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유수유 엄마의 하루

출산한 지 열 달 만에 산후조리원을 다시 방문하다

by 주정현

아기가 만 10개월이던 3월의 어느 날, 칼로 쿡쿡 찌르는 듯한 가슴통증에 잠에서 깼다. 그때가 아마 새벽 여섯 시쯤... 아기는 아직 곤히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시간이었다. 어서 아침이 밝기를 기다리는 동안 내 가슴은 점점 더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돌덩이처럼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체온을 재 보니 37.8도. 유선염이었다.

하루에 다섯 번씩 먹이던 모유를 하루 두 번으로 줄였던 게 아무래도 문제였던 것 같다. 하루 다섯 번의 모유수유로 오랫동안 시스템을 설정해놨던 나의 수유 호르몬과 가슴은 갑작스레 변동된 수유 계획을 모르고 이전처럼 모유를 과잉 대량 생산했던 것이다. 정작 아기는 그 무렵 이유식을 매 끼니 먹었고 간식으로 쌀과자나 과일 등도 제법 잘 먹어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내 가슴만 탈이 났다.


딱딱한 가슴의 통증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을 때 아기가 설핏 잠에서 깼다. 이때다 싶어 얼른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잠도 덜 깨고, 비몽사몽간에 배도 고프지 않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엄마의 가슴을 아기는 반기지 않았다. 어쩌면 염증 때문에 맛도 평소와 달리 이상했을지 모른다. 어찌어찌 어르고 달래 가며 아기에게 겨우 젖을 물렸는데 아기의 입이 가슴에 닿는 순간 찌릿하는 날카로운 고통이 가슴 전체를 덮쳤다. 유선을 타고 느껴지는 차갑고 섬뜩한 고통이 쇄골을 타고 목 뒤까지 올라가 몸 전체에 소름이 돋았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유축기의 도움을 받아도, 아무리 아기에게 젖을 깊이 물려도, 한 번 딱딱해진 가슴은 부드러워질 줄 몰랐고 가슴의 고통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게다가 열 때문인지 두통도 심했고 몸 전체에 서늘한 오한이 일었다. 점점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고 이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럼 어느 병원에 가야 할까.


산부인과? 아니면 유방외과? 전자는 왠지 임신, 출산과 관련해서 가는 병원이기 때문에 자궁과 관련된 진료를 하는 곳이고 후자는 유방암이 의심될 때 방문하는 병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유 외과?라는 진료과목은 없을 텐데 일단 이렇게 검색해보면 무엇이든 관련 검색어가 뜨지 않을까 싶어 찾아보니 강북구 수유역 근처 외과가 나왔다. 이거 아니라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적절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그렇게 주변의 전문 의료기관을 찾아 온라인 검색창과 맘 카페를 전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출산 직후에 지냈던 산후조리원 생각이 번뜩 났다. 젖의 천국이자 모유수유 전문가가 상시 대기하고 있는 그곳, 산후조리원. 나는 더 이상 산모가 아닌데 여기에 전화를 해도 될까 싶어 5초 정도 고민했지만 일단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여기가 아니라면 다른 관련 병원이라도 안내해주겠지 싶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작년 여름에 거기서 산후조리를 했던 산모인데요..."


열 달만에 스스로를 '산모'라 부르니 그 호칭이 참 어색하면서도, 가슴에서 뚝뚝 젖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내게 그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는 없을 것 같았다. 아직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유선염이 생긴 것 같다고 실장님께 이야기하니 흔쾌히 지금 바로 조리원으로 오란다. 할렐루야를 외치며 벗기 쉽고, 모유가 묻어도 괜찮을 허름한 옷을 입고 산부인과가 있는 강남역으로 달려갔다. 아기는 막 다니기 시작한, 이제 겨우 다닌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어린이집에 맡기고.




