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육아, 어떻게 해야 할까? (1)

by 주정현


매일매일 꾸준히, 그리고 틈틈이


예전에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치료사로 일한 적이 있다. 일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씩 가정집에 방문해서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 치료 세션을 진행했다. 대부분의 치료가 '꾸준한 반복'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 당시에 내가 했던 행동치료는 DDT(Discrete Trial Training)라 불리는 기법으로, 목표하는 행동을 가능한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서, 더 쪼갤 수 없을 만큼 행동의 성공 조건을 아주 작게 쪼개서 매일매일 조금씩 반복하는 것이 주된 치료 기법이었다. 매일 치료를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내가 치료를 가지 않는 날은 교대로 다른 치료사가 갔고, 치료사가 방문할 수 없는 주말에는 어머니께 최소한으로 숙제를 드렸다. 나는 이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책 육아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얼마나, 많이 읽어주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매일, 꾸준히가 더 중요하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집에서는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다가, 또 어떤 날은 갑자기 도서관에 가서 책을 열 권, 스무 권 들이대 봤자.... 아이는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아주 적은 양이라도, 하루 한 권이라도 매일 책을 읽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반복해야 한다. 생각해보니 나는 지난 10년 동안 단 하루의 예외도 없이 아이에게 매일 책을 읽어주었다. 아, 생각해 보니 몇 건의 예외가 있다. 둘째를 출산하느라 산후조리원에 있었을 때와 셋째 조기진통이 와서 입원했을 때. 그리고 셋째를 출산하느라 병원에 있었던 나흘 간은 책을 읽어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는 남편이 나를 대신해서 매일 책을 읽어주었으니 어쨌든 아이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책을 읽은 셈이다.


매일 꾸준히 책을 읽어주기에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언제 어디서든 책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커다란 기저귀 가방에 아이 물티슈와 마실 물, 간단한 간식거리와 함께 꼭 챙기는 것이 바로 그림책이었다. 나는 한 번에 가능한 여러 권의 책을 가지고 다니기 위해서 두껍고 무거운 표지가 있는 일반 그림책보다는 스테이플러로 제본된 페이퍼북을 더 많이 가지고 다녔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그림책보다는 영어 그림책이 이렇게 페이퍼북으로 제본된 경우가 많아서 종종 즐겨 가져 갔고 때올비나 한샘 교육에서 출판한 책들 중에서도 이런 페이퍼북이 많았다. 물론 한두 권 정도 챙겨 다니는 건 보드북도 그렇게 무겁지 않으므로 언제든 환영이다. 사실 요즘은 큰애용으로 기본 200페이지 이상 되는 두꺼운 책을 챙겨다니다 보니, 많아봐야 서른 페이지 전후였던 그림책 들고 다니던 시절이 참 좋았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챙겨야 할 물건이 많지 않아 엄마의 가방은 점점 작아지고 간소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여전히 책 서너 권은 거뜬히 들어갈 에코백을 즐겨 들고 다닌다.


큰 아이가 29개월 때, 여행지에 있는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아고스티노 트라이니의 그림책을 읽는 중
그 아이는 커서 김애란의 에세이를 읽는 10살 소녀가 됩니다

일단 책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면 생각 외로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서 가방에 책이 있다는 걸 엄마 자신이 까먹고 들고나간 책을 그대로 다시 집으로 들고 올 수도 있다. 괜히 가방만 무거웠었다고 투덜대지 말고 또 들고나가자. 반복되다 보면 책을 읽을 '틈'이 보인다. 가방에 있는 책을 꺼내기에 제일 좋은 타이밍은 엄마들이 외출해서 스마트폰을 꺼내는 타이밍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예를 들자면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처럼 어딘가에 엉덩이를 붙이고 가만히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순간, 아이가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내게 엉겨 붙는 타이밍에 바로 책을 꺼내 주면 된다. "아, 그러고 보니 엄마가 오늘 책을 한 권 챙겨 왔는데 말이야...." 하고 마치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이런 지루한 순간에 책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지 않냐는 듯이 말이다.


실제로 독서가로 정평이 나 있는 어른들은 언제 어디서든 가방에 책 한 권쯤은 들고 다니는 일이 많다. 그들은 지하철에서, 식당에서, 공원 벤치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혹은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가지고 있던 책을 펼친다. 아이들의 독서도 다르지 않다. 다만 아직 글자 체계를 몰라 책을 읽는 데 함께하는 어른의 도움이 필요할 뿐이다. 책 육아라는 것은 결국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을 만들어주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 위한 제일 좋은 방법은 '반복'에 있다. 매일매일, 꾸준히, 그리고 틈틈이.



