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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Jun 30. 2020

읽고 듣고 씁니다

책을 좋아하는 책덕후의 팟캐스트 청취담

아주 오래 전부터 꾸준히 해 오던 일과 근래들어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있다.

오래 전부터 꾸준히 해오던 일은 매일 책을 읽는 것.

그리고 근래 들어 새롭게 시작한 일은 팟캐스트를 듣는 것이다.


 나는 매년 10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이 정도 양을 꾸준히 읽어온 건 셋째를 임신했던 4년 전 무렵이다. 둘째가 갓 돌이 지났을 무렵 나는 막둥이를 임신했고, 그나마 뱃속에 아이를 담아두는 지금이 나를 위해 하루 중 일정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꽤 절박한 마음으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심지어 병원에서 진통을 하면서도 책을 읽었다. 진통을 하며 책을 읽으면 과연 활자가 눈에 들어올까 싶지만... 세번씩 반복하다 보면 나름 요령(?)이 생기는 법. 쓰나미처럼 몰아치는 고통의 틈새시간을 활용해서 틈틈히 한 단락씩 읽었다. 애를 낳으면서도 책을 읽었는데, 키우면서는 못 읽을 게 뭐람. 셋째가 첫돌이 될 때까지 그 한 해 동안 읽은 책을 세어보니 100권이 조금 넘었는데, 계속 읽다보면 뭐라도 남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아이 셋을 키우며 틈만 생기면 전투적으로 책을 읽었다. 이제는 매일 책을 읽는 게 습관처럼 굳어져,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은 날이 없다. 한 장이라도, 한 단락이라도, 한 문장이라도 매일 꾸준히 읽는다.


 그런 내가 요즘 일상에서 큰 재미를 느끼는 일이 생겼다. 그건 바로 도서 팟캐스트. 그 중에서도 예스24에서 제작하는 <책읽아웃>을 즐겨 듣는다.

 처음 책읽아웃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측면돌파 진행자 김하나 작가님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은 뒤였다. 그때는 전혀 팟캐스트에 관심이 없던 터라, 책을 읽으며 그런 게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넘어갔었다. 그러다가 올해 초 제현주 작가님이 번역한 <뒤에 올 여성들에게>와 직접 집필하신 <일하는 마음>을 연달아 고, 작가님에게 홀딱 반해버려 약간의 덕질(?)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책읽아웃 초반부에 등장했던 제현주님의 방송분을 유튜브, 그 다음으로는 팟빵을 통해 챙겨듣게 되었다. 어, 그런데 책읽아웃의 그간 방송내역을 보니 내가 이미 읽은 책의 작가분들이 꽤 되었다. 이미 책으로 만난 작가님들의 방송만 해도 스무편이 훌쩍 넘었다. 마치 오래 전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그렇게 내가 이름을 아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첫 팟캐스트 여행을 시작했다. 아는 이름의 게스트가 나온 방송을 제일 먼저 찾아 듣다가, 그 다음에는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의 작가님들 이야기를 듣다가, 책을 소개하는 삼천포책방 코너도 듣다가, 공동 진행자인 오은 시인님의 옹기종기와 어떤 책임도 듣다가... 다들 하나같이 너무 재미있어서 들었던 방송을 또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요즘은? 지난 3년 간의 방송을 역주행과 정주행을 거듭해가며 매일매일 열심히 방송을 듣고 있다. 방송을 듣다보니 읽고 싶은 책이 많아져 자꾸 국제우편으로 책을 주문하게 되고, 그동안 다달이 드는 돈이 아깝다며 외면했던 도서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가입했다. 최근에는 무려 네이버 팬카페에도 가입하고, 오픈카톡방에도 들어가고, 심지어 팬아트까지 그려서 살포시 진행자님의 SNS계정을 태그해놓기도 했다.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의 모든 방송을 챙겨보는 그런 마음으로, 책읽아웃과 관련된 모든 글과 말을 여기저기서 찾아 읽는 중이다. 한국에 있었으면 아마 작가강연회나, 사인회나, 공개방송을 신청해서 막 따라다녔을 것 같다. 아쉽게도 해외에 사는 나는 인터넷라이브방송으로 진행되는 강연회만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코로나바이러스 이슈로 인해 많은 행사들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덕분에 해외에서도 즐길 수 있는 컨텐츠가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최근에는 방송에서 내가 쓴 청취소감을 읽어주는 음성에 반해 '아, 나는 찐팬이 될거야.'하며 행복한 덕후라이프를 만끽하고 있다.

그리고 덕후는 바르샤바까지 해외배송으로 김하나 작가님의 친필사인본을 받아들고 행복해한다.


 나는 왜 이 방송에 이렇게 홀딱 빠져들었을까? 한 가지 이유는 폴란드에 살고 있다는 나의 이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폴란드에 살기 시작한 지 이제 2년차, 폴란드어는 생존만 가능할 초급 수준이고, 영어울렁증은 나만 있는 게 아니라 폴란드사람들도 갖고 있었다. 좁고 얕은 한국인 인맥이 있긴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한 이후로 모든 만남은 뚝 끊기고 말았다. 모국어 대화가 간절히 그리워질 무렵, 가뭄에 단비처럼 이 방송을 알게 되었다.

