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육아, 어떻게 해야 할까? (2)

by 주정현


엄마가 직접 읽어주는 대신에 CD를 틀어줘도 될까?


엄마가 직접 책을 읽어주는 대신에 책 CD를 틀어주는 것도 책 육아라고 볼 수 있을까? 앞 장에서 책을 제대로 읽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글을 읽은 독자라면 이미 제목부터 읽고 '안 되겠지'하고 생각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원칙적으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옳다. 가장 좋은 책 육아 방법은 엄마가 직접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설령 다소 건성건성 읽을지라도.


우리 집 막내는 "엄마가 책 읽어줄게." 하면 책장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일단 엄마 무릎 위에 철퍼덕 앉는다. 멀쩡한 의자가 옆에 있어도, 내가 소파에 앉아있어도 일단 기본 세팅이 엄마 무릎이다. 가끔 나도 "아유, 무거우니까 엄마 옆에 앉아서 보자."라고 말할 때도 있지만,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아무렇지 않게 아들의 엉덩이를 엄마표 의자 위에 단디 앉히고 조곤조곤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아들의 고소한(?) 정수리 냄새를 맡으며 생각한다. 조금만 더 커도 여기서 시큼한 사춘기 남자아이 냄새가 나겠지? 이렇게 내 품에 쏙 안길 만큼 미니 사이즈여서 참 다행이다. 같이 이렇게 살 부대끼고 있으니까 좋다.


아들, 엄마 허벅지는 의자가 아니란다

내가 아이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는 것처럼 아이도 엄마의 냄새를 맡는다. 아이의 몸과 내 몸이 맞닿은 그 사이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낀다.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이 시간은 엄마의 목소리라는 청각, 엄마 냄새라는 후각, 그리고 엄마품이라는 촉각 이 세 가지가 결합된 하나의 복합 감각적인 경험이다.


그런데 엄마의 육성 대신에 CD를 틀어준다면 어떨까? 엄마 목소리라는 청각 자극 하나만 CD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다른 감각들도 모두 함께 사라져 버린다. 엄마가 직접 책을 읽어줬을 때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독서 경험이 되어버린다. 어떤 경험이 아이에게 더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을까? 아이가 '책'이라는 물건에 대해, 그리고 '책 읽는 시간'이라는 경험이 꾸준히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려면 어떻게 책을 읽어주어야 할까?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엄마가 직접 책을 읽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하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목도 아프고 좀 쉬고 싶고 물질문명도 발달했으니 그 혜택도 좀 누리고 싶다. 게다가 훌륭한 전문 성우들이 책의 분위기를 잘 살려 읽은 음성 CD가 있는데 그걸 그냥 묵히기에는 아까울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당연히 CD를 들려줘도 된다. 단, 아이 혼자서 책을 보는 게 아니라 엄마와 함께. 그렇게 되면 청각 자극이 엄마의 육성 대신에 오디오 음성으로 대체될 수 있지만 나머지 감각은 고스란히 남는다. 꽤 나쁘지 않은, 오히려 괜찮은 방법일 수 있다.


내가 아이들과 즐겨 듣는 오디오 CD 중에 <EQ의 천재들>이라는 어린이책 시리즈가 있다. 영국의 유명한 캐릭터 동화인 <Mr. Men & Little. Miss>의 번역판으로, 구연동화 CD만 따로 서점에서 팔 정도로 꽤 괜찮은 퀄리티의 오디오북이다. 책 자체는 미취학 아이들에게 일일이 읽어주기에 꽤 글밥이 많은 편인데, 이럴 때 오디오북의 도움을 받으면 비교적 쉽게 아이와 책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아이들은 엄마가 직접 읽어주는 걸 더 선호하지만 "엄마는 행복 씨 실제 목소리가 어떤 지도 한 번 들어보고 싶은데?"하고 개인적인 호기심(을 가장한 협상)을 비추면 아이들도 흔쾌히 오디오북을 반긴다.


