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대신 도서관을 선택하다
때는 2019년 봄, 폴란드로 이사 온 지 겨우 반년이 지났을 때였다. 김희아 작가의 책, <엄마의 영어공부>를 읽다가 '유치원 대신 도서관을 선택하다'라는 챕터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낯선 언어와 낯선 환경의 폴란드 현지 사립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했던 둘째가 결국 유치원을 그만둔 지 삼 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아이와 스물네 시간 붙어 지내던 그 무수한 날들 중에 김희아 작가의 책을 만났고, 그녀의 경험담을 읽으며 우리 아이도 유치원을 가는 대신 매일 도서관에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유치원은 다니지 않으니 저자와 다르게 다른 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딱히 없었다.
그날부터 매일,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이와 동네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당시 아이와 함께 도서관을 다니며 동네 도서관을 취재했던 이야기가 내 브런치의 첫 게시글이다. 둘째가 다섯 살이던 그 해, 매일 아침마다 도서관에 갔다. 안타깝게도 폴란드 공공도서관에는 한국어 그림책이 없기 때문에 아이는 모국어 책 대신 영어 그림책을 읽으며 도서관을 다녔다. 물론 집에서도 언제고 원할 때면 한국어 그림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신기했던 일은 다른 특별한 공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어 그림책만 읽었는데도 아이의 영어실력이 놀랍도록 향상되었고, 연말쯤 되자 아이는 "My favorite color is purple."같은 간단한 문장을 별다른 문법 오류 없이 완전한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유치원이 무섭긴 하지만 조금 용기를 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유치원에 다니게 해달라고 내게 부탁하게 된 것이다. 어느덧 이 나라에 산 지도 1년이 넘었고, 금발머리의 푸른 눈 사람들도 많이 익숙해졌고, 선생님과 친구들이랑 영어로 대화도 할 수 있을 것 같단 자신감도 생겼다. 아이는 그렇게 조금씩,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낯선 사회와 다시 접촉할 용기를 키웠다.
코로나로 인한 가정보육의 시작
2020년 1월, 아이는 예전에 다니기를 포기했던 현지 사립유치원에 다시 등록했다. 등록 초반에는 엄마랑 헤어지는 게 여전히 무섭다며 엉엉 울기도 했지만, 1년 전에 비해서는 울음도 짧고 등원 거부를 하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주말부터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밤새 흐느껴 울고, 월요일 아침이면 배가 아프다며 울고, 심한 날엔 토하기도 하고, 정작 유치원에 도착해서도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한 시까지 네 시간 내내 울기만 했었다. 그렇게까지 지독하게 무섭고 싫다면야 굳이 유치원에 갈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고 그만뒀었는데, 1년 사이에 아이는 이제는 여섯 살이고 내년에는 학교에도 가야 하니(폴란드는 취학 연령이 한국 나이로 일곱 살이다) 무섭지만 조금 더 씩씩해져 보겠다고, 그렇지만 가끔 자기가 원하는 만큼 용기가 안 나서 울 지도 모르니 그럴 때는 너무 다그치지 말고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달라고 당차게 요구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적응하고 이제 드디어 친구도 사귀며 낯선 사회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나 했더니...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국의 모든 유치원과 학교에 휴교령이 내렸다. 여기까지 이만큼 용기 내는 게 아이에겐 정말 어려운 일이었는데. 드디어 낯선 외국어로 친구와 한두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원하는 것을 선생님께 표현할 수 있게 되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든 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고 아이가 기껏 내준 용기가 배신당한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거나 아이들은 매일 자라고 있었고, 우리에겐 채워야 할 일상이 있었다. 학령기인 첫째는 학교에 적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온라인으로나마 어떤 교육적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미취학 아동인 둘째와 셋째의 사정은 달랐다. 2020년 3월부터 2021년 1월까지, 그렇게 11개월 동안 여섯 살 둘째와 네 살 막내는 아무런 기관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엄마 유치원에서 엄마 선생님으로부터 엄마표 교육을 받으며 일상을 보냈다.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책 육아 일상이 시작되었다.
