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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Sep 22. 2023

이제야, 겨우 글을 남기는 마음

시필사 모임 3주 차


 시 필사 모임 기록이 많이 밀렸습니다. 실제로는 현재 7주 차 필사를 이어가고 있는데 브런치엔 3주 차 후기를 남기니 거의 한 달 가까이 기록이 밀려버렸네요. 언젠가는 이렇게 기록이 밀릴 거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초반부터 밀려버릴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어요.


 지난 한 달 동안은 마음속에 손톱만큼의 여유도 없을 정도로 바빴는데, 그래도 하루에 딱 10분씩은 짬을 내어 시 필사를 이어갔어요. 바쁘고 초조하고 힘들었던, 그 휘청거렸던 마음들이 단상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그 단상을 이 공간에 남길 때쯤 (아마 4주 차나 5주 차 후기를 남길 때쯤일 것 같아요) 그것 또한 과거의 기억이 되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겠지요? 이제야, 겨우 글을 남기는 마음이 생겨 한 줄 한 줄 생각과 마음을 기록하고 있지만 아직 저는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어요. 가까운 미래에는 조금 더 가뿐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9월의 바르샤바는 더워요! 7월에는 15도까지 내려가서 패딩을 입은 사람들도 보였다는데, 오늘 날씨는 29도로 화창하고 쾌적하니, 그리고 살짝 덥기까지 하니 참 신기한 일이죠. 아마 폴란드의 여름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저를 불쌍히 여겨, 북반구의 해님이 마지막으로 뜨거운 사랑을 보내주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한여름보다 더 더운 날씨 속에서 여름에 대한 시를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라고 필사 후기가 밀린 것에 대해 변명해 봅니다.)


 필사 모임 3주 차, 열 하루째의 시는 이제야 시인의 (왜 제목에 굳이 '이제야'라는 단어가 들어갔는지 이제야 눈치채셨나요?) '다정한 여름'입니다. 시인의 이름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필명이네요. 본명은 '이지혜'라고 하는데 제 친구 이름이랑 똑같아서 왠지 더 정감 갔어요. 저보다 한 살 어린 분이시던데, 사실 저희 세대에서는 82년생 지영이 만큼이나 가장 인기 있었던 이름이 아닌가 싶어요. 딸이 지혜롭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마 부모님은 지혜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을 텐데 시인은 지혜를 재료 삼아 시를 빚는 사람이 되었네요.




시필사 11일 차. 8. 21. (월) 이제야, ‘다정한 여름'


[다정한 여름]

복숭아 껍질을 벗기는
아직 이른 노래의, 첫 소절이 있지

방울토마토를 한 움큼 쥐고 웃는
믿어지지 않는 여름의 다정함이 있지

나만 몰랐던 언약이 있고
우리가 모를 수도 있는 약속들이 있지

단조로운 여름에는 빈손에 묻은 나른함이 있지
껍질의 속사정이 들린다던 말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웃음 같은 다정함이지

적막보다 다정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여름이 여름으로 지나는 시간에
그럴듯한 속사정들이 서로를 붙잡는 밤이 있지



 나만 몰랐던 언약. 여름이 여름으로 지나는 시간. 껍질의 속사정. 적막보다 다정한 노래. 곰곰 곱씹어볼수록 여름맛이 느껴지는 이런 시구들이 가득한 이 시를 필사했던 날은 8월 하순이 시작되는 날이었어요. 저는 이 시를 읽고 여름맛을 좀 더 제대로 느끼고 싶어 과일 가게에 가서 복숭아와 토마토를 한 아름 사 왔습니다. 긴 여행이 끝나고 텅 비어있던 냉장고가 복숭아와 토마토로 가득 찼어요.