아기는 그 무렵 같은 아파트 단지에 있는 가정형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경제적 소득이 없는 대학원생 엄마인 나는 보육포털사이트에서 어린이집 대기 순위가 전업주부와 같은 3순위로 분류되었다. 당시 살던 신혼집은 요샛말로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라고 불리는, 여러모로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동네라 아파트 입주민 중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이 많았는데, 아이들 숫자에 비해 어린이집 숫자는 턱없이 부족했었다. 게다가 내 앞에 수십 명의 1순위 대기자들이 있었으니 올해 안에 적당한 보육기관을 찾기는 글렀다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3월 신학기가 되자 대기를 걸어놨던 한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0세 반에 빈자리가 있는데 등록하시겠냐며.


어떻게 이런 행운이 올 수 있지? 하고 기뻐하며 바로 등록 의사가 있다는 걸 밝히고 어린이집에 상담을 다녀왔다. 그런데 이날 같은 아파트에 살던 12개월짜리 아기를 키우고 있는 지인에게도 똑같은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는 명목상이든 실제로든 모두 전업주부인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올 수 있었을까? 설마 우리보다 앞선 대기 순번이었던 수십 명의 워킹맘들이 모두 등록을 포기했다고? 이런 의아함을 안고 차례로 어린이집 상담을 다녀왔는데, 우리 둘은 이내 그 자초지종을 알 수 있었다. 어린이집 측에서 대기 순번이 아니라 보육이 쉬울 것 같은 순서대로 먼저 연락한 것이다.


원장 선생님이 '고른' 원아의 조건은 대충 이런 식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대기 순번과 상관없이 월령이 많은 연초생(상반기에 태어난 아기) 일 것, 늦게 등원하고 일찍 하원 하는 전업주부의 아기일 것, 형제가 없는 외동 아기일 것,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입주민일 것, 그리고 엄마 나이가 젊을 것. 비슷한 대기 순번을 가지고 있었지만 11월생인 아기에게는 연락이 오지 않았고, 똑같은 3월생 아기였지만 엄마 나이가 40대인 집에도 연락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1순위인 워킹맘의 아이들 중에서는 연락을 받은 집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맞춤형 보육이라 하여 종일반과 반일반으로 구분해서 보육료를 받고, 따라서 전업주부가 아니라 워킹맘 자녀들을 선호하는 어린이집도 있는 데다가, 보육포털의 대기 순번을 지키지 않은 사례가 적발되면 처벌을 받지만(그리고 실제로 이 어린이집도 이런 편법 끝에 4년 뒤에 문을 닫게 되지만) 10년 전에는 그런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서 어린이집 상담을 갔던 날, 원장 선생님은 나의 정체가 워킹맘도 전업맘도 아닌 대학원생 맘이라는 걸 알고 적잖이 당황했다. 게다가 내가 곧 복학 계획이 있다는 걸 알고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지만, 이미 입학원서를 받은 마당에 이를 되돌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운이 좋게도(?) 전업주부와 대학원생을 구분하지 않는 국가시스템*에 의해 되려 워킹 맘보다 먼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행운을 누렸다. *현재는 아동 포털사이트에 대학원생도 맞벌이로 분류되어 종일반을 이용하는 1순위 대기자다.


그 어린이집에 상담을 갔던 날, 아기의 입학원서를 작성하며 아기의 영양섭취정보에 '모유와 이유식'이라고 기입했다. 그때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의 눈을 동그랗게 뜬 눈과 "어머, 아직도 모유를 먹이세요?"라고 되물으며 굉장한 별종 엄마를 만났다는 식의 반응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에...? 첫돌까지 완모 하는 것은 많은 엄마들의 로망 아니었나요? 세계 보건기구에서는 만 두 돌까지 모유수유를 권장합니다...라는 문구를 저는 애 키우면서 적어도 백 번은 반복해서 들어본 것 같은데요. 그러나 선생님은 난감한 듯 웃으시며 "그럼 어린이집에서는 뭘 먹이죠?"라고 물어봤고, 그녀의 질문에는 돌 이전까지는 적응을 위해 오전에만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니 모유를 먹을 일이 없을 것이며 돌 이후에는 차차 단유를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모유 먹는 아이들은 울 일이 있으면 엄마젖을 찾는데 그럼 저희가 곤란해서요..."라고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모유를 먹는 아이는 일찍 보육기관에 다니면 안 되는 걸까?


