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한테도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
아이가 처음으로 동생 타령을 한 건 두 번째 생일이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 이런 말을 곧 듣게 될 거라고 주변에서 누차 경고했으므로,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동생을 찾을 줄은 몰랐다. 아기들을, 나이 어린 동생들을 좋아하는 내 성정을 닮아서 그랬던 걸까.
그맘때 매주 만나며 함께 플레이 데이트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데다가 엄마도 동갑내기, 아이도 동갑내기, 심지어 성별마저 같아 금세 가까워져서 하루가 멀다 하고 자주 만나는 친구였는데, 그 집에는 첫째와 17개월 터울로 낳은 꼬물거리는 어린 아기 동생이 있었다. 옆에서 바라보는 연년생 육아는 너무나 버겁고 아슬아슬해 보였는데 속 모르는 아이는 그게 마냥 부러워 보였나 보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오면 우리 집에도 아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동생을 갖고 싶다고 졸랐다. 동생을 만들어달라고, 그리고 기왕이면 여동생으로 만들어달라고 성별까지 콕 집어서 부탁했다.
둘째를 임신하기 전까진 없어지지 않는 둘째 고민
둘째 고민은 둘째를 임신하기 전까진 없어지지 않는 법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므로 아이가 두 살이건, 세 살이건, 혹은 열 살이건... 그 없어지지 않을 끝없는 고민을 하다 하다 결국에 늦게 낳으면 고민만 그만큼 길어질 뿐이라며, 주변의 선배맘들은 '기왕 낳을 거면 얼른 낳아'라며 둘째 임신을 부추겼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나니까 그 부추김이 확 늘어났다. 기혼자 미혼자 할 것 없이 가끔씩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구부리며 둘째 계획을 묻곤 했다. 내 생일에는 연구실 동료들이 아주 야한 속옷을 생일 선물로 줬는데, 야시시한 선물박스에 담긴 야시시한 속옷 위에는 '둘째 고고!'라고 큼지막하게 쓰여있는 생일카드가 놓여 있었다. 남편은 연구실 동료들이 아주 센스가 넘친다고 좋아하였다. 크흠.
둘째 고민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아니 사실 나는, 그리고 남편은, 우리 부부는 아기를 엄청 좋아하기 때문에 절대 외동아이 하나로 만족하지 않으리란 걸 우리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둘째를 크게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남편의 직업과 수입은 안정적이었고, 엄마는 아직 젊고 건강한 데다, 첫 아이는 순한 성정의 딸이었다. 주변 사람들도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타인에게는 꽤 실례될 수도 있는 가족계획에 대한 질문, 둘째에 대한 이야기를 내 앞에서는 그렇게 서슴없이 꺼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원래 대한민국에 사는 3인 가정의 엄마들이란 늘 이런 오지랖을 감당하며 사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러나 아이가 두 돌이 막 지났을 무렵, 나는 석사학위논문 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느라, 개인적으로도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친정엄마며, 남편이며, 함께 석사 시기를 보내는 연구실 동료들에게까지... 여러모로 주변에 참 민폐를 끼치며 살고 있었다. 매일 어린이집 하원을 도맡아주며 저녁 퇴근시간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엄마. 주말에 워크숍이라도 생기면 "나는 애기 때문에 안되는데..."하고 말을 흐리고, 해외 학회 일정에 "저는 해외출장이 불가능해서..."라고 또 말을 흘리며 진작부터 프로젝트에서 빠지는 동료. 그러다 그러다 눈치가 보여 꼭 참여해야 하는 주말 일정에 얼굴이라도 들이밀어야 하면 일주일에 단 하루 있는 휴일을 반납해야 하는 남편. 그런 초민폐 캐릭터로 사는 와중에 '저 둘째 임신했어요.'라고 철없이 등장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임신은 죄가 아니라는 걸, 축복받아야 마땅한 일이라는 걸 '머리로는' 안다. 그러나 이미 계획에 없던 첫째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키우며 어그러진 여러 직업적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보니 둘째 임신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쨌거나 현재 시점으로는.
그런데 학위논문 심사가 끝난다면? 그래서 대학원을 졸업한다면? 그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아이가 없었다면 당연히 나의 다음 수순은 정신보건 임상심리사 1급 자격요건을 위해 대학병원에서 3년간 임상수련을 하는 것이었고, 수련생으로 발탁되기 위해 그다음 단계를 준비했을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먹은 일이었고, 대학원에서 임상심리를 전공하는 많은 석사생들에게 눈에 그리듯 보이는 다음 단계의 계단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혼 여성이 되고 엄마가 되자 그 당연했던 다음 계단에 차마 발을 올려놓을 수가 없었다. 아이를 키우며 과연 그 힘든 수련 생활을 견뎌낼 수 있을까.
매번 졸업생 모임이 있을 때마다 수련생으로 일하는 선배들의 무용담은 끝도 없이 쏟아졌다. 일주일에 얼마나 많은 검사와 보고서가 몰아치는지, 병원이란 곳에서 얼마나 계획이란 게 무용한 것인지. 내가 계획한 일상과 예측 가능한 스케줄은 '응급'이라는 말 아래 항상 우르르 무너지기 일수였고, 여기까지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최대한의 에너지를 끌어내서 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늘 '그 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버티다 버티다 체력적으로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어느 날은 수액을 맞고 링거를 꽂고 그 링거줄을 끌고 다니며 병원에서 일을 하니,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환자 눈엔 수련생이나 의사나 어차피 다 똑같아 보이니까)이 스스로 링거를 꼽고 병원 복도를 누비는 모습에 환자들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는 웃픈 에피소드를 듣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허, 저 힘든 일을 애를 키우면서, 가정을 유지하면서, 집안 살림을 병행하면서 한다고? 그건 슈퍼우먼이 아니라 슈퍼우먼 할머니가 와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기서 그냥 일을 그만둘 것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아이를 키우면서 발 동동 굴려가며 대학원 공부를 했지? 여기서 그만두려고, 멈추려고, 그러려고 딴 석사학위가 아니었다. 이만큼이면 공부는 해보고 싶은 만큼 다 해보고 가방끈도 늘릴 만큼 꽤 늘렸으니 이제 스스로 만족하고 전업주부가 되어 살림과 육아에 온몸을 투신해보자! 하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들지 않았다.
학위논문 심사를 앞두고, 그 이후의 진로를 고민하며 이생각저생각 온갖 생각과 고민이 가득한 시기였다. 그 고민의 5% 정도는 둘째 고민도 섞여 있었지만... 그보다는 수련할 병원(어디가 그나마 제일 가정생활과 병행 가능할 것인가.), 수련 기간(3년 동안 그렇게 사는 건 너무 빡세니 1년만 하고 2급 자격증만 딸까), 혹은 수련을 하지 않을 경우의 또 다른 커리어 유지 방법에 대한, 그런 직업적 상황에 대한 고민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미래에 대한 잡다한 고민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일단 코앞에 닥친 석사논문 본심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일단 이번 학기에 졸업한다고 확신할 수는 있을까.) 거기에 양념처럼 둘째 고민이 톡톡 뿌려지긴 했다. (더 터울이 지기 전에 둘째도 갖긴 해야할텐데...)
그러나 남편은 그런 나의 고민을 비웃기라도 하듯, 논문 심사를 일주일쯤 앞둔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나, 유학 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