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 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 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참 애매한 사람이다. 내가 애매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애매한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 글을 쓰는 행위, 나의 글쓰기의 재능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면 참 애매하다. 글을 엄청 못 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대단하게 잘 쓰는 것도 아니다. 꼭 글쓰기 실력이 대단해야만 글을 쓸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지만 이 정도의 애매한 재능을 가지고 글을 쓰기에는 글쓰기의 의미가 참으로 애매해서 내게 글쓰기는 '업'과 '취미' 중 그 어느 영역에도 확고히 자리잡지 못하고 애매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애매하고 애매하다.
이렇듯 애매한 재능을 가진 나는, 나를 닮아 애매한 재능을 가진 아이를 키운다. 아직 꽃봉오리인 아이의 재능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아이를 애매하다고 벌써부터 말해버리니 아이에게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아이의 재능이 무엇인지 엄마인 나조차 아직까지 감을 잡지 못하겠으므로 애매하다고 말할 만하다. 큰 아이의 나이는 어느새 열두 살. 세상엔 무언가를 배우기에 늦은 때란 없으므로 고작 열두 살에 뭔가가 늦고 빠르단 걸 말할 수는 없다. 아직 '무한한 가능성'을 여전히 믿을 수 있는 나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열두 살은 어떤 영역에 재능이 있는가 없는가를 논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반에서 달리기가 제일 느리고 높은 곳을 무서워하며 몸을 쓰는 요령이 없는 아이를 보면서 아, 쟤는 운동부는 아니구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이의 친구 중엔 이미 확고한 진로를 정해 일찌감치 레이스에 들어선 아이들이 있다. 소위 '예체능'을 전공하는 아이들이다. 매일 새벽마다 아이스링크에 나가 피겨스케이팅을 연습하는 친구, 미술학원에 출근도장을 찍으며 데생을 연습하는 아이, 콩쿠르 준비를 하느라 하루에 몇 시간씩 피아노 앞에 앉아 같은 곡을 치고 치고 또 반복해서 치는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엄마들을 본다. 연습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살살 달래 가며 결정적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을 동동거리는 엄마들. 필요충분조건에 도달하는 연습량과 레슨 횟수에 경제적, 시간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 마음들. 아이의 '승부욕', '투지', '성취감' 이런 마음에 화르륵 불을 지피고자 더 뜨겁고 큰 불을 피워내는 그녀들을 본다.
일전에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아이가 만약 김연아인데, 내가 아이를 아이스링크장에 데리고 가지 않은 거야. 그럼 난 어떡해. 사실은 이 아이 속에는 어마 무시하게 반짝이는 재능이 있는데 무지한 내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고 있는 걸까 봐 두려워."
그러자 지인은 이렇게 답해주었다. "김연아는 어떤 엄마가 키우든 김연아로 자랐을 거야.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을 하지 않았어도 성공했겠지. 강호동이 씨름판을 떠나도, 서장훈이 농구코트를 떠나도 여전히 성공한 것처럼 말이야. 아이는 어느 엄마 아래에서든 자기 몫을 해내며 자기답게 클 거야."
균형점을 찾느라 비틀거리는 내게 이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엄마의 역할마저 참 애매하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해야 하는데, 엄마의 역할로부터 도망치지 말아야 하는데 도대체 이 치열하고 혹독한 세상에서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어디까지가 엄마의 역할이고, 어디까지가 아이의 몫인지, 아직 미숙한 아이를 보면서 얼마나 어떻게 이끌어줘야 하는지 그 적절한 경계와 균형에 대한 고민은 점점 깊어진다.
그럴 때 시를 읽으며 마음을 달랜다.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더 열심히 파고 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해야지. 나는 계속 비틀거리며 아이를 키우겠지만 그 본질 속에 사랑이 있다면 결국 필요한 것은 필요한 만큼 주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