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을 해야했다

까맣게 타들어갔던 그때의 그 마음, 아니아니 딱딱해진 가슴

by 주정현



첫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아이만 기르다 보니 어느새 1년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임신 10개월에 냈던 출산 휴학계는 3월이 되자 만료가 되었는데 아기는 이제 겨우 만 10개월을 갓 넘겼을 뿐이었다. 호기롭게 복학할 수 있을 거라 장담했던 과거의 나는 온데간데없었고, 도저히 육아와 학업을 병행할 수 없을 거란 생각만 들었다. 아기는 아직 걷지도 못했고, 모유와 이유식만 먹을 줄 알았고, 밤마다 수시로 엄마를 찾았고, 심하게 낯을 가렸다. 출산 직후부터 입소대기를 걸어놨던 어린이집'들'에서는 전혀 소식이 없었는데, 아무런 경제적 소득이 없고 4대 보험 증빙을 제출할 수 없는 대학원생은 전업주부와 똑같이 간주되어 3순위의 대기 순번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복학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지도교수님께 연락을 드려 휴학을 한 학기 연장하고자 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교수님은 휴학계에 도장을 받기 전, 학교에 와서 잠시 면담을 하자고 하셨다. 그때까지 모유를 주식으로 먹던 아기는 나와 최장시간 떨어질 수 있는 간격이 겨우 서너 시간에 불과했는데, 서울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집에서 서울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학교까지는 서로 오가는데만 왕복 두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사정을 말씀드리고 이메일이나 전화로 대신 면담을 하면 안 되겠냐고 부탁드렸지만, 아기를 키워본 적이 없는 교수님께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유라 생각했는지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아기 때문에 신촌까지 찾아뵙는 건 현재로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는 이메일에 "면담시간은 화요일 오후다."라고 답변이 왔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이 하루 휴가를 냈고, 면담하는 동안 남편이 아기를 봐주기로 했지만, 모유수유 때문에 나와 장시간 떨어질 수 없었던 아기는 나와 함께 학교 캠퍼스에 따라와서 학교 주차장에서 수유를 하고, 학교 식당에서 낮잠을 잤다.


그렇게 어렵게 성사된 면담의 내용은 3월에 복학할 것이 아니라면 연구실을 나가란 통보였다. 학칙 상 내정된 출산휴학은 1년이니 이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이를 일반휴학으로 전환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계속 쉬고 싶다면 영영 쉬어라'는 거였다. 만약 휴학을 연장한 이후에 계속 연구실에 남아서 공부를 하고 싶다면 '석사 수료'는 할 수 있겠지만 학위는 줄 수 없다. 물론 이 조치가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그리고 어떻게든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고 싶다면, 학과 내 다른 지도교수님을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소개해줄 수는 없다. 이런 내용의 면담, 아니 통보. 그래서 전화나 이메일로는 할 수 없고 꼭 얼굴을 보고 얘기해야 했던 그런 이야기였다.

학교 캠퍼스에도 기혼여성을 위한 어린이집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왕복 두 시간 거리라는 건 개인적인 사유니 그렇다 쳐도, 문제는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이 어린이집은 입소 연령이 만 2세 이상 원아만 받아주는 곳이었다는 점이다. 일반 어린이집은 대학원생을 맞벌이로 여기지 않아 순위가 안돼서 자리가 없고, 아직 젖도 안 뗀 아기를 어디 맡길 곳이 있어야 복학을 하든지 말든지 하는데, 안 나오면 자를 거니 가정사(?)는 알아서 해결하고 오라는 통보.

결국 선택해야 했다. 이게 짜장면이나 짬뽕이냐처럼 선택이 가능한 문제가 아닌데 선택을 해야 했다. 일과 육아를 함께하려니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이 오고 말았다. 속상함과 분노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지만 나는 '을'이었고 '갑'의 통보는 절대적이었다.



선택을 하려면 가장 첫 번째로 해결해야 했던 문제가 '모유수유'였다. 이유식을 먹긴 하지만 아기는 아직까진 모유를 주식으로 삼고 있었고, 그래서 나랑 한 시도 떨어질 수 없었다. 어린이집이 되었든, 친정엄마가 되었든, 제3의 양육자가 되었든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육아를 부탁하려면 이 수유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문제는 아기가 지난 10개월 동안 늘 함께하며 애착을 형성한 '엄마 가슴'을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젖병에 모유를 담아봐도, 분유를 담아봐도, 심지어 달콤한 주스를 담아봐도 실리콘 젖꼭지가 입에 닿는 순간 완강하게 입을 다물고 울음으로 거부했다.

백방으로 노력해봤으나 아기가 모유 외에는 다른 것을 먹길 거부하니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수유 간격을 늘리는 것이었다. 그 이전에는 하루에 다섯 번, 서너 시간마다 꼬박꼬박 먹던 모유를 하루에 두 번, 혹은 많아봤자 세 번으로 수유 텀을 늘리기로 했다. 이전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고, 아침, 점심, 저녁식사처럼 먹고, 그리고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원샷하던 엄마의 모유를 이제는 오전 간식, 오후 간식 이렇게 두 번으로만 양분해서 먹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출근하기 전에 배부르게 먹이고, 저녁에 퇴근해서 다시 배불리 먹일 수 있다. 만 10개월이라면 사실 모유는 그만큼만 먹어도 영양학적으로 문제가 없는 괜찮은 시기였다.


몇 번의 고비는 있었지만 아이는 이 새로운 수유 패턴에 기특할 정도로 잘 적응해주었다. 물론 간식처럼 수시로 먹던 엄마의 가슴을 애타게 찾을 때가 종종 있었지만, 그리고 그렁그렁한 아기의 눈물을 보면 나도 다 때려치우고 그냥 아기 곁에만 있고 싶었지만, 필요하다면 독해질 줄도 알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줄어든 수유 텀에 아기는 되려 잘 적응했지만 내 가슴은 그렇지 못했다. 3월의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 보니 가슴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찌르는 듯한 통증과 벌겋게 달아오른 가슴, 38도에 가까운 미열. 유선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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