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책 좀 그만 읽어. 지겨워!!!"
그저께 밤, 시간은 이미 9시가 넘은 상황. 다음날 아침 일찍 학교에 가야 하니 아이들은 얼른 씻고 잠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잠옷 갈아입으라고 침실로 들여보냈더니 어느새 두 자매는 책 속에 고개를 파묻고 '정지' 상태로 멈춰 있다. 자신들이 뭘 하러 2층 침대방으로 올라왔는지 이미 까먹은 듯하다. 그냥 두면 밤 10시까지 그대로 멈춰 있을 듯. '얼른 씻어야지.'라고 말했지만 이미 현실 세계가 아닌 책 속 세계에 정신머리를 갖다 둔 두 아이에게 데시벨이 낮은 엄마 목소리는 들리지 않나 보다. 정신이 번쩍 들 만한 큰 목소리로 '책 좀 그만 읽어, 지겨워!'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옆방에서 내 고함 소리를 듣던 남편이 재밌다는 듯 낄낄 웃으면서 옆에 있는 아들에게 말한다.
"야야, 드디어 네 엄마 입에서 책이 지겹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남편은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엄마는 저렇게 얘기하면서 틈만 나면 책 읽는 건 엄마가 더 하잖아."
쓱, 남편에게 눈을 흘기고, 얼른 책을 덮으라고 재촉하며 아이들을 세면실로 들여보냈다. 책 덮어, 계단에선 책 읽으면 위험해, 책 그만 읽어, 밥 먹을 땐 책 식탁으로 가져오지 마, 이런 잔소리를 꽤 많이 하는 편이다. 반대로 내가 절대 하지 않는 잔소리가 있다. '책 좀 읽어.' 굳이 시키지 않아도 지겨울 정도로 책을 많이 읽는다. 일상의 많은 부분이 '책' 때문에 덜그럭거릴 정도로.
어쩌면 책 육아를 하는 엄마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 좀 읽어'라고 잔소리하는 엄마와 '책 좀 그만 읽어'라고 잔소리하는 엄마. 나는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원래 아이들이란, 하지 말라면 더 하는 법이다.
이번 '책 육아' 글을 연재하며 아이들이 책을 읽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틈틈이 사진을 찍었다. 거실에서, 놀이방에서, 침실에서. 그리고 식당에서, 놀이터에서, 카페에서. 사진으로 남기고 보니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아주 짧은 틈이 날 때마다 적극적으로 책을 읽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직 글자를 모르고 혼자 책을 읽을 수 없는 막내의 가장 큰 불만도 바로 이것이다. 누나들은 틈만 나면 책을 읽고, 그 시간 동안 자기는 소외된다. "누나들은 맨날 책만 보고 나랑 놀아주지 않아."하고 투덜거리면 나는 "그렇게 맨날 책만 보고 놀지 말고 동생이랑 좀 놀아줘."하고 잔소리를 시전 한다. 책을 읽는 건 놀이고, 동생이랑 놀아주는 건 숙제가 된다. 동생이랑 보드 게임을 하면서, 레고 조각을 맞추면서, 인형 놀이를 해 주면서도 누나들은 옆구리에 책을 끼고 있다. 그리고 틈틈이, 동생이 다음 카드를 뭘 낼까 고민하는 사이, 레고 박스에서 블록을 버스럭버스럭 뒤적거리는 사이, 새 인형을 가져오겠다고 2층으로 올라가는 사이에 다시 책장을 펼친다. 한 줄이라도 더 읽으려고 애쓰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하는 짓이 나랑 너무 똑같이서 말이다.
문득 3년 전, 폴란드로 이사하는 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첫째가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 안의 모든 가구들은 박스 포장이 되어 컨테이너 트럭으로 실려 나가고 없었다. 의자도 없고 책상도 없고 식탁도 없는 상황. 잠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아이는 빈 붙박이 옷장에 들어가 책을 읽었다. 어수선한 주변 상황에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책 속 세계로 풍덩 빠져들어갔다. 주변을 서성이던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이 여덟 살 아이를 보고 신통하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의자가 없으니 옷장에 들어가 기어코 책을 읽는다니. 집에 책이 너무 많다고, 책박스가 무겁다고 투덜거리던 아저씨가 "저런 아이를 키우면 책이 그렇게 많을만하네요."하고 씩 웃었다. 엄마인 나는 민망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아이들이 열성적으로 책을 읽으니 엄마는 걱정이 없겠어요.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어요.라는 말을 여러 번 들어왔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는 아이들이 나와 함께 책이라는 어마어마하게 즐거운 세계의 재미를 알아가는 그 풍경이 정말 좋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이들이 책의 세계에만 함몰되어 버릴까 봐 염려가 된다. 책은 정말 멋진 물건이고, 쭉 손에서 놓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의 아름다운 동반자가 되지만 책에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들은 다 책 바깥에 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모두 책 바깥에 있다. 외부 세계 없이 존재하는 텍스트의 세계는 허무하다. 나 스스로 책 욕심이 많은 엄마이고, 책이 가진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이 가진 한계 또한 명확히 알고 있다.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고 책을 탐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책만 보는' 일상을 누구보다도 경계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책의 세계는 '운동성'이 결여된 세계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가을날 엄마와 함께 낙엽이 쌓인 가을길을 걷고, 가을바람에 섞인 가을 냄새를 맡으며, 차가운 공기의 변화를 느끼고, 색색깔의 낙엽을 모아 부케를 만드는 일보다 독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햇빛을 쬐고, 걷고, 뛰고, 목소리 높여 말하고, 신체를 움직이며 얻게 되는 건강한 몸과 그 몸을 통해 자연스럽게 확보되는 건강한 정신은 책으로부터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정신의 기본 체력을 키우는 데에 분명 책은 도움이 되는 존재이지만 책만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책에만 있지도 않다. 바깥세상과 책을 연결시켜야 한다.
