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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Oct 18. 2023

오늘의 메뉴는 찬밥, 삶은 감자 그리고 게

시필사 모임 4주 차


 이번 필사모임에서 배달할 시를 모아보니 자연스럽게 친정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시가 한 편 있었어요. 문정희 시인의 '찬밥'입니다. 시벗들이 나눠준 시를 언제 어느 날 배달할까 하며 하루에 한 편씩 시를 배치하는데, 달력에 '친정엄마 출국일'이라고 동그라미 쳐진 일요일이 보이더라고요. 아마 친정엄마가 떠난 다음날에는 마음이 헛헛할 것 같아, 그러면 (마치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기름을 붓듯이) 그 헛헛한 마음에 시를 한 방울 끼얹어 볼까, 하는 학적인(?)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과거의 제가 보냈던 시 한 방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 마음에 똑, 파장을 일으켰네요.




시필사 16일 차. 8. 28. (월) 문정희, ‘찬밥'


[찬밥]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일 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사람

이 빠진 그릇에 찬밥 훑어

누가 남긴 무 조각에 생선 가시를 핥고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품던 그녀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락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나 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신 대신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 먹는 찬밥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나 오늘

세상의 찬밥이 되어



 한국에서 7주, 폴란드에서 3주. 총 10주 동안 함께 지냈던 친정엄마가 이 시를 필사하기 바로 전날, 한국으로 귀국하셨어요. 저희 집엔 손님으로 오신 건데 왜인지 부엌에서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가셨네요. 엄마가 떠난 부엌엔 냉장고와 냉동실을 가득 채운 소고기뭇국과 동그랑땡과 생선 전과 김치가 남아 있었고요. 유난히 몸과 마음이 지쳐 밥 하기 싫은 저녁에는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들을 먹으며 또 그렇게 하루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한국으로 떠나시던 날, 공항에서 배웅할 땐 쿨하게 잘 보내드렸는데, 밖에서 볼일보고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가 안 계신 집이 너무 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 집에 복작이며 살던 사람들은 다섯 명이 아니라 여섯 명이었는데. 외출하고 들어오면 빈 집이 아니라 엄마의 인기척과 온기가 느껴지던 집이었는데.


 제가 휑한 마음으로 거실을 바라보자 막내아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이제 우리 집에 할머니가 없네."

하며,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저희 아들이 눈물이 참 많아요. 그런데 울고 있는 막내의 얼굴을 보자 저도 갑자기 눈물이 차오르더라고요. 두 모자는 부엌 문간에서 서로 껴안고 엉엉, 한참을 울었어요. (그리고 지나가던 T형 둘째는 '그러길래 있을 때 잘하지... 쯧쯧.' 하는 명대사를 날리며 울고 있는 동생과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습니다.)


 타지에서 엄마와 떨어져 살면서, 이미 결혼해서 독립한 지 14년째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처럼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때가 언제인지 생각해 보면 아플 때더라고요.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라고 이야기하는 문정희 시인의 말처럼, 저도 식구들이 다 떠난 빈 집에서 혼자 남아 아픈 몸을 스스로 돌봐야만 할 때가 있는데요, 그때마다 늘 엄마 얼굴이 떠오르곤 해요.


 올여름엔 갑상선암 수술을 받으며 많이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엄마 곁에서 아플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날 시를 함께 나눴던 다정한 시벗님이 "정현님 어머니도 딸이 아플 때 옆에 계실 수 있어 안심하셨을 거예요."라고 말해주셨는데, 정말 엄마도 그런 마음이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옆에서 아플 수 있었던 것도 하나의 복이라고 말씀해 주신 분도 있었고요. 다시 엄마를 만나는 날까지, 서럽도록 엄마가 보고 싶은 일은 생기지 않게, 뜨신 밥 든든히 먹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날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시필사 17일 차. 8. 29. (화) 안도현, ‘삶은 감자'


[삶은 감자]


삶은 감자가 양푼에

하나 가득 담겨 있다

머리 깨끗이 깎고 입대하는 신병들 같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중이다

감자는 속속들이 익으려고 결심했다

으깨질 때 파열음을 내지 않으려고

찜통 속에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젓가락이 찌르면 입부터 똥구멍까지

내주고, 김치가 머리에 얹히면

빨간 모자처럼 덮어쓸 줄 알게 되었다

누구라도 입에 넣고 씹어 봐라

삶은 감자는 소리 지르지 않겠다고

각오한 지 오래다


첫 줄에서 행바꾸는 걸 깜빡했지만 우리 너그럽게 못본 척 하기로 해요

 한국인의 주식이 쌀밥이라면, 폴란드인의 주식은 감자입니다. 옆나라 독일에 사는 작가님이 감자국은 독일이라며 자꾸 저를 자극하시지만(아니에요, 감자의 나라는 폴란드라고요!) 이날의 '삶은 감자'는 좀 결이 다르네요.