 한국과 크로아티아에서 끝없이 사람을 지치게 하는 무더위를 겪다가 막 바르샤바로 돌아온 참이었는데, 이날의 날씨는 참 다정했어요.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과일 가게에서 돌아오는 길엔 '아, 좋다...'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한아름 사온 과일들은 우리 집에 놀러 온 둘째 딸의 친구와 나눠 먹었습니다. 친구의 부모님은 아이들이 다니는 국제 학교 선생님인데요(아빠는 고등부 수학 선생님, 엄마는 중등부 영어 선생님), 이틀 뒤에 학교가 개학을 하기 때문에 친구의 부모님은 학교로 출근을 했고, 아직 방학이 이틀 남은 아이는 저희 집에서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이틀밖에 남지 않은 달콤하고 아쉬운 방학. 이날의 플레이데이트는 이 여름을 다정하게 만들기 위한 제 나름의 노력이었던 것 같아요.


 여름이 여름으로 지나는 그 시간에, 저는 오랜만에 아이들이 영어로 조잘대는 소리를 들으며 거실에서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여름방학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아이들이 영어로 말하는 걸 참 오랜만에 들었는데, 전 이상하게 영어만 들으면 졸리더라고요? 오후의 나른한 기분을 느끼며, 아, 오늘 모처럼 날씨도 화창하고 조금 있다가 물놀이 도구나 좀 펼쳐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 순간 '아, 이게 나의 여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의 단조로운 오후가, 저의 '다정한 여름'이었습니다.






 시 필사 모임에서 열두 번째로 배달된 시는 이사라 시인의 '결'이었습니다. 나의 '결'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결을 만들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시였어요.



 

시필사 12일 차. 8. 22. (화) 이사라, ‘결'

[결]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많다.

깃털 같은 마음으로
사막에 집을 짓는 건축가도 있다.
눈빛 속에 사람을 심는 예술가도 있다.

태어나서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디든 지붕만 얹으면 살아나는 것이 집이라면

물이 물결을 만들 듯이
나무가 나뭇결을 만들 듯이
결이 보일 때까지 느긋하게 살면서
사람 결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지붕 고치듯 마음만 고치면
몇 백 년을 훌쩍 넘긴 마음도 가질 수 있다.



 이 시를 읽고 '결'이라는 단어에 대해 한참 생각했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늘 배우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거든요.


"그 사람, 나랑 결이 비슷한 것 같아."


 그럼 내가 가진 결은 무엇일까요? 나의 결이 어떻길래, 과연 무엇이길래 저는 다른 사람을 보고 비슷하다고도, 혹은 다르다고도 여기는 걸까요?


 국어사전에는 결의 사전적 의미가 이렇게 나와 있네요.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 혹은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닥의 상태나 무늬'. 이 두 가지 뜻을 읽으면서 저는 '일정하게'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오르락내리락,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변덕스러운 모습은 저의 결을 만드는 요소가 아닌 것 같아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변함없이 보일 모습. 반복되는 일상의 루틴이나 변하지 않는 삶의 태도. 저에게 어떤 결이 생긴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겠죠.


 '결이 보일 때까지 느긋하게 살면서 사람 결을 만드는 사람들' 느리지만 꾸준히, 방향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면 그 끝엔 아마 저라는 사람의 결이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어떤 무늬인지 모르겠지만요. 저는 지난주 필사 후기에서도 라이너 쿤체의 시, '뒤처진 새'에 대해 글을 쓰며 '삶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요즘 제 고민은 바로 이 방향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저보다 한 세대는 앞서 살고 있는 인생 선배가 이렇게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정현 씨. 막내가 성인이 되면 정현 씨는 50대에 접어들어. 아직 젊고, 가능성이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은 나이야. 그런데 그때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면 늦어. 실제로 늦은 시기는 아닐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아무것도 이뤄놓은 게 없으면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 언제 시작해야 할까? 마흔이 되기 이전인 지금이 가장 시작하기 좋은 시기야. 빠를 필요도 없고, 앞서갈 필요도 없어. 속도는 엄마의 의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지는 50대 이후에 내면 돼. 그런데 그때 속도를 내려면 내가 어떤 방향으로 달려야 할지는 미리 정해둬야 해. 지금은 속도에 대한 욕심은 내려놓되 정확한 방향을 찾아야 할 때야. 그 방향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걸음만 나아가 있으면 돼. 그러면 달릴 수 있어."


