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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Nov 23. 2023

칼날 같은 시간의 기록

시 필사 모임 5주 차


 시는 읽는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는 걸 알게 된 한 주였습니다. 필사모임 5주 차에는 마음이 여러 가지로 힘들었어요. 일주일 동안의 메인 감정이 '분노'였으니. 그 감정에 스스로를 활활 태우느라 많이 지쳐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저를 분노케 했던 일들이 잘 해결되어야, 차분하게 가라앉은 정갈한 마음으로 그 당시의 기록을 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오래 기다렸습니다. 9월에 있었던 일이니 11월쯤에는 시간의 힘에 기대어 어느 정도 엉킨 실타래가 풀려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일주일에 한 편씩 쓰고 싶었던 필사모임 기록이 하염없이 밀리게 된 까닭은 여기에 있는데, 아쉽게도 모임 5주 차에 저를 분노케 했던 '어떤 사건'은 아직까지도 속 시원하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네요. 저 혼자만의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일이라 이 공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는 없지만, 저 혼자서만 동동거린다고 해결될 수는 없는 그런 속성의 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엉킨 실타래를 한 가닥씩만이라도 풀어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어떤 문제였는지 두루뭉술하게나마 이야기해 보자면, 이기적으로 굴었던 과거의 저 자신 때문에 제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과거의 저는 이런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어요. 과거에는 최선이라 생각했던 행동이 사실은 최선이 아니었다는 것을, 현재 혹은 미래의 시점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은 후회와 아쉬움이라는 감정을 넘어 자신에 대한 분노라는 감정이 되어 돌아오더라고요. 그래서 당시에는 더더욱 과거의 저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비겁하게 도망쳤던 시간이 이렇게 다시 부메랑이 되어서 내 아이에게 피해가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받게 되는 피해가 왠지 내 책임인 것만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 모든 과정이 쉽지는 않네요.


 그렇게 뾰족하게 날이 서 있었던 와중에, 제 마음만큼이나 뾰족하고 날카로운 시를 만났습니다. 정병근 시인의 <유리의 기술>입니다.




시필사 21일 차. 9. 4. (월) 정병근, '유리의 기술' - 시집 <번개를 치다(문학과 지성 시인선 296)> 중에서

[유리의 기술]

유리창에 몸 베인 햇빛이
피 한 방울 없이 소파에 앉아 있다
고통은 바람인가 소리인가
숨을 끊고도 저리 오래 버티다니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자
햇빛은 비로소 신음을 뱉으며 출렁인다
고통은 칼날이 지나간 다음에 찾아오는 법
회는 칼날의 맛이 아니던가
깨끗하게 베인 과일의 단면은 칼날의 기술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풍경의 살을 떠내는
저 유리의 기술
머리를 처박으며 붕붕거리는 파리에게
유리는 불가해한 장막일 터
환히 보이는 저곳에 갈 수 없다니!
이쪽과 저쪽 소리와 적막 그 사이에
통증 없는 유리의 칼날이 지나간다
문을 열지 않고도 안으로 들이는 단칼의 기술
바람과 소리가 없다면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 시를 만났을 때 첫 감정은 '부러움'이었어요. 저는 유리가 부러웠습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풍경의 살을 떠내는 저 유리의 기술'. 이 시를 읽을 때 저를 지배하고 있던 감정은 '분노'여서 그랬을까요, 저는 자꾸 마음이 활활 불타오르고 뜨거워지고 마는데, 그런 감정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하고 싶어 자꾸 저 자신을 차갑게 식히려고 노력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며, 유리의 섬뜩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에 부러움과 찬사를 보냈어요.


 통증 없는 유리의 칼날. 그리고 문을 열지 않고도 안으로 들이는 단칼의 기술. 그러나 실제로 세상의 많은 일들이 고통 없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통증 없는 유리의 칼날은 세상의 차단막은 되어줄 수는 있겠지만 바람과 소리가 지나가는 소통의 창구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오히려 저는 유리창을 활짝 열어보고 싶었습니다.


 시 필사모임은 함께하는 멤버들에게는 대나무숲 같은 공간이에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속마음을 왠지 필사 모임 멤버들에게는 그날 함께 읽었던 시의 힘에 기대어 훌훌 털어놓게 됩니다. 저는 이날 답답했던 속마음과 죄책감,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분노의 마음을 고백했었는데요, 이런 저에게 다음과 같은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신 시벗이 있어요.