첫 등원을 하던 날, 담임선생님을 처음 만나 아기를 소개하자 선생님의 첫마디는 이랬다. "아, 그 모유수유요...?" 아이 이름도 아니고 개월 수도 아니고 모유수유라는 단어가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들은 말이라니. 그게 나와 내 아이의 정체성이라니. 과연 내가 입학원서를 쓰고 간 이후에 원장 선생님과 담임선생님 사이엔 무슨 대화가 오갔을까.




그 '모유수유 엄마'는 출산한 지 10개월 만에 유선염에 걸려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강남의 모 산후조리원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소독 스프레이를 뿌리고, 핑크색 벽지로 둘러싸인 복도를 지나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신생아들이 가득한 그 공간으로 들어갔다. 열 달 만의 방문이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세상에 갓 내려온 천사 같은 아기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이곳은 바깥세상과 분리된, 그리고 이곳만의 규칙이 존재하는 이 세계(異世界) 같았다.


신생아실 옆에 있는 모유수유실에 들어가니 이미 연락을 받은 원장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당시 수유실에는 아기에게 한창 젖을 물리며 수다를 떨고 있는 산모들이 서너 명 정도 모여있었는데, 갑자기 수유실에 들어와 중앙에 있는 마사지 침대에 눕는 낯선 이에게 모두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그들의 침대를 빌려 누웠다. 출산한 지 열 달 되었고요, 아직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는데 유선염이 왔어요. 그 순간 산모들 사이에서 우와, 하는 탄성이 나왔다.


"벌써 아기를 열 달이나 키우셨다고요? 우와 진짜 부러워요!! 게다가 완모?!?!"


그랬다. 이제 막 출산하여 갓 엄마가 된 그들에게 나는 이미 열 달동안이나 아기를 키워본 적 있는 선배 엄마였고 그건 실로 어마어마한 존재였다. 뭔가 올 A+ 성적표를 들고 금의환향하는 전설의 복학생 선배가 된 느낌이랄까. 이제 막 엄마가 되어 막막한 그녀들에게, 막막하다 못해 무섭고 두려운 그녀들에게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기를 키운 엄마는 어떤 존재로 보였을까? 덜 초보 엄마가 쌩 초보 엄마들을 만나는 순간. 대학원 복학 문제라든지 최근 어린이집 이슈로 인해 그동안 엄마로서의 자존감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는데, 그리고 아기를 키우는 일이 상대적으로 하찮게 취급받는 느낌이었는데, 이곳에서 그녀들의 반짝반짝한 눈빛을 마주하고 있으니 왠지 아기만 키우느라 고군분투했던 지난 열 달이란 시간이 그 눈빛만큼이나 값지고 보람된 시간으로 느껴졌다.


진심으로 그날, 아픈 가슴만큼이나 또 다른 아픈 마음이 큰 위로를 받았다.


딱딱해진 가슴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마사지를 해 준 원장님의 손 끝에서 다시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게 변했다. 한 시간여 동안의 마사지를 끝낸 원장님은 막힌 유관은 뚫었지만 여전히 염증이 있을 수 있으니 약을 먹어야 한다며 길 건너에 있는 피부과(?)를 소개해주셨다. 산부인과도 유방외과도 아닌 피부과라니 좀 이상했지만 이미 병원에 전화를 해 두었으니 모 조리원 원장님 소개로 왔어요,라고 말하면 모유수유 중에 복용해도 문제가 없는 유선염 약을 처방해주실 거라고 했고, 실제로 병원에 가자 의사 선생님은 별말씀 없이 청진 한 번 하지 않고 바로 처방전을 발급해 주셨다.


이로서 이날의 유선염 사건은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그간의 마음의 염증도 함께 살포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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