 이 글을 쓰면서 시를 다시 읽으니 유달리 마지막 부분이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아마 8월에 시를 읽었던 저와 10월에 다시 시를 읽은 오늘의 제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두 달 사이에 저라는 사람은 좀 포슬포슬 익었으려나요. 사람이 속이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걸 '익는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죠. 누군가의 험담을 하는 걸 '씹는다'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생감자였다면 아삭, 소리를 내었을 감자는 속속들이 익어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네요. 그것은 찜통 속에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던, 인내와 고행의 시간 덕분이었을까요.


 '눈을 질끈 감은 감자'를 생각하니 떠오르는 감자가 있습니다. 마이클 이안 블랙의 그림책에 나오는 감자예요. 감자, 소녀, 그리고 플라밍고 삼총사가 주인공 이 시리즈에는 현재까지 총 4권의 그림책이 출간되었는데요, 그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I'm SAD>입니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감자는 이렇게 말하죠.


"나도 한때 슬펐던 적이 있어."


감자도 슬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친구 플라밍고가 말하자 감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누구나 가끔은 슬픔을 느끼지."


copyright @ Michael Ian Black


 안도현 시인의 시를 읽으니, 그림책 속 감자에게 이 시를 읽어주고 싶었습니다. (추정컨대 아직 그는 생감자인 것 같지만요.) 네가 슬펐던 순간에 네 옆에는 다른 감자 친구들이 있었어. 너는 혼자가 아니었단다. 머리 깨끗이 깎고 입대하는 신병들처럼 가지런히 누워 있는 감자들. 어떤 슬픔도, 고통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은 동지의식이 느껴지는 장면인데요,


 살다 살다 감자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이것도 시의 매력일까요?




 아재개그를 좋아하는 시벗 중 한 분이 '삶은 감자'라는 제목을 두고 '라이프 이즈 포테이토'라는 개그를 시전해 주셨는데요(쿨럭쿨럭) 안도현 시인의 시 중에 '삶'이라는 제목을 가진 시가 있습니다. 2022년 여름에 함께 필사했던 시예요. 오랜만에 가져와 봅니다.



2022. 8. 2. (화) 안도현, '삶' - 시집 <그리운 여우> 중에서


[삶]


게는 이 세상이 질척 질척해서

진흙 뻘에 산다

진흙 뻘이 늘 부드러워서

게는 등껍질이 딱딱하다

그게 붉은 투구처럼 보이는 것은

이 세상이 바로 싸움터이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설 줄 모르고

게가 납작하게 엎드린 것은

살아남고 싶다는 뜻이다

끝끝내


그래도 붙잡히면?

까짓것, 집게발 하나쯤 몸에서

떼어주고 가는 것이다

언젠가는 새살이 상처 위에

자신도 모르게 몽개몽개 돋아날 테니까.



 2022년 여름에 이 시를 읽고 저는 이렇게 단상을 남겼었네요;


 집게발 하나쯤은 몸에서 뚝 떼어주는 게의 대범함. 살면서 무엇이 딱딱한 등껍질로 보호해야 할 몸통인지, 또 어떤 것이 뚝 떼어줘도 당장은 힘들겠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는 언젠가는 다시 자라날 집게발인지 구분하는 능력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몸통을 떼어내서도 안될 것이고, 집게발을 과하게 보호하려 하다간 모든 걸 망치고 말겠죠. 어제는 삼라만상 뭐 하나 귀하고 소중하지 않은 건 없다고 배웠는데, 오늘은 세상 모든 생명이 제 스승이라고 이야기하는 시를 만났네요. 질척거리는 이 싸움터 같은 세상에서 게도 저도 붉은 투구 휘날리며 열심히 살아보렵니다.




덧.

안도현 시인의 시 중에는 삶은 감자 외에도 먹거리가 등장하는 시가 참 많은데요, 게가 등장하는 '삶'이라는 시를 읽으니 자연스레 '간장게장으로 유명한 그 시(!)'가 함께 떠올랐습니다. 사실 안도현 시인의 '삶'이라고 시를 검색해야 하는데 '게'라고 검색해 버렸지 뭐예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간장게장에 대한 시가 나와서 저는 또 다른 스며듦과 슬픔에 꿈틀거리고 버둥거리며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폴란드에는 간장게장이 없어서 참 슬퍼요 다행이에요.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찬밥과 간장게장, 그리고 삶은 감자를 먹을 때마다 자꾸 시 속의 장면을 떠올리게 돼서 참으로 곤란합니다. "죄책감 없이 식욕을 자극하는 시가 필요합니다."라고 시벗님이 당당하게 요구해 주셨는데, 저는 아직 그런 시를 찾지 못했어요. 가을은 식욕의 계절인데, 저는 자꾸만 시벗들의 식욕을 깎아먹고만 있네요. (시 필사가 심지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니, 이렇게 획기적일 수가 없습니다.) 혹시 식욕을 '몽개몽개 돋아줄' 시를 아시는 분 있나요? 그런 시를 아신다면 댓글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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