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웃소싱 없이 실전 육아가 시작되었다
언젠가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낳았을 때 좋았어요?"라고 내가 물었을 때 아버지는 대답했다.
"아니, 무서웠다."
홍은전 저, <그냥, 사람> 중에서
조리원에 있는 동안,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에 당혹스러운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무섭지는 않았다. 기저귀를 갈다가 아이의 용변이 침대에 묻으면 내선전화 한 번에 도와주러 오는 사람이 있었고, 밤에는 산모가 아기를 신경 쓰지 않고 푹 잘 수 있도록 나 대신 야간 보초를 서며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리원을 '천국'에 비유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바깥세상에서 느낄 두려움과 피곤함으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곳.
그러나 출산한 지 2주가 넘었고 어느새 조리원을 나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소한 산모들이 하나둘씩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혼자서 아기를 데리고 '바깥세상'으로 나간다는 게 엄두가 나질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공포'였다.
아기는 너무 작고 말랑말랑해서 조금이라도 손에 힘을 주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나 연약한 생명체를 내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키워야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었다. 조리원에서야 숙련된 전문가가 스물네 시간 아기 옆에 붙어서 모든 것을 책임져주고 있으니까 괜찮은데 과연 집으로 돌아가면 나 혼자서 이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첫 아이를 출산했던 10년 전에는 보통 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고, 따로 집에서 2주 정도 입주나 출퇴근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아기를 키우는 것이 그 당시 산후조리의 공식과도 같았다. 요즘도 비슷한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일반적인 공식과는 달리 따로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지 않는 대신에 조리원에서만 3주를 머물기로 결정했다. 삼칠일은 그래도 푹 쉬어야 한다는 친정엄마의 권고도 있었고(그리고 금전적 지원도 있었고), 내가 낯선 사람과 집에서 지내는 게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던 이유도 있다. 또 신혼 때부터 쭉 도움을 받던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따로 있었는데, 1년 넘게 함께 해왔던 가사도우미를 두고 다른 사람을 고용하기보다는 나는 온전히 아기만 보고 집안일에 대한 도움은 우리 집 살림살이를 이미 잘 알고 있는 아주머니께 부탁하는 게 낫다고 여겼다. 이런저런 이유로 남들보다 조리원에 일주일을 더 머물기로 했다.
그런데 3주째 조리원에 머물다 보니, 왠지 나와 내 아기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갓 태어난 어린 아기들 사이에서 일주일의 차이는 얼마나 큰 것이었던지, 신생아실 창문으로 올망졸망 모여있는 아기들을 보면 맨 앞줄에 있는 우리 아기가 월등히 컸다. 신생아실에서는 입소한 지 가장 오래된 아기를 창가 제일 왼쪽에 두고, 입소 날짜 순서대로 아기들을 조르륵 나열했는데, 가장 오른쪽에 있는 신입 멤버와는 주먹 하나만큼이나 신체 차이가 컸다. 게다가 옆자리 아기들은 계속 졸업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일주일째 창가 제일 왼쪽 자리 상석(?)을 차지하고 있는 선임(!) 우리 딸을 보니 진즉 졸업할 때가 지났는데 괜히 엄마의 소심한 마음 때문에 여기 남아있구나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조리원의 프로그램도 2주 단위로 돌아가는지라, 나는 지지난주에 만들어서 이미 가지고 있던 흑백모빌을 또 하나 더 만들게 되었다. 이미 지난주에 출생신고를 마쳤는데 조리원에 사주 작명가가 방문했고, 가슴 마사지를 받지 않아도 더 이상 유선이 뭉치거나 아픈 일이 없었다. 어딘가 아프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으며, 그리고 조금은 무료하게 마지막 일주일이 지나갔다. 갓 출산해서 몸이 퉁퉁 붓고, 도넛 방석이 없이는 딱딱한 의자에 앉을 수 없고, 아직 아물지 않은 회음부의 상처와 피고름이 맺히는 가슴의 통증으로 인해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는 다른 산모들에 비해서, 출산한 지 삼칠일이 지난 나의 몸은 한결 가뿐했다. 그 말인즉, 나도 내 아기처럼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6월 중순, 조리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전날 밤 거실에 붙인 "WELCOME HOME"이라고 쓰인 분홍색 풍선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편안함과, 그리고 앞으로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고 해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온 지 단 하루 만에 '잠'이 간절해졌다. 나는 조리원을 나와 집으로 오면서 혹시라도 밤중에 아기가 우는데 내가 그 소리를 못 들을 정도로 깊이 잠들까 봐 내심 걱정했었다. 그런데 웬걸, 울음소리가 아니라 아기의 기침소리 하나만으로도 단번에 눈이 딱 떠질 정도로 잠귀가 심하게 예민했다. 그동안 병원과 조리원을 거쳐 오면서 아웃소싱 산후조리의 혜택으로 한 달 가까이 아기와 함께 자 본 적이 없었던 지라 내가 이렇게까지 아기 소리에 예민하게 구는지 전혀 몰랐다. 어쩌면 책임감과 부담감 때문에 더 깊이 잘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낮에는 집에서 10분 거리에 사는 친정엄마가 오셔서 두세 시간씩 아기를 봐주셨다. 그러면 나는 엄마한테 아기를 맡기고 꿀 같은 낮잠을 자... 야 하는데 웬걸. 몸은 안방 침대에 누워있는데, 거실에 있는 아기 소리에 온통 신경이 가 있어서 그렇게나 졸리고 피곤한데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금 엄마가 와 계시니까 이제는 긴장을 늦춰도 되잖아, 잠깐 눈 붙여도 아무 일 없다고, 하고 속으로 되뇌며 아무리 잠을 청해도 한 번 높아진 몸의 긴장은 풀어질 줄을 몰랐다. 몸은 피곤하고, 긴장되고, 제대로 잠을 못 자니 스트레스만 쌓이고...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냐면, 모유가 줄었다.
그러자 또 무슨 일이 일어났냐면, 배불리 먹지 못한 아기가 잠을 자지 않았다.
그러자 또 무슨 일이 일어났냐면, 나의 피로도와 스트레스는 더 높아져만 갔고...
그리고 모유가 더 줄었다.
이제야 실전 육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