이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엄마가 책을 함께 듣고 읽고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무리 '딩동' 같은 신호음이 오디오북 내에 삽입되어 있다고 해도 글자를 아직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타이밍에 맞춰 책장을 넘기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엄마가 옆에서 같이 신경 써주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삽화를 보며 엉뚱한 이야기 속에서 흐름을 놓치고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 미드를 보는데 자막이 등장하는 타이밍과 화면의 싱크가 맞지 않는다고 상상해보라. 단 10초만 늦어져도 드라마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된다. CD로 책을 듣는 아이들도 똑같다. 음성과 화면의 싱크가 정확히 맞아야 한다. 마음 같아서야 책과 CD를 던져주고 알아서 읽으라며 내버려 두고 나는 빨래와 설거지와 못다 한 집안일을 하러 사라지고 싶지만, 그동안 아이는 짜증 나는 경험을 연속적으로 경험하며 책과 오디오북에게 정을 뚝 떨어뜨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이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경험은 몰입의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을 반복적으로 느껴야 아이가 나중에도 스스로 책을 찾는다. 오디오 CD는 잘 사용하면 몰입감을 느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잘못 악용하면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비슷한 의미로 나는 지난 10년 동안 책 육아를 하며 '세이펜(책의 음성 정보가 들어있는 센서 인식 전자펜)'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의 쌩목소리로 채웠다.



책 읽으면 보상을 해 주면 어떨까?


아이들 학교 도서관에서 '독서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한 달 동안 책 서른 권을 읽고 목록을 제출하면 상품을 주는 행사를 한 적이 있었다. 하루에 대여섯 권씩 책을 읽는 아이들이니 그냥 평소에 읽는 책 제목만 주르륵 적어서 제출하면 될 것 같은데 아이는 영 시큰둥해했다. 사서 선생님이 건네준 리스트에 초반 한두 권만 책 제목을 적다가 말았다. 챌린지가 끝날 즈음에 그동안 읽은 책이 이렇게 수두룩 빽빽한데 왜 하나도 안 적었냐고 물으니 아이가 답한다.

"그냥, 까먹었어. 귀찮기도 하고."


가만히 아이의 독서 패턴을 관찰해보니 까먹고 귀찮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어느 날엔가 아이가 <나니아 연대기>에 푹 빠져 주말 내내 연달아서 책을 읽었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네 번째 이야기인 '캐스피언 왕자'를 읽은 아이는 얼른 다음 권을 펼쳐 그다음 이야기에 빠져들고 싶을 뿐 그 사이에 읽은 책의 목록을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연달아 책을 다 읽고 나면 아이는 그냥 책 이야기의 여운을 즐기고 싶을 뿐 여기에 숙제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어떤 추가적인 과제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귀찮은 일이다. 도서관에서 내건 상품도 이 즐거움에 비하면 그다지 탐나지 않는다. 아이에게 그냥 책은 책 자체로 즐거울 뿐이다.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으면 어떤 보상을 해주겠다고 나선 적은 없었다. 오히려 반대로 책을 읽어주는 게 보상으로 작용한 적은 많았다. 예를 들면, 양치 빨리 하면 잠자기 전에 그림책 한 권 더 읽어줄게, 라든지 지금 엄마 빨래 개키는 거 도와주면 이거 다 끝나고 책 읽어줄게, 하는 식이다. 책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속성을 지닌 물건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데 보상을 받는다는 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책을 읽는 행위에 어떤 보상을 거는 순간 아이들은 책 읽기라는 행동을 학습지를 풀거나 심부름을 해야 하는 것처럼 귀찮고 하기 싫은 일로 인식하기 쉽다. 아이들에게 굳이 책 읽기에 보상을 주기보다는 책 읽기 자체를 놀이로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다.


더군다나 외부에 보상이 주어지는 행동은 그 보상이 끊기는 순간 없어지기 쉽다. 그러니 책 읽는 행동에 보상을 주기보다는 그 행동 자체가 보상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아이가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책 속에 풍덩 빠지는 몰입을 경험할 수 있도록 엄마의 영혼을 바쳐서. 엄마가 구연동화를 하듯 재미있게 책을 읽어주면 가능해진다. 결국 지금까지 해 왔던 이야기의 반복이다. 책 읽는 시간은 엄마와 노는 시간이고, 그 시간은 소중하고 재미있는 시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책을 읽는 데에 어떤 물질적 보상을 주는 경우는 이미 읽기 독립이 된 초등학생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사서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미 책을 찾지 않게 된, 게다가 제법 머리가 큰 아이들을 책의 세계로 꼬실만한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엔 보상 때문에 시작했더라도 나중엔 책의 세계 안에서 스스로 재미를 찾을 수 있길 바라면서 아이들에게 물질적 보상을 제시한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그 재미를 아이들이 스스로 찾지 못한다. 이미 다 자란 아이들이 '읽지 않는 사람'에서 '읽는 사람'으로 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습관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책 읽기도 하나의 습관이고, 습관으로 굳어지려면 오래전부터 반복해온 역사가 있어야 한다. 머리가 더 굵어지기 전에, 아직 말랑말랑할 때 엄마가 책을 부지런히 읽어주고 책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나의 피땀 눈물과 갈라진 성대가 언젠가 결실을 맺을 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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