여행은 또 어떠한가. 내가 텍스트로 읽어 온 세상과 실제로 경험하는 세계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지만 텍스트의 세계에 함몰된 사람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나는 아이가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고대 유적지에 간다면 그곳의 오래된 건물과 남아있는 돌들을 보면서 고대인들을 상상하고 존경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살아 숨 쉬던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 책에서 읽은 역사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면 더 좋을 것이다. 반면에 가장 경계하는 모습은 '아, 그냥 책에서 보던 거랑 똑같네.', '사진이랑 별 거 다를 거 없네.'하고 심드렁해하는 태도다. 둘 다 똑같이 책을 읽었지만 세상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결국 책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책 속에 담긴 세상과 사람의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면 책을 읽는 독자인 우리는 그 뒤에 '사람'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일상에 책을 연결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일상에 책이 전부가 아니게 하려고 더 노력한다. 책이 가진 '정제되고 고요한' 속성을 깊이 이해하고, 아이의 정신이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더 노력한다. 아이의 일상에 생명력과 활동성이 가득 담길 수 있도록.
책을 사랑하고, 책을 읽어주고, 책에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책을 '경계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책을 읽어온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책벌레니까, 그리고 책벌레가 책벌레를 키우면 책벌레만 알 수 있는 책에 대한 진실이 있으니까.
미국 시인 에이드리엔 리치는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시를 써야 했다.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이 그렇듯이 그녀는 다리미가 달궈지는 동안에도 책을 읽었다고 한다. 창작에 대한 열망과 가정에 대한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생활과 내면을 다잡으려는 치열한 노력이 그녀의 일기에서도 느껴진다.
나희덕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중에서
얼마 전, 나희덕 시인이 소개한 에이드리엔 리치의 일기를 읽으며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책을 읽는 일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이들도 나도 모두 틈 나는 대로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지만 서로가 가진 동기는 다르다. 모든 의무감에서 해방돼 원하는 대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기는 길지 않았다. 유년 시절의 내가 느꼈던 책의 의미와 어른이 된 지금 책이 갖는 의미는 사뭇 다르다.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독서는 '즐거운 독서'다. 순수한 오락으로서의 책 읽기.
어른이 되면 단순히 재미 하나만 가지고서는 책을 읽는 게 불가능해진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와 치열한 자기 투쟁 속에서 순수한 오락으로서의 기능은 조금 쇠퇴한다. 아마 먼 미래도 아니고 대입 논술을 준비하는 중고등학생만 되더라도 우리 아이들의 책을 고르는 손짓은 멈칫, 어린 시절의 호기로운 동작과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지금 이 시간을 오래 지켜주고 싶었다. 아무 고민 없이 책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시간을 말이다.
아이들은 어떤 어른으로 자라게 될까. 그리고 그 여정에서 어떤 책을 만나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 읽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은, 아이들 책이 빼곡한 서가를 둘러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간밤에 아이들이 읽은 책을 정리하면서, 무슨 책을 읽었나 어디에 모서리가 접혀있나 슬슬 확인하면서 책을 들춰보다가 이렇게 다 함께 책을 읽는 일상이 늘 언제까지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자라고, 아이들에게도 삶의 의무와 책임이 더 무거워지고, 그리고 어느 날엔 책이란 게 문득 너무 시시하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날도 오겠지. 그래도 그 옆엔 늘 책을 가까이하는 엄마가 있고,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형제들 중 누군가 한 사람쯤은 책을 읽고 있고, 서가에 제목과 만듦새만으로도 흥미를 돋우는 책이 있다면 또 어느 날엔가 책장을 펼쳐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책 읽는 날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다가, 한참 동안이나 책에 아이를 뺏겨 목소리를 들어본 지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주며 이렇게 말한다.
"책 좀 그만 읽고, 마당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쐬고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