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밤에서 낮으로 가는 시간.
옆에서 옆으로 도는 시간.
삼십 대를 위한 시간.
수탉의 울음소리를 신호로 가지런히 정돈된 시간.
대지가 우리를 거부하는 시간.
꺼져가는 별들에서 바람이 휘몰아치는 시간.
그리고-우리-뒤에-아무것도-남지 않을 시간.
공허한 시간.
귀머거리의 텅 빈 시간.
다른 모든 시간의 바닥.
새벽 네 시에 기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네 시가 개미들에게 유쾌한 시간이라면
그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자.
자, 다섯 시여 어서 오라.
만일 그때까지 우리가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다면.
I. 얼마 전 첫째가 "엄마, 인생을 스물네 시간이라고 본다면 엄마는 지금 몇 시를 살고 있어?"하고 물어보았다. 내 인생이 앞으로 몇 년이나 남았는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겠지만, 대한민국 여성 평균 수명이 이미 80세를 넘어섰다고 하여 대충 여든 살까지 산다고 치고 계산해보니 오전 10시 30분 언저리를 살고 있었다. 아직 점심도 먹기 전인 이른 오전이라 내심 안도했다. 그 시간이라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급한 집안일을 마친 다음, 친구와 브런치를 먹으러 나가거나 취미생활을 하러 외출하는 시간이다. 본격적으로 내가 원하는 하루를 막 꾸려나가는 시간. 오늘 하루를 어떻게 꾸려갈까 의욕이 넘치는 시간. 아직 하교 시간까지는 넉넉하게 시간이 남아 있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쉼보르스카의 시를 읽고 생각해보니 막상 내게 그 질문을 했던 첫째는 새벽 네 시에 다가서고 있는 아이였다. 어린이의 티를 벗고 독립적으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는 시간이다. 수탉의 울음소리를 신호로 가지런히 정돈된 시간. 다른 모든 시간의 바닥.
II. 새벽 4시에 일어나 이 글을 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몇 시간 뒤 아이들이 일어나면 나의 하루는 온전하게 그들에게 헌상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아이들이 제법 커서 대부분의 시간은 알아서 잘 노는 편인데, 틈틈이 간식도 챙겨줘야 하고, 뒤돌아서면 지저분해져 있는 집도 치워야 하고, 아이들이 싸우면 중재도 해야 하고, 심심하지 않게 적절한 놀잇감을 적당한 타이밍에 투척하면서, 중간중간 공부도 시키고 책도 읽어주어야 한다. 하루가 차암 길다. 세 끼의 식사와 열두 번의 간식(...)을 챙겨주고 나서야 하루가 끝나 있다. 하루 종일 부엌에 서 있다 보면 온 몸이 녹초가 되어 저녁나절에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 의욕도, 할 수 있는 체력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난다. 학기 중에는 오전 10시에 갖는 마음가짐을 방학 중에는 새벽 4시에 갖는다. 내가 원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차곡차곡 채워, 오늘 하루도 알차게 꾸려보려는 정돈된 마음.
가능하다면 핸드폰을 가장 멀리 두고, 커피 한 잔을 내려 책상 앞에 앉는다. 시를 필사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어학공부를 한다. 예전에는 새벽에 일어나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잠이 옅어져서 그런가, 새벽 무렵에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다. 이십 대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래서 새벽 네 시는 삼십 대의 시간인 걸까. 3년 간의 밤중 수유가 나를 단련시켰다.
III. 당신은 시간의 흐름을 '밤낮'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낮밤'으로 생각하는가. 시간은 낮에서 밤으로 흐르기도 하고, 다시 밤에서 낮으로 흐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나는 시간을 '낮밤'이라고 생각해왔다. 밤에서 낮으로 시간이 변하는 걸 관찰하는 일상이 내 하루에는 없었지만, 해 저물녘에는 항상 낮에서 밤으로 변하는 하루를 봤기 때문이다.
밤에서 낮으로 변하는 시간을 보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새벽의 어스름을 사랑한다. 밤에서 낮으로 시간이 변하는 동안, 차가운 공기를 머금은 푸른 새벽이 가져다주는 서늘한 기운을 좋아한다. 그 새벽의 어스름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그만큼 부지런하게 살고 있다고 누군가 증명해주는 것 같아서, 응원을 받는 것 같아서 괜히 뿌듯해지곤 한다.
그러나 여름의 새벽은 밝다. 쉼보르스카는 새벽을 밤에서 낮으로 가는 시간이라고 말했지만, 밤에서 낮으로 시간이 변하는 걸 관찰하는 일상이 여름에는 없다. 이미 새벽 네 시면 어스름이 아니라 창문 틈새로 쨍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나를 반긴다. 그렇다고 해서 해가 저무는 걸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밤 10시는 넘어야 슬그머니 어둑해지는 하늘. 여름의 밤하늘은 깜깜하게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서 여전히 밝고 푸른 기운이 하늘 어디엔가 스며들어 있다. 위도가 높은 폴란드에서 살다 보니 여름에는 낮에서 아침으로, 그리고 다시 아침에서 낮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본다. 새벽 어스름이 그립다.
VI.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다섯 시를 맞이했고, 글을 쓰는 동안 어느새 여섯 시가 가까워졌다. 아이들이 일어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