엄마표 독서수업
코로나로 아이들과 매일 지지고 볶으며 평소 해보고 싶던 홈스쿨링 아이템들은 남김없이 다 해본 것 같다. 매일 핀터레스트를 검색하고, 온갖 웹사이트와 블로그에서 홈스쿨링 아이디어를 얻고, 그리고 가진 재료와 에너지를 총동원해서 온갖 다채로운 활동들로 아이들과 일상을 꾸렸다. 그리고 그 모든 활동을 키즈노트를 작성할 것도 아니면서 사진을 찍고 기록했다. 당시의 기록과 사진을 보면 '좀 오버했다'는 생각도 솔직히 드는데, 그때는 그렇게 해야 바이러스의 공포라든지 무기력함이라든지 나를 우울하게 하는 모든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버했던 과거의 내가 남긴 기록들. 진짜 열심히 살았던 2020년.
만약 평소에 누군가가 '책 육아를 할 때 독후활동을 꼭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단번에 '아니오'다. 매일매일 책 읽어주기도 얼마나 힘든데요, 쓸데없이 독후활동을 언제 구상하고 준비해주나요. 그냥 육성으로 책 읽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해요, 굳이 다른 욕심부릴 것 없이 책만 읽어주세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그냥 책만 잘 읽어줘도, 정성껏 읽어줘도 그것 이상의 훌륭한 교육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았고, 남아도는 시간과 어떻게든 채워야 하는 하루 일과의 고통 속에서 나는 그 쓸데없는 독후활동을 꽤나 열심히 해버리고 말았다.
그 쓸데없는 독후활동도 어쩌다 매일 하다 보니 요령이랄까 노하우랄까 그런 것들이 생겼다. 아이들에게 즉각적으로 뜨거운 반응이 오는 독후활동을 파악하는 눈이 생겼고, 준비하는 게 별로 어렵지 않은데 아이들이랑 꽤 오랜 시간 즐겁게 놀았던, 다시 해보고 싶은 활동들도 있었다. 부담되면 절대 하지 마시라고, 책만 열심히 읽어 줘도 정말 괜찮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코로나가 바꿔버린 나의 책 육아(독서교육과 독후활동) 풍경을 조금 공유해보고자 한다.
먹는 게 남는 것! 요리활동만한 게 없다
아이들 나이가 조금만 더 많았어도 독서기록장을 쓰거나 책의 삽화를 따라 그리는 미술활동을 하거나 이야기의 한 장면을 다양한 형식으로 묘사해보는 '재창작' 활동을 했을 것 같다. 뭐가 됐든 아이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무언가를 했으면 '결과물'이 남아야 한다. 아이들은 의외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소크라테스도 울고 갈 듯한 훌륭한 토론을 했다 한들 그 경험이 기록으로 남지 않고 휘발되어 버리면 허무해한다. 물리적인 어떤 결과물, 하다못해 종이 쪼가리 한 장이라도 남아야, 그래야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투자했던 그 시간을 보람되고 가치 있는 시간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역시 '음식'만한 게 없다. 어린아이들과 독후 활동을 할 때 가장 반응이 좋았던 활동은 요리 활동이었다. 모든 일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은 아이들에게도 하나 틀릴 게 없었다. 우리는 <따끈따끈 빵 이야기>라는 그림책을 읽고 빵을 만들어 먹고,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를 읽고 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요리를 하는 게 부담되고 어렵다면 굳이 만들어 먹을 필요는 없다. 그냥 사서 먹어도 된다. 펠리시아 본드의 유명한 그림책 시리즈, <꼬마 생쥐에게 과자를 주지 마세요>를 읽을 때는 고소한 초코칩 쿠키를 와작와작 먹는 꼬마 생쥐를 보며 우리도 함께 초코칩 쿠키를 와작와작 먹었다. 먹고 난 자리에 한가득 생긴 과자 부스러기를 보며 끊임없이 사건 사고가 이어지는 그림책 속 생쥐의 일상과 우리의 일상이 다르지 않다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같은 작가의 시리즈 책 <아기 돼지에게 팬케이크를 주지 마세요>를 읽을 때는 역시 팬케이크가 함께 있어야 했다. 돼지에게는 주지 말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우리는 돼지가 아니니까 하면서 죄책감없이(?) 신나게 팬케이크를 먹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그림책을 읽는 시간이 곧 간식시간처럼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좋은 것(책) 더하기 좋은 것(간식)은 더 좋은 것(간식과 함께하는 독서시간)이니까 아이들이 싫어할 리가 없다.
