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 김사인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 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얼마 전에 '주정현 교수님, 안녕하세요.'라는 말머리로 시작하는 이메일을 받았다. 내가 제1 저자로 9년 전에 발표했던 학술 논문을 읽고, 해당 연구에서 개발했던 심리검사의 사용 허락을 구하는 이메일이었다. 이 이메일을 읽고 내가 감탄했던 포인트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교수도 박사도 아닌 나를 덮어놓고 교수라고 칭해주는 고마움(혹은 대담함. 저 학력 사칭 안 했어요. 그냥 먼저 그렇게 부르신 거예요...?), 그리고 9년 후에도 여전히 내 논문을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여전히 제 연구 주제는 트렌디한가요...? 제가 업계 현황을 전혀 몰라서... 쩝.)
보통의 업무 메일이 그렇듯 내용 자체는 매우 평이했는데, 내 이름 뒤에 붙은 '교수님'이라는 이 호칭이 이상하고 신기해서 자꾸만 메일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마음 한 구석이 묘하게 꿈틀거렸다. 한때 이름 뒤에 붙길 간절히 희망했던 저 호칭을 마주하자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올라왔다.
스물다섯 살에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같은 연구실에 있던 30대 후반의 박사과정 선생님께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선생님, 저 이 아이가 초등학교 갈 때쯤이면 서른두 살인데요, 그때 다시 공부 시작해도 늦지 않았겠지요?" 선생님은 그 나이에는 공부든 뭐든 뭘 시작해도 다 늦지 않았다면서 살포시 내 어깨를 두드려주셨는데,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초등학생도 엄마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하는 어린애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밑으로 줄줄이 애를 둘이나 더 낳는다는 것을.
이제는 첫아이가 곧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다. 이만큼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여전히 공부에 뜻이 남아있다면 이제는 뭐라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초조한 마음이 최근 들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이제 이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들, 그래서 늦은 나이에 학위를 취득한들, 내게 교직을 내어줄 대학 연구기관은 없어 보이지만, 굳이 교수직은 아니더라도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싶긴 하다. 박사 공부를 시작한다면 깊게 우물을 파 보고 싶은 연구 주제도 있고, 학교라는 배움의 공간도 그립고, 그리고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천성이라 공부하는 직업이 적성에 맞기도 하다. 다만, 지난 10년 동안 나의 대부분을 구성했던 '엄마'라는 정체성에 더해 뭔가 또 다른 이름을 내 옆에 붙인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워서, 그런 일상을 선명하게 그려내기 어려워서 망설이는 중이다. 그리고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엄마로만' 살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전공이 심리학이라, 특히 아동의 발달이나 부모의 양육행동에 대해 연구하던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지라 엄마로서의 경험이 아주 조금은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 지는 않다. 처음에는 육아의 시간을 어느 정도 경력으로 인정해주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었는데, 막상 전문가들은 비전문가로서의 시간을 그렇게 순순히 경력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듯하다. 솔직히 육아하는 동안 감을 잃어버리게 되는 직군도 있다. 그렇지만 심리학이라는 분야는 금융이나 IT 처럼 육아와 전혀 무관한 영역은 아니니 내가 그동안 육아하면서 새롭게 얻게 된 능력, 부모로서 가진 강점, 이런 것들을 좀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건 너무 나의 욕심인 걸까.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든 순간을 마주했을 때마다 먼 훗날 연구자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 이 날의 힘들었던 기억이 나에게 통찰을 주는 경험으로 쓰일 것이라 믿으며 '다 공부지요.'하고 읊조리곤 했었다. 딸들만 키우다가 막내 성별이 아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딸과 아들을 골고루 양육해보면 더 배우게 되는 게 많겠구나 생각하기도 했고, 서로 다른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똑같은 엄마 밑에서 똑같은 육아가 반복될 수 없다는 걸 몸소 체험하며 아이들의 기질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기도 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들고 어렵고 서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양육 스트레스'가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 지도 알았고, 산후 우울증을 호되게 앓으며 호르몬의 노예로 산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도 알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다 공부지요'하고 말하면 조금은 견딜 만해졌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로 살면서 매 순간마다 차곡히 채워졌던 배움의 경험들. 이 모든 것들이 견고해지면, 이것을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공부로 잘 다듬고 가공해서 세상에 내보이고 싶다. 근데 그러려면 방구석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엄마로만 살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넓은 세상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힘들겠지. 정신없고. 여러 마리의 토끼를 정신없이 쫒아다니다가 어떤 날에는 괜히 이 길로 다시 들어섰나 후회하기도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다시 일어서고 의미를 찾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고 나면, 그때도 또 이렇게 읊조리지 않을까.
'다 공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