외국에 계신 분들이 모국어로 두런두런 대화 나누는 소리를 그저 듣고 싶어서 내내 음악처럼 틀어놓고 생활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무척 좋았다. '차분하고 다정한 모국어'라는 칭찬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내 목소리를 듣는 분들이 그 내용은 다 잊는다 하더라도 듣는 시간만큼은 그저 편안하고 기분좋게 음악처럼 말소리를 즐긴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말하기를 말하기> 중 114쪽.  


 물론 우리집에는, 나와 같은 모국어를 구사하는 식구가 한 명도 아니고 무려 네 명이나 같이 산다. 그리고 3월 중순, 총리가 휴교령을 내린 그날 이후로 스물네시간 아이들과 꼭 붙어사는, 정말 징그럽게 행복한 집콕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물론 지극히 사랑스러운 존재들이고, 마당에 있는 지렁이에서부터 간밤에 물린 모기자국까지, 엄마에게 온갖 일상사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그 작은 입은 정말 사랑스럽다. 하지만 나는 뭔가 좀더 성숙한 지적생명체와 더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너무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그냥 독립적인 성인들이 모여 만드는 대화. 그냥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도 좋고, 밥해먹는 이야기도 좋고, 옛날에 연애하던 이야기도 좋으니 뭐든 '어른들의 대화'.

 

 팟캐스트에는 내가 그토록 갈망하는 어른의 대화가 있었다. 아니, 그냥 어른이 아니라 평균 이상의 어휘와 문장을 구사하는, 한국에서 한국어를 가장 잘 사용하는 작가들. 그리고 이미 내 마음에 한 번 들어온 적 있었던 찐한 동반자들의 대화가 있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적게는 두 시간, 많게는 서너시간씩 작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농밀한 대화의 경험이다. 그리고 팟캐스트에는 이미 예전에 나와 함께 깊고 진한 대화를 나눈 적 있었던 작가들이 게스트로 등장했다. 게스트 섭외 후, 방송 전에 책을 읽으시는 김하나 작가님이 녹음날이 되어 "제가 지금 내적친밀도가 상승해 있어요." 라고 종종 말씀하시는데 정말 그렇다. 나와 내적친밀도가 그 누구보다 높은 작가님들. 그들의 음성을 들으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여러 대화를 찾아 듣다보니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팟캐스트는 음성을 송출하는 진행자와 이를 찾아듣는 청취자가 있는 일방향적인 방송이기 때문에 '상호 간의 대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도, 방송을 들으면서도 자꾸 내 안에 어떤 스파이크가 일어나는데, 하고 싶은 말이 목끝까지 차올랐는데, 그냥 그걸 묵혀두기만은 어려웠다. 김혼비 작가님이 게스트로 나오는 방송분에서 마지막 클로징 멘트는 이랬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렇다. 이 팟캐스트는 끊임없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그리고 '나눔'.

 책을 읽는 동안에도, 방송을 듣는 순간에도,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만약에 남편이라든가, 누군가 주변에 책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한 친구와 함께 책을 읽고 방송에 대해 두런두런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 열망이 이렇게까지 쌓이진 않았을텐데 나는 오롯이 혼자서 책을 읽고 방송을 듣는다. 최근 방송이라면 그나마 청취 소감이라도 남길 수 있지, 지난 3년의 방송을 역주행하며 듣고 있는 나에게 소통의 창구는 과연 어디가 될 수 있을까? 팟캐스트를 들을 때는 진행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듣는 게 아니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머릿 속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데 풀 데가 없다. 사실 고백하자면 전파를 타고 들려온 그 목소리에 몇 번 육성으로 대답한 적도 있다. 나 많이 좀 외로웠었나?


 그래서 이 매거진을 쓴다. 책에서 활자의 형태로 만났던 이야기들, 방송에서 작가님과 진행자의 음성으로 만났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건드린 내 속에 있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이 공간에 풀어보고자 한다. 내가 읽고, 듣고, 그리고 쓰는 이야기들.


 김하나 작가님은 신간 <말하기를 말하기>에서 스스로를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나는 읽고, 듣고, 그리고 다시 읽고, 쓴다. 책으로 먼저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팟캐스트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다음에 읽는 책은 또 새롭게 다가온다. 내가 좋아하는 독서의 새로운 변주를 만난 기분이다. 흔히들 '읽기'의 완성, 혹은 그 다음 단계는 '쓰기'라고들 하는데, 내 경우에는 멋진 제작진들 덕분에 '듣기'가 추가되었다. 그리하여 나의 독서록, 청취담, 혹은 이도저도 아닌 그냥 책을 소재로 한 여러가지 수다를 써 보고자 한다.


부디 글을 쓰는 나에게도,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즐거운 수다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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