고구마구마 책을 읽으며 찐고구마를 먹고, 하늘 100층짜리 집을 읽으며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그냥 먹기만 해서는 심심하니까 온갖 창의적인 내용을 생각해서 함께 활동해보기도 했다. <꿀꺽꿀꺽 우유 이야기>라는 그림책을 읽고는 그냥 우유만 마시기에는 아쉬워서, 그렇다고 우유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는 없어서(우리는 젖소가 아니니까), 하얀색 라텍스 장갑에 젖소 무늬 그림을 그려 젖 짜기 체험을 하기도 했다. 홈스쿨링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비슷한 그림책들 모두 한자리에 모여라
'우유'가 주제가 된 날, 젖소와 아기양, 젖먹이 동물 이야기 책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한 가지 테마를 정해 그와 관련된 그림책을 모두 모아 다 함께 읽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그날의 주제를 정하고 책장에서 관련된 책을 모아 왔는데, 이렇게 하다 보니 아이들이 잃고 싶은 책과 읽기 싫은 책이 뒤섞여 버렸다. 그럴 때면 읽는 순서를 아이들 스스로 정할 수 있게 해서, 가장 좋아하는 책을 맨 앞에 두고 싫어하는 책을 나중에 둬서 좋아하는 책을 먼저 낮 시간에 읽고, 낮에 읽지 않고 후순위로 미뤘던 책을 (어떤 책이든 순순히 읽으려 하는) 잠자리 독서 시간에 읽었다.
이렇게 주제에 맞춰 책을 고르다 보니 아이들은 으레 그날 아침이면 "오늘의 주제는 무엇인가요?"하고 주제어를 물어보았다. 오늘은 '호랑이'야, '민들레'야, '물고기'야 등등 한 가지 주제어를 알려주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 먹으면서, 세수하고 옷 입으면서 아이들은 틈틈이 책장을 째려봤다. '엄마가 책을 고르는 걸 도와줘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엄마보다 더 멋진 책을 발견해야지!' 하는 경쟁심도 발동한 것이다. 나보다 먼저 책장에 손을 뻗어 '이거 고르려고 그랬지요?' 하며 나의 선택을 선점하더니 어느새 내가 그날의 주제에 부합하는 책 서너 권을 골라 가져오면 재빠르게 책의 제목을 스캔하고서는 "엄마가 빠뜨린 책이 있어요!"라며 서가에서 책을 더 골라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생쥐'가 주제가 된 날에 나는 그림책 주인공이 생쥐인 책, 안젤리나 발레리나 같은 책을 골라왔는데, 아이들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연관성을 생각해서 엉뚱하게 코끼리 자연관찰책을 골라오기도 하고(역시 생쥐의 짝꿍은 코끼리니까?), 주인공이 아니라 빌런으로 생쥐가 등장하는 그림책(세균킹이 등장하는 코코몽 이야기)을 골라오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직접 선택권을 주니 책이 더 다채로워졌고, 두말할 필요 없이 자신이 직접 고른 책을 더 즐겁게 읽었다.
엄마가 먼저 골라온 생쥐책(좌), 아이들이 골라온 더 광범위한 주제의 생쥐책(우). 남매는 둘이 함께 상의해서 먼저 읽고 싶은 순서에 따라 책을 일렬로 배열했다.
그림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호랑이가 나오는 전래동화를 읽고는 호랑이를 만들고, 돼지가 나오는 돼지책을 읽고는 돼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 단순한 일차원적인 생각에서 출발했던 독후활동은 놀랍도록 다채로운 미술활동으로 이어졌다.
우리 동네에는 한국같은 '문방구'가 별로 없다. 색종이라든지 스케치북이라든지 아이들 미술활동 재료를 구하려면 따로 전문 화방이나 핫트랙스 같은 서점 내 문구코너를 가야 한다. 여러모로 한국에서 미술 재료를 구할 수 있는 루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료를 조달한다. 더군다나 쇼핑몰은 폐쇄되고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코로나 락다운 상황. 이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들과 미술활동을 한다는 건 다른 의미로 창의력을 자극하는 일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분리수거함으로 들어갔을 온갖 재활용품들이 시선을 바꾸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미술재료가 되었다.
우리는 폐품과 집에 있는 미술도구들을 활용해서 책에 등장한 평면의 인물들을, 상상 속 2차원의 친구들을 현실의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의 세계로 데리고 오게 되었다. '무엇을 만들까?'라는 고민은 필요 없었다. 그림책이 답을 가지고 있었고, 아이들이 스스로 그림책에서 답을 찾았다.