 저는 지난주에 이렇게 글을 남겼더라고요. '제대로 쉬어야 제대로 피어날 수 있을 테니 지금 이 자리에 멈춰 있는 것에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대신 내가 앞서 나갈 수 있는 다른 방면에 대한 탐구를 쉬지 말자.' 오늘의 시, 이사라 시인의 '결'을 읽으며 어떤 방향으로 어떤 무늬를 만들어나가야 할까 계속 고민하였습니다.





'나무가 나뭇결을 만들 듯이'라는 시구에 릴레이 하는 느낌으로, 필사모임 열세 번째 시는 손택수 시인의 '나무의 꿈'이었습니다.  손택수 시인의 시는 필사모임 이레 째인 8월 15일에도 나눴었는데요, 그때 모임 멤버이신 정훈 작가님이 "제가 몇 달 전 한국에서 세금 신고를 10년 만에 했는데요, 시인의 성함이 '손택스 (국세청 손택스)' 생각이 나서 집중이 잘 안 됐어요... 죄송합니다."라고 짧게 단상을 남겨 주셨어요. 근데 그 이후로 이 시인님의 이름만 보면 '손택스' 생각이 자꾸 나네요. 어쩌죠....




시필사 13일 차. 8. 23. (수) 손택수, ‘나무의 꿈'

[나무의 꿈]

자라면 뭐가 되고 싶니
의자가 되고 싶니
누군가의 책상이 되고 싶니
밝으면 삐걱 소리가 나는 계단도 있겠지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다락방
별빛이 들고 나는 창문들도 있구나
누군가 그 창문을 통해 바다를
생각할지도 몰라
수평선을 넘어가는 목선을 그리워할지도 몰라
바다를 보는 게 꿈이라면
배가 되고 싶겠구나
어쩌면 그 무엇도 되지 못하고
아궁이 속 장작으로 눈을 감을지도 모르지
잊지 마렴 한 줌 재가 되었지만
넌 그때도 하늘을 날고 있는 거야
누군가의 몸을 데워주고 난 뒤
춤을 추듯 피어오르는 거야
하지만, 지금은
다만 네 잎사귀를 스치고 가는
저 바람 소리를 들어보렴
너는 지금 바람을 만나고 있구나
바람의 춤을 따라 흔들리고 있구나
지금이 바로 너로구나



  "자라면 뭐가 되고 싶니?"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을 묻는 말을 무수히 들으며 현재보다 미래에 삶의 주춧돌을 놓게끔 세뇌당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런 제가 엄마가 되고 나니 무의식 중에 아이들에게도 저런 질문을 습관처럼 툭 던졌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언젠가는, 미래에는.


 그런데 어제 큰애가  그런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어요. 7학년이 된 큰애랑 새롭게 '사자소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요(폴란드에서 소학을 가르치는 조선시대 훈장스타일 엄마... 그게 접니다.) 학습서 맨 앞장에 '목표'를 적는 칸이 있었어요. 마음 끌리는 대로 한번 적어봐, 하고 학습서를 방에 두고 나왔는데, 등교한 후에 아이방에 가보니 이렇게 적혀있네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당당하고 환하게 웃으며 '현재'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 되기."


 와... 머리를 한 대 띵 맞은 느낌이었어요.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최근의 저를 엄청나게 흔드는 이슈가 바로 '선행학습'이었어요. '이렇게 미래에 대한 아무 대비 없이 안이하게만 있으면 나중에 큰일 난다.'라고 소리치는 목소리에게 아이의 글은 슬그머니 킥을 날리네요. 미래의 것을 자꾸 현재로 끌어오려는 사람들에게, 아이는 '현재'를 즐겁고 충만하게 잘 살아내고 싶다고 대답하네요. 그래, 선행 따위 안 하면 어때. 이런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는데. 엄마에게 그런 위안을 주는 큰애에게 마음속으로 슬쩍 답해봅니다.


 "지금이 바로 너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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