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육아란 무엇일까
언제부터 '책 더하기 육아'일 뿐인 이 단어가 '책 육아'라는 특정 육아방식을 부르는 명사로 기능하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짐작컨대 가정에서의 독서교육을 강조했던 초창기 인플루언서인 '푸름이 아빠'나 '하은맘' 혹은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 무리에서 나온 신조어가 아닐까 싶다. 나는 임신했을 때 대학교 도서관에서 아동 교육학 서가에 있는 <푸름이 이렇게 영재로 키웠다>라는 책을 대출해서 읽은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면 그 책이 내가 읽은 최초의 육아서일 것이다. 푸름이 아빠가 누군지도 몰랐고, 영재 교육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지만 다만 그때 뱃속에 있던 아기 태명이 '푸름이'여서, 재밌는 우연의 일치에 감탄하며 빌려 읽었던 기억이 난다. 8개월 임신부에게는 너무나 먼 미래의 이야기만을 한가득 담고 있던 지라 책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학원 연구실 책상 위에 있는 이 책을 보고 선배들이 '푸름이를 영재로 키우려는 야망 있는 엄마'라며 엄지를 추켜올려 세워줬던 부끄러운 기억은 있다. 유일하게 한 가지 기억이 나는 책의 내용은, 어렴풋이 서문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 자신은 원래 이렇게까지 독서 교육에 열성적인 부모도 아니었고 책을 많이 읽어줘서 영재로 키우겠다는 욕심도 없었지만 다만 아이가 책을 읽을 때만은 다른 사고를 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어 줬기 때문에 어쩌다 보니 책을 많이 읽어줬다는 이야기였다. 한창 저지레가 심할 두세 살 무렵, 나도 아이의 엉덩이를 바닥으로 유혹하기 위해 매일같이 책을 읽어줄 때마다 이 책의 머리말이 떠올랐었다.
'지랄발랄'로 유명한 하은맘의 책은 (작가에 대한 제 개인적인 평가가 아니고 그녀의 첫 책 제목이 ㅈㄹㅂㄹ로 시작합니다. 오해 금지.) 한창 책을 많이 읽어주던 시기에 구해서 재미있게 읽었다.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영유아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그녀의 솔직하고 재미있는 화법과 어딘지 모르게 후련한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질만하다. 첫 책부터 마지막 책까지, 제목에서부터 짐작되겠지만 이 언니의 책은 '쎄다'. 사실 꽤나 소심 내향적인 성격의 나는 말할 때도 조곤조곤 말하는 걸 좋아하고, 들을 때도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좋아하는데, 이 언니의 책은 글자로 읽는데도 너무 세서 읽으면서 약간 버겁다는 느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입담과 필력에 홀딱 반하지 않을 수 없어 한동안 블로그도 열심히 구독하고 그녀의 육아 철학에 열렬한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많은 육아서의 내용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고, 내가 듣고 싶은 내용만 취사선택하는 '불량엄마'이기 때문에 아이가 원할 때는 밤을 새워서라도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은 전혀 내 삶에 반영하지 않았다. 다만 핸드폰과 지갑을 집에 두고 열쇠만 달랑 챙겨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면 이 책 생각이 많이 났다. 풀꽃 하나에도 우주적 관심을 기울이며 해맑게 웃는 하은이의 모습과 우리 아이의 모습이 많이 겹쳐 보였으므로.
그 이후에도 책 육아에 대한 많은 책과 칼럼들이 있지만(그리고 나도 거기에 하나 보태고 있지만) 사실 책 육아는 단순하게 말하자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육아법'이다. 아직 글자를 깨우치지 못하는 영유아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물론,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취학 연령의 아이들에게도 가능한 오래 책을 읽어주고 좋은 책을 많이 소개해주는 육아법이다. 조금 더 책 육아에 열성적이고 광적인 엄마들의 이야기로 확장시켜 보자면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돌리기보다는 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이 최고다, 그 어떤 사교육도 책을 능가할 수 없다, 혹은 아이들이 책만 많이 읽으면 학습적으로도 인성적으로도 훌륭한 아이로 자라나서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하나의 육아 신념, 혹은 육아 철학을 대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책 육아는 그냥, 일상에서 책과 함께하는 육아,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책을 많이 읽어주는 육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책 육아는 언제 시작해야 할까
"물론 당연히 뱃속에서부터죠. 태교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라고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뱃속의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태중의 아기에게 책을 읽어준다고 해서 꼭 그 아이가 나중에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로 성장하리란 법은 없다. 만약 그 공식이 성립했다면 다섯 살 첫째 때문에 뱃속에서부터 매일 50권의 그림책을 읽어주는 엄마 목소리를 듣고 자란 우리 둘째는 언니보다 더 책을 좋아하는 책벌레였어야 했다. 더블로 듣고 자란 셋째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아기 때부터 얌전히 앉아서 책에 집중할 줄 아는 것은 오로지 첫째뿐이었고, 둘째나 셋째는 아기 때는 책을 찢고, 밟고, 먹는 그냥 평범한 보통의 인간 사람 아기였다. (이렇게 쓰고 보니 첫째가 이상한 돌연변이처럼 느껴진다.)