책장에 잠들어있던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이 바깥공기를 쐬러 마실을 나온 날이었다. 내심 코로나의 끝없는 가사노동과 육아라는 뫼비우스의 띠 속에서 하루하루 지쳐가던 참인지라, 아이들이 이 그림책을 읽고 '뭔가' 깨달아주기를 바랐다. 엄마의 가사부담이 너무 고되면, 엄마에게만 부당할 정도로 많은 역할이 주어지면 엄마가 결국 집을 나가버린다는 책의 핵심 내용을 알아주길. 그리고 아이들이 엄마의 희생을 가슴 깊이 느끼길. 그러나 그림책 속 엉망진창으로 더러워진 집 꼬락서니와 싱크대에 수북이 쌓인 설거지 감은 내 눈에만 보였다. 엄마가 가출한 집과 현재 우리 집 상태가 꽤 놀랍도록 비슷해 보인다는 것 역시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아이들은 '돼지우리 같은 집'에 놀라울 정도로 면역력이 있었고 저자의 메시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은 그저 삽화에 숨은 온갖 돼지 그림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고 커튼에, 벽난로에, 냄비 뚜껑에 숨은 돼지 그림을 하나씩 찾아낼 때마다 귀여운 꽃분 홍빛 돼지만 떠올릴 뿐. 결국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예쁜 돼지 모형을 만들었을 뿐이다. 어라, 이게 아닌데.
그런데 아이들의 생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꽃분홍색 돼지를 보면 함께 생각나는 그림책 세계의 슈퍼스타 돼지들이 있다. 모 윌렘스의 '코끼리와 꿀꿀이(Elephant & Piggie)' 시리즈의 주인공 '피기'와 귀여운 꼬마돼지 '페파 피그'. 아이들은 귀여운 돼지 친구들이 나오는 그림책을 주섬주섬 가져오더니, 피기의 친구 코끼리 제랄드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다음날 미술활동은 자연스럽게 코끼리로 연결되었다. 코끼리가 나오면 그다음은 뭐다? 생쥐다. 아이들의 생각의 알고리즘이란 참으로 신기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림책과 그림책을 연결시켰다. 하나를 만들면 그다음으로 만들고 싶은 친구들이 생기고, 그 친구들은 또 다른 아이디어를 불러일으켰다. 덕분에 책장에는 그림책뿐만 아니라 그림책 친구들의 가면, 모형, 그림 및 온갖 다양한 미술 작품들이 알록달록하게 가득 차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이여 안녕.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를 읽고 나자 다른 호랑이가 등장하는 전래동화 <방아 찧는 호랑이>를 펼쳐 들었다. 그다음으로는 똑같이 호랑이가 등장하는 <까치와 호랑이와 토끼>. 그러면 토끼가 나오니까 다시 별주부전의 <토끼와 자라> 이야기가 나오다가, 등장인물이 비숫한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로 이어진다. 시대와 배경, 장소와 인물을 초월하여 이야기의 세계를 넘나 든다. 첫날에 호랑이를 만들고, 그다음 날 토끼를 만들면 그다음 날 토끼와 호랑이가 등장하는 전래동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그 자리에 갑자기 지난주에 만들었던 돼지와 생쥐가 등장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새로 만들고, 연극을 올리고, 그리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탐색한다. 그림책 속 수많은 캐릭터들을 직접 만들며 아이들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도 하고, 이야기의 세계관을 공유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재창조'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그림책 세계 속에 풍덩 빠져서 살았다.
이 모든 것은 그림책 덕분이었다. 그림책이 있어서 지루할 틈 없이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바이러스가 많은 것을 바꾸었던, 그러나 또 별다를 것 없이 비슷한 나날이 반복되었던 2020년의 기록들. 코로나가 바꿔버린 나의 책 육아 풍경이었다.
덧) 이런 독후활동 이야기와 사진을 공유하면 혹시 부러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며 바라보는 독자들이 있지 않을까 염려했다. 이렇게 다양한 엄마표 활동들을 꾸려주고 싶은데 여력이 되지 않는 엄마들도 있을 것이고, 특히 워킹맘이나 더 어린 형제들을 키우느라 육아부담이 큰 엄마들은 안타까운 마음도 들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다채로운 독후 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부담스럽고 힘들다면 안 하는 게 맞다. 오래오래 꾸준히 하려면 즐겁고, 부담 없고, 스트레스받지 않는 책 육아가 최고다. 그냥 육성으로 책 읽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해요, 굳이 다른 욕심부릴 것 없이 책만 읽어주세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생각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