 지낼 리도 만무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아주 어린아이들은 낮잠도 자야 할 텐데, 유명무실한 개인위생지침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최근 교육부 장관은 아이들이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며, 유치원에서 옷 갈아 입고 교실 안으로 들어온 다음에는 아이들과 교사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한 방송국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아니, 뭐라고...?


초등학교 3학년 이하의 아이들은 개학 이후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교육부 장관 인터뷰


 폴란드 정부는 지난 4월, 외출 시, 혹은 모든 상점이나 관공서에서 입이나 코를 가릴 것을 법으로 규제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거리를 나가보면 입이나 코를 가리고 있어야 할 마스크가 그냥 턱 아래에 걸쳐져 있거나, 코는 밖으로 드러내고 입만 스카프로 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 4세 이하의 어린이만 예외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리의 중고등학생 청소년들까지도 얼굴 주변에 아무런 가리개도 착용하지 않은 채 친구들과 얼굴을 맞대고 있다. 지난 4월까지는 만 18세 이하의 청소년들이 보호자 없이 단독으로 외출하는 것조차 규제대상이었지만, 5월 이후 계속해서 완화 조치가 발표되면서 14세 이상 청소년들의 외출은 다시 자유롭게 허용되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은 날씨가 따뜻해지고 공원이나 쇼핑몰 등 다시 개방되는 시설이 많아지자 자꾸 다시 거리로 나온다. 4월까지만 해도 지나다니는 차도, 행인도 없는 텅 빈 거리가 마치 유령도시 같았다면, 이번 주는 수많은 자전거와 거리에 가득한 차들 때문에 도로도 막히고,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북적댄다. 그리고 모두 마스크를 제대로 쓰고 있지 않다. 한국에서 쓰는 것과 같이 인증받은 필터 마스크가 아니라 집에서 만든 천 마스크나 스카프일지언정, 모두가 함께 개인위생에 신경 쓰고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 과연 이렇게 안일하게 행동해도 되는 것일까? 나만 여전히 폴란드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확진자 그래프(좌), OECD 국가별 인구 1000명당 검사수(우)


 폴란드의 확진자 그래프는 급격한 증가세를 그리고 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감소세도 아니다. 이는 OECD 국가 중 인구 1000명당 검사수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환자가 없다기보다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더 정확할 수도 있다. 폴란드는 현재까지 15996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800명이 사망하였다. (5월 10일 기준). 사망률도 5% 정도로 결코 낮지 않다. 그에 반해 인구 1000명당 검사수는 7.4명으로, 회원국 평균인 23.1명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수치이다. 다만, 상황이 더 심각한 주변국들에 가려지고, 사태는 지루하고 길게 지속되고, 이런 식의 대규모 전염병을 경험해보지 않은 폴란드 사람들은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안일함 속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어린아이들부터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다.


 지난 5월 6일, 법적으로 개원이 허용된 보육시설은 전국 약 2만 2천여 곳, 이 중 보육원장 혹은 지자체장의 결정으로 개원해 1600여 곳의 유치원이 문을 열었고, 원아 약 1만 1천여 명이 등원했다. 사립유치원 또는 맞벌이 가정이 많은 중소도시에 소재한 보육시설이 대부분이었고, 맞벌이 부부나 홀로 자녀를 키우는 경우 생계를 위해서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보육시설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적용되는 지침은 아이들에게는 의미가 없고, 보육시설마다 단기간 내에 위생적인 환경에서 개원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듯해서 위생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곳도 많을 거라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 대도시에서도, 국공립에서도 일부 보육시설을 점차적으로 개원해나갈 거라고 발표한 폴란드. 한국의 이태원 2차 확산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안전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개원을 결정하는 이곳 정부를 보면서,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불안한 일상을 살고 있다. 어른들의 결정으로 단체생활을 시작한 아이들의 안전은 과연 누가 책임지는가? 과연 코로나 시대의 폴란드는 아이들을 보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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