일단 첫 아이 때는 임신했을 때 읽어줄 만한 동화책이 없었다. 누군가에게서 '태교동화'였는지 '태교 탈무드'였는지 소리 내어 음성으로 읽어주기 좋은 그림책을 하나 선물 받았는데 한두 페이지 읽다가 너무 재미없어서 그냥 집어치웠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성인용 책을 많이 읽었던 시기도 아닌데, 그때는 대학원에서 한창 공부를 하고 있을 때라 읽어야 할 논문이 너무 많아서 활자라면 아주 지긋지긋해하며 기피하던 시기였다.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면 태교에 좋다고 해서 세이브 더 칠드런의 신생아 모자 뜨기 키트를 주문해서 열심히 뜨개질을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지도교수님이 연구실 책상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는 그 꼬락서니를 보시고 손가락 운동은 부지런히 논문을 쓰면서 키보드로 하라고 뼈 있는 농담을 건네던 시기기도 하다. 고로, 본업에 바빠 딱히 책과 관련된 태교를 열성적으로 하지는 못했는데 아이는 태어나고 보니 날 때부터 책벌레 기질이 있었다.
아이의 책벌레 기질을 발견했던 건 생후 2개월 무렵이었다. 산모교실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회음부 보호용 엉덩이 쿠션이 있었는데 산후조리 시기가 끝나고 필요가 없어져서 동네 맘 카페에 무료드림 글을 올려 누군가에게 쿠션을 양도했다. 물건을 받으신 분이 고맙다며 그림책 몇 권을 가져다주셨는데 안도현 시인의 동시를 예쁜 삽화와 함께 한 페이지에 한 행씩 옮겨 적은 동시 그림책이었다. 그 책이 우리 아이가 최초로 읽은 그림책이다. 이제 겨우 흑백모빌에서 컬러 모빌로 넘어갈 정도로만 시력이 발달했을 그 작은 아기가, 넘어가는 책장과 그림에 동그랗게 눈을 모으며 집중하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이 신기하고 귀여워서 그 뒤로 알음알음 아기가 읽을만한 그림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책을 읽기보다는 물거나 빨거나 찢기 쉬운 나이라서 종이책보다는 보드북이나 헝겊책을 샀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얘는 책을 찢지도 먹지도 물지도 않고 책이라는 물성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아기였다. (물론 그 책들은 나중에 둘째와 셋째가 열심히 찢어 먹었다.) 그때부터 하루에 한 권씩은 꼭 그림책을 읽어줬으니 그래도 꽤 이른 시기부터 책을 읽어준 셈이다.
둘째와 셋째는 큰애 덕분에 날 때부터 집에 어린이책이 많았고, 어린이책의 홍수 속에서 자랐다. 신생아일 때부터 옆에서 엄마가 언니 혹은 누나에게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만약 큰애가 책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신생아가 아니었다면 아마 6, 7개월쯤 무렵부터 소리 나는 사운드북이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플립북을 시작으로 책을 조금씩 사들였을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적어도 돌 전에는 아이가 가지고 놀든, 물고 빨든, 호기심을 가지고 탐색할 수 있는 어린이책이 집에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찢을 수 있으니 비싼 건 말고 기왕이면 값싼 중고이면서 튼튼한 녀석으로.
책 육아는 몇 년이나 해야 할까
책 육아는 언제 그만할 수 있을까? 엄마가 직접 아이에게 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는 책 육아의 종결을 말한다면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을 때까지'이다. 이것을 엄마들끼리의 전문(?) 육아 용어로는 '읽기 독립'이라고 부른다. 보통 여기까지 오는데 아이들마다 개인차가 커서 짧으면 5년, 길면 10년 정도 걸린다. 10년? 그렇게 길다고? 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겠지만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중에서도 엄마가 직접 소리 내어서 책을 읽어줘야 하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 '내가 혼자 읽으라면 읽을 수는 있는데... 그래도 엄마가 읽어주는 게 더 좋아.'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아직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다. 읽어야 하는 책의 글밥도 많고 길이도 길어진 데다가 아직까지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데에 회의감이 들면서 사실 제일 힘들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히 글자를 아는 것과 그 글자로 책을 읽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이다. 우리가 영어를 읽고 쓸 수 있지만 영어 원서로 책을 읽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읽기 독립은 아이가 한글이라는 글자의 이치를 아는 것을 넘어서 그 문자로 된 책을 서슴없이 읽을 수 있는 독립적인 능력을 말한다. 그 능력이 완성되고, 완전히 독립적으로 책을 읽을 줄 아는 나이가 되면 되려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준다는 엄마를 귀찮아한다. 음독은 묵독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 됐어. 답답해 진짜. 내가 혼자서 읽는 게 더 빨라."
그러나 아이가 혼자서 책을 읽을 줄 알면 책 육아는 끝난 것일까. 아이가 단순히 책을 읽을 줄 아는 것을 넘어서 집이나 도서관에서 직접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꼼꼼히 책을 읽고, 그 책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그다음 단계의 독서로 넘어가는 일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수행하는 것. 이것은 사실 숙련된 성인 독서가에게도 꽤 어려운 일이다. 책을 고르는 것부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고, 책의 지루한 부분을 견디며 끝까지 읽는 끈기도 있어야 하고, 어려운 어휘나 복잡한 플롯을 파악할 수 있는 인지 능력도 있어야 한다. 부지런히 서점과 도서관에 데려가야 하고, 또 좋다는 책을 구해다가 슬쩍 옆구리에 찔러 넣어주는 요령도 필요하다. 여기서부터는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도서관 프로그램이나 사설 독서교실을 활용할 수도 있고 아이에게 다양한 독서모임을 소개해줄 수도 있는데 만화책과 유튜브와 닌텐도의 유혹 속에서 아이가 지속적으로 책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엄마가 좀 부지런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의 책 육아는 글쎄, 10년으로는 한참 모자라지 싶다. 나도 책 육아는 언제 그만할 수 있는지 궁금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