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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Apr 08. 2022

언젠가는 마스크를 졸업해야겠지만..

졸업식이 오늘인 건 맞나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백화점에 갔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키즈카페에 갔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슈퍼마켓에 갔다.

 아예 가방에 마스크를 챙기지 않았다. 


 2019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2년을 살아가는 오늘의 이야기이다. 


 지난 3월 말, 폴란드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한 거의 모든 규제를 없앴다. 폴란드에 입국할 때 백신 접종증명서나 음성 확인서를 제출할 필요가 없으며, 입국 후 자가격리를 할 필요도 없다. 현재 코로나에 걸려서, 혹은 밀접접촉자로 자가격리 중인 사람들의 모든 격리가 해제되었으며, 이후로도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본인조차 격리하지 않아도 된다. 병원 및 약국을 제외한 모든 실내 공간에서의 마스크 의무도 해제되었다. 


 이러한 대폭적인 완화 조치가 발표되자마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아니, 뭐,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였던 시기에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고, 그나마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도 코와 입을 완전하게 덮지 않는 일은 비일비재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마스크가 단 한순간에 사라질 줄은 몰랐다. 완화 조치가 시행된 다음 날, 아이 친구 생일선물을 사러 집 근처의 쇼핑몰에 갔는데 지하주차장에서 2층 장난감 가게로 가는 사이에 주변을 둘러보니 그 넓은 쇼핑몰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나 혼자였다. 당황하며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슬그머니 내 마스크를 풀어 가방에 넣었다. 가뜩이나 폴란드에서 동양인으로 살면서 외형에서 풍기는 이질감이 있는데, 혼자서 더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을 지양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동네에서 나 혼자 마스크를 쓰는 행동에는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다 저 멀리 하얗고 튼튼한 KF마스크로 입과 코를 완벽하게 가린 어떤 행인이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 마스크나 덴탈 마스크를 쓰는 세상에서는 KF마스크가 눈에 확 띄는데, 마스크가 없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멀리서도 '아 저건 한국 마스크다'하는 느낌이 온다.) 아무리 멀리서 봐도, 100미터 달리기를 하다가 봐도 한국 분이었다. 결국 이 땅에서 마스크를 쓸까 말까 고민하는 건 우리들밖에 없구나. 


 물론 내게도 항체는 있다. 아마 있을 것이다. 작년에 델타 변이를, 올해에 오미크론을 앓았고, 두 번의 화이자 백신과 한 번의 노바 벡스 백신을 맞은 종합 항체 세트 경험자다. 이 마당에 마스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상대방도 나도 착용해야 그나마 예방의 효과가 있는 것을 나 혼자만 열심히 입과 코를 가린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나마 맑은 공기라도 누리면서 살아야 덜 억울하지 하는 마음으로, 약 일주일 동안 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하는 과도기를 거쳐 나는 더 이상 마스크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이제는 길을 가다가 마스크를 쓴 사람을 만나면 신기한 마음에, 그리고 동지를 만난 마음에 반가워서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아예 없지는 않다. 다만 그 숫자가 매우 드물 뿐이다. 야외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아보는 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고, 그나마 슈퍼마켓에서는 간혹 한두 명 정도 마스크를 쓴 사람을 발견하기도 한다. 지난달에는 롯데월드와 비슷한 실내놀이공원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는데, 그 넓은 공간에 마스크를 쓴 가족이 우리밖에 없어서 당황하기도 했다. 아니, 어린애들은 백신도 안 맞았을 거 아니에요....


 이미 폴란드의 모든 공립학교에서는 마스크를 더 이상 착용하지 않지만 그나마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국제학교라, 그리고 재학생 중 한국 학생들과 중국 학생들의 수가 많은 편이라 아직 학교 자체적으로 마스크 의무 착용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우리 학교마저도 지난주에는 짧은 방학을 앞두고 'Mask Optional Day'를 만들어 시범적으로 마스크 없는 날을 운영했다. 학교가 서서히 마스크를 없애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그 방향이 옳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래도 지난 한 달 동안 우리 학교에서만 120명의 코로나 환자가 보고되었다. 그러니까 이 못된 바이러스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이 글을 쓰는 내 옆으로 시내버스 한 대가 지나간다. 창문 너머로 건너본 사람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다. 봐도 봐도 신기한 마음이 드는 건, 몸은 폴란드에 있지만 마음은 한국인의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의 버스나 지하철에서 모두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풍경을 보는 건 언제쯤 가능할까 상상해 본다. 아무래도 향후 1년 동안에는 완전한 졸업이 어렵지 않을까. 


 더 이상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면, 그보다 더 홀가분하고 기쁜 세상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찝찝한 마음은 무엇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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