"세상은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에 의해서 멸망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지켜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 때문에 망할 것이다."  
- 아인슈타인


 저는 이 메시지를 받고 그만 펑펑 울어버렸어요, 저에게 너무 필요했던 응원이고 위로여서요. "유리의 기술을 햇살에게 꼭 전수받으셔서, 고통이 최소화되어 유리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평화롭게 안착하게 되시길 진심으로 온 맘 다해 응원하고 기도합니다."라는 진심 어린 기도도 같이 전달받았습니다. 그 응원과 기도 덕분에, 한 걸음 더 씩씩하게 나아갈 결심도 다시 해볼 수 있었고요.


 그러나, 아쉽게도 힘든 상황과 마음은 한동안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시필사 23일 차. 9. 6. (수) 정호승, '봄비' - 시집 <밥값(창비시선 322)> 중에서


[봄비]


어느 날

썩은 내 가슴을

조금 파보았다

흙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 흙에

꽃씨를 심었다


어느 날

꽃씨를 심은 내 가슴이

너무 궁금해서

조금 파보려고 하다가

봄비가 와서

그만두었다



 필사모임 5주 차 기록을 살펴보니까, 제가 정호승의 <봄비>까지만 필사하고 목요일이랑 금요일에는 시 필사를 하지 못했더라고요. (모임 운영자가 대놓고 땡땡이치는 그런 모임 우리 모임...) 찾아보니 이 시도 수요일이 아니라 금요일에 필사를 했다고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많은 문제가 있었던 시기인 것 같아요. 밥도 거의 못 먹고, 잠도 거의 못 자고. 남편은 제가 수술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러다가 몸 상하겠다고, 제발 네 건강부터 챙기라고 그러고, 아이들은 엄마가 어딘지 정신이 반쯤 나가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여하튼, 말도 안 되게 힘들었던 일주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무너진 일상 속에서 이 시를 읽었을 땐, 마음이 너무 아파서 엉엉 소리 내서 울었습니다. 정말 제 마음이 썩어있었거든요. '썩은 내 가슴'을 이 시가 파버리는 거 같아서, 마음이 부들부들 떨려서 차마 필사를 못 했었습니다. 이틀 정도 지나서 겨우 연필을 들어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는데 마음도 떨리고 손가락도 떨리고... 외롭고 지치더라고요. 열심히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었는데, 그랬더니 저라는 계란이 파스슥 부서지기 직전이었어요.


 두 달 여가 지나고 오랜만에 이 시를 다시 읽어보니, 그래도 저는 지난 몇 주 동안 제 가슴속에 꽃씨를 심고, 거기에 봄비처럼 촉촉한 물을 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꽃씨는 심은 거 같아요. 흙 위로 싹이 움트지 않아서 씨앗이 살아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는 궁금한 상황인데요, 아마 정말로 내년 봄쯤은 되어야 씨앗의 안위(?)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봄비가 내려야 하겠죠? 그래도 저는 한결 나아졌어요. 이제는 과거의 일이라고 이렇게 글도 쓸 수 있으니까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공개적인 공간에 제대로 밝힐 수도 없는 처지이면서, 굳이 이때의 기록을 남겨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그랬던 과거까지도 그때의 감정까지도 모두 다 저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미흡하게나마 짧게 기록을 정리해 봅니다.




 사실 5주 차 필사모임 기록을 남기면서 브런치 독자님들과 가장 공유하고 싶었던 시는 안희연 시인님의 <액자의 주인>이었어요. 온라인 공간에서 마주하는 작가와 독자라는 이 특수한 관계에 대한 은유가 잘 드러나는 시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게다가 오늘처럼 정제되지 않은 '덩어리'같은 글을 남기는 제 입장과, 그런 부족한 글이라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어주는 착한 독자님들을 생각하면요.


 오늘의 글은 당시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차마 필사하지 못했던, 그러나 애정하는 시를 공유하며 마무리해 볼까 합니다.




시필사 24일 차. 9. 7. (목) 안희연, '액자의 주인' -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창비시선 393)> 중에서


[액자의 주인]


그가 나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손목에서 손을 꺼내는 일이

목에서 얼굴을 꺼내는 일이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았다


그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꾸만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싶어 했다


아직 덩어리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할 수 없이 주먹을 내밀었다

얼굴 위로 진흙이 줄줄 흘러내렸다




photo credit @simonskaf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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