하루에 몇 권 정도 책을 읽어줘야 할까?


앞서 얘기한 행동치료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이 치료의 관건은 더 쪼갤 수 없을 만큼 행동의 성공 조건을 아주 작게 쪼개는 데에 있다. 우리도 비슷하게 하면 된다. 아주 작은 성공의 단위, 그러므로 하루 한 권만 읽어줘도 충분하다. 책 육아의 성공 조건도 아주 작게 만드는 대신에 매일매일을 성공하는 날로 만들어야 엄마도 고무되어 꾸준히 오랫동안 책을 읽어줄 수 있다. 내가 아이에게 매일 책을 읽어준 날 998일을 달성했다면, 그다음 날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999일을 달성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딱 한 권만 읽어주면 성공인 건데. 고로 하루 한 권을 목표량으로 정해도 충분하다.


그래도 책 육아를 한다는데, 책을 읽는 습관을 만드는데 하루 한 권은 너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물론 책을 읽어서 아이의 문해력을 높이고, 인지능력을 상승시키고, 어휘능력을 증폭시키며, 사교육 없이 좋은 성적을 받게 하.... 고자 한다면 하루 한 권은 부족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를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키우겠다면, 책 읽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면 하루 한 권만으로도 충분하다. 대신, 매일 읽어줘야 한다.


의외로 하루 한 권을 제대로, 그리고 꾸준히 읽어주는 건 꽤 힘든 일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제대로'에 있다. 하루에 딱 한 권을 읽어주더라도 건성건성 읽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읽어줘야 한다. 인물들의 대사는 캐릭터에 따라서 목소리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의성어나 의태어는 리듬을 살려서, 페이지 구석구석에 있는 그림도 꼼꼼히 함께 살펴보면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엄마도 함께 책에 집중하며 책 속의 이야기에 깊이 몰입되어야 한다. 눈으로는 책의 글자를 읽어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카톡 창의 스크롤을 내리고 있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혹시 뜨끔하는 엄마들이 있다면, 굳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나도 자주 그런다. 다만, 정말 지극정성으로 영혼을 바쳐 그 한 권을 읽어준 다음에, 일단 오늘의 목표량을 달성한 다음에 설렁설렁 읽는다. 그러니까 하루에 아이에게 읽어주는 책의 양이 얼마나 권수가 많던지 간에 내가 막상 제대로 읽어주는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엄마도 사람이니까. 나의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영혼을 바쳐 책을 읽는 것은 실제로는 엄청난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가 소비되는 일이다.


실제로 하루에 한 권만 읽고 싶지만 그렇게 재미있고 맛깔난 엄마표 구연동화를 들은 아이들은 절대 거기서 멈출 리가 없다. 앞서 읽었던 그림책의 내용 자체가 재미있다면 더 그렇지만 어떤 책이든지 간에 엄마가 정말 제대로 읽어줬다면, 그래서 엄마와 내가 같은 이야기 속에 풍덩 들어가서 함께 몰입을 경험했다면, 그 느낌은 정말 중독적으로 짜릿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책장을 덮자마자 '또 읽어주세요!'를 외친다. 내가 애들에게 하루에 막 열 권 스무 권씩 책을 읽어준 날이 무수히 많았지만.... 그것은 절대 내 의지가 아니었다. (저는 제 성대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우리 집 애는 너처럼 책벌레가 아니어서 책을 별로 안 좋아해. 얘도 책 좀 좋아했으면 소원이 없겠다."하고 늘 말하던 동네 언니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언니네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게 되었다. 오른쪽에 우리 아이, 왼쪽에 언니네 아이를 앉히고 약 10분 동안 열성적으로 책을 읽어 주었는데 책장을 덮자마자 그 아이가 어디선가 또 다른 그림책을 꺼내와서 내게 쓱 내밀었다. 엄마가 책을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 아이는 정말 책을 싫어하는 아이일까? 어쩌면 책의 진짜 재미를 경험해볼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닐까?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가끔 지인의 아이에게 이렇게 책을 읽어줄 때면 그 그림책을 여러 번 읽어봤을 엄마조차도 함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는 점이다. '이 그림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인 줄은 그동안 전혀 몰랐네'하면서. 사실 좋은 그림책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에게도 정말로 재미있는 책이다. 다만 아이들 책이니까 시시하고 유치하고 재미없을 거라는 편견을 버리고 나도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들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이야기의 힘'이 알아서 나와 아이를 책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실제로 어릴 때는 몰랐는데 성인이 된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림책의 세계에 매료된 어른들이 꽤 많다.


고로 하루에 몇 권 정도 책을 읽어줘야 할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양보다 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한 권을 읽어주더라도 제대로, 영혼을 바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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