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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Nov 26. 2019

폴란드살이 1년 차

단 한 번도 살아볼 것이라 상상하지 않았던 나라에서 살아보기

 이번 주 일요일은 이곳 폴란드 바르샤바에 온 지 만 1년이 되는 날이다.

 작년 10월에 남편이 이곳 주재원으로 발령받고, 나는 같은 달에 비자를 받아 12월에 따라왔으니 '내가 폴란드에서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는 1년이 조금 넘은 셈이다. 그 막막했던 시간을 지나 어느새 이곳 생활에도 서서히 적응하고, 얼마 전엔 올 하반기에 새로 한국에서 파견될 주재원 가족과 연락이 닿아 현지 정보라며 이것저것 오지랖도 부려보았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가 현실이 되었다.   


 처음에 남편에게 '폴란드'라는 나라 이름을 들었을 때, 어딘지 위치조차 가늠되지 않아 당황하며 아이들 지구본을 돌려봤던 기억이 난다. 나는 막연하게 헝가리나 리투아니아처럼 동유럽의 어느 작은 나라를 상상했었는데 막상 세계지도를 살펴보니 생각보다 땅덩어리가 너무 커서 놀랐고, 유럽 중심부에 위치해있어서 더 놀랐다. 바로 옆 나라인 독일은 어디에 있는지 지도를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는데, 독일 못지않게 큰 영토를 가지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폴란드라는 나라는 왜 그동안 한 번도 지도에서 자세히 살펴본 적이 없었을까. 아니, 어떻게 이렇게 이 나라에 대해 까맣게 모를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렇게 단 한 번도 내 인식 속에 깊이 들어온 적 없던 이 나라에서 내가 살게 된다고 들었을 때 그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출국까지 남은 기간은 3개월 남짓. 갑자기 하루아침에 모든 일상이 바뀌어버렸다.


유럽의 정중앙에 위치한 폴란드. /그래픽=김연수 디자이너. 출처 조선일보.


 서른 살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살아볼 거라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않았던 나라에서 살게 된다니. 그러나 감상에 젖어있을 틈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라인 만큼 그곳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당장 초등학생인 큰 아이가 다닐 학교부터 정하고, 집을 계약하고, 차를 사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그 뒤로 틈만 나면 인터넷 검색창에 폴. 란. 드. 세 글자를 입력하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고, 뭐든지 앞서 걱정하는 성향이 있는 나는 심지어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한 셋째를 위해 폴란드에서 구할 수 있는 기저귀 브랜드까지도 검색해보곤 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럴 시간에 폴란드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야 했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잠든 밤엔 부지런히 온라인 강의로 폴란드어 기초 강좌도 수강하고, 현지 생활정보를 검색하고, 나 혼자 가는 게 아니라 어린 세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만큼 철저하게 준비해서 가야 한다고 잔뜩 긴장해있었다. 그때의 나에게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니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고 누군가 토닥여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 나았을까.


 알고 보니 폴란드는 유럽의 정중앙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과 저렴한 물가로 인해 한국 대기업 중 진출해있지 않은 기업을 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주재원들이 파견된 나라였다. 내가 사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도 한국 주재원들이 많았지만, 이곳에서 4시간 정도 떨어진 브로츠와프에는 LG화학에서 대규모 공장을 신설하는 관계로 한국 협력업체부터 건설사까지 엄청나게 한국인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사는 것에 비해 현지 생활정보는 턱없이 부족했다. 막상 직접 이 나라에 발붙이고 살면서 몸으로 부딪혀가며 얻을 수 있는 것이 현지의 생활정보였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1년 전 그때는, 아이들도 너무 어렸고 폴란드는 너무 멀었다. 어떻게든 시간이 지나가리라 믿으며 버틴 9시간의 비행. 그리고 도착. 드디어 내가 앞으로 살게 될 도시이자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에 왔다. 그러나 막상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를 너무나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겨울의 날씨. 어느 나라든 겨울은 춥고 긴 기다림의 계절이지만 특히 폴란드의 겨울은 혹독했다. 12월 폴란드의 일몰 시간은 오후 3시. 그마저도 한겨울엔 맑은 날을 찾아볼 수 없이 매일이 흐렸고 30분 정도 햇살이 비추는 날은 정말 양호한 날씨라 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이렇게 어두운 집구석에서, 자꾸 깜깜한 오후에 잠을 자게 되니 낮잠을 밤잠처럼 자며 아이들은 몇 주가 지나도록 시차 적응을 하지 못했다. 마트에 가서도 고기는 무슨 부위를 사야 하는지, 계산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점원에게 물건을 부탁하려면 어느 줄에 서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낯선 언어와 낯선 시스템. 식당에서 음식 하나 제대로 주문하는 것도 너무 어려웠었다. 집 주변에 뭐가 있는지 하루 종일 구글맵을 뒤지며 검색하다가도 짧은 폴란드어와 추운 날씨 때문에 다 포기하고 집에만 있어야 했던 작년 12월.


해가 뜬 대낮에도 겨울의 하늘은 이렇게나 우울하다. 겨울을 한 번 보내보면 왜 여름에 유럽 사람들이 웃통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이제는 안다. 그 12월이 폴란드의 모든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을. 많이 울었고, 많이 힘들었고, 한국이 정말 많이 그리웠던 순간들이었지만... 이제는 어느새 이 나라의 거의 모든 계절을 겪으며, 겨울이 끝난 것을 알리는 봄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곳의 여름은 얼마나 시원하고 청명한지,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계절을 얼마나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인지... 이제는 조금 알고 있다. 짧았던 해가 길어졌던 만큼 내 마음도 느긋해지고 여유로워졌다. 다만 그때의 그 낯설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어서 그런가, 다시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는 저녁해를 보자니 마음이 심란해서 그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겨울을 앞두고 여러 생각이 많아진다.


 밤 9시가 되도록 환했던 날은 이제는 오후 4시면 제법 어둑해진다. 그러나 아직 본 게임은 시작되지 않았다고, 정작 동짓날까지 한 달이나 남았다며 주변 이웃들과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폴란드의 겨울은 조금 빠르게, 조금 성급하게 다가온다. 겨울이 왔다는 걸 피부로 실감하기 시작하니 처음 이곳에 왔던 날의 그 막막함과 낯설었던 기억들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들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단 한 번도 살아볼 거라 상상하지 않았던 나라에서 산다는 건, 하루에 해가 8시간밖에 떠 있지 않은 도시에서도 살 수 있다는 거였다는 걸... 그때의 나는 그럴 수 있다는 것도, 그게 왜 중요한지도 몰랐다.


 올해 겨울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폴란드로 주재 발령을 받아 올 거다. 이미 인터넷 교민 카페에는 국제학교 문의글과 부동산 문의글이 매일같이 올라오고, 몇 달 전에서야 이 나라에 오게 될 거라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의 당혹감이 글에 뚝뚝 묻어난다. 1년 전의 내가 그랬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그들을 위해, 그리고 또 긴 겨울을 이 나라에서 보낼 나를 위해 올해 겨울은 조금만 덜 혹독하길 간절히 바라본다. 파란 하늘과 쨍한 햇볕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매일 조금 더 긴 시간 해를 바라볼 수 있길. 그리고 거리에서, 상점에서 처음 온 낯선 나라에서 너무 당혹스러워할 그 순간에 내가 우연히라도 그 옆을 지나갔으면 좋겠다. '한국인이세요?'하고 물으며 누군가 도움을 청해온다면, 그래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럼 지난 1년간의 내 고생스러움이 다 헛짓이 아니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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