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정말 좋은 엄마야

by 주정현


박준


오늘은 지고 없는 찔레에 대해 쓰는 것보다 멀리 있는 그 숲에 대해 쓰는 편이 더 좋을 것입니다 고요 대신 말의 소란함으로 적막을 넓혀가고 있다는 그 숲 말입니다 우리가 오래전 나눈 말들은 버려지지 않고 지금도 그 숲의 깊은 곳으로 허정허정 걸어 들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쯤에는 그해 여름의 말들이 막 도착했을 것이고요 셋이 함께 장마를 보며 저는 비가 내리는 것이라 했고 그는 비가 날고 있는 것이라 했고 당신은 다만 슬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숲에 대해 쓸 것이므로 슬픔에 대해서는 쓰지 않을 것입니다 머지않아 겨울이 오면 그 숲에 ‘아침의 병듦이 낯설지 않다' ‘아이들은 손이 자주 베인다'라는 말도 도착할 것입니다 그 말들은 서로의 머리를 털어줄 것입니다 그러다 겨울의 답서처럼 다시 봄이 오고 ‘밥'이나 ‘우리'나 ‘엄마' 같은 몇 개의 다정한 말들이 숲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 먼 발길에 별과 몇 개의 바람이 섞여 들었을 것이나 여전히 그 숲에는 아무도 없으므로 아무도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엄마는 정말 좋은 엄마야."

5살 아들이 이렇게 말하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 순간 아이의 함박웃음이 너무 예뻐서 왠지 울컥, 마음이 시렸다. 볼살이 통통한 아들의 표정도, 예쁜 말도, 우리의 눈 맞춤도 모두 다 소중했는데 이 감사한 순간이 곧 사라져 버릴까 봐 아까워하며 기억 속에 꼭꼭 저장했다.


아들이 나를 '좋은 엄마'라고 극찬해줬을 때, 우리는 아들의 팬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목욕을 마치고 옷장에서 팬티를 꺼내 입는데, 마침 그날 꺼내 든 속옷이 아들이 좋아하는 포크레인 무늬의 팬티였다. 아들은 엄마가 처음 이 팬티를 사 왔을 때 자신이 이 팬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그때 멋진 중장비차가 그려진 팬티를 갖고 싶었는데 엄마가 마침 속옷가게에서 딱 자신이 그리던 팬티를 사 와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고. 포크레인 팬티 옆에는 티라노사우르스 팬티가 있었다. 그의 관심사가 자동차에서 공룡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갈 때 엄마는 또 바람같이 공룡 팬티를 구해왔고, 아들은 티라노사우르스와 스테고사우르스와 트리케라톱스가 사이좋게 그려진 팬티를 입을 수 있었다. 갑자기 자신의 팬티 컬렉션을 바라보다가 지극히 흐뭇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걸까.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는 정말 좋은 엄마야."

아들은 과연 몇 살 때까지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내게 칭찬을 해줄까. 그리고 나는 언제까지 팬티 무늬처럼 사소한 것들로 순수한 감사 인사를 받을 수 있을까. 아이들이 자랄수록 나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주지 못해 아쉬워하고 후회하고, 아이들과 함께했던 매일을 돌이켜보면 미안한 일이 너무 많고 잘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날도 조금 그랬다. 외부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자잘한 일들이 있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하루였는데, 괜히 그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숨기지 않고 엄마가 얼마나 일에 치이고 시간에 쫓기는지 생색을 내며 집안 분위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엄마는 정말 좋은 엄마야."

그래서 아들이 그 사소한 일로 이렇게 크게 칭찬해주었을 때, 그리고 아들 눈에 담긴 지극히 순수하고 행복한 고마운 감정을 마주했을 때, 나는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했다. 이렇게 못난 엄마한테 과분한 칭찬을 해 주는 아이의 마음이 고마워서. 그리고 언젠가는 이런 칭찬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이랑 밤에 잠들기 전 침대에서 나누는 대화가 그냥 허공으로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어느 날 문득 너무 그리워질 것 같아서 녹음기를 켜 두고 잠든 날이 있었어요. 생각보다 그 그리움의 날은 빨리 오더군요. 우리의 대화가 어느 숲으로 허정허정 들어가 그곳에 머물러 있다면, 어느새 11살이 되어버린 큰 딸의 세 살 적 목소리는 마치 참새 소리 같을 거예요. 엄마,라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그 목소리가 그리워지다가 문득 내가 어린 시절 엄마를 부르던 목소리도 함께 머물러 있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다정한 말들이 도착해 있는 그 숲을 소중한 사람이랑 함께 걷고 싶어요.


작년 2월에 박준 시인의 <숲>을 읽고 내가 담긴 단상은 위와 같았다. 우리가 오래전 나눈 말들이 도착하는 숲. 고요 대신 말의 소란함으로 적막을 넓혀가는 숲. 사춘기 아들의 침묵이 아닌 다섯 살 아들의 조잘거림이 가득할 숲. 오늘 들은 아들의 예쁜 말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하려 애쓰겠지만 아들이 더 이상 그런 칭찬을 해주지 않을 무렵 내 기억 속에서 오늘의 대화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변성기가 지난 아들의 걸걸한 목소리를 들으면 다섯 살이었던 아들의 참새 같은 목소리를 떠올릴 수 없을 테고, 수염이 거뭇하게 자란 아들의 두툼한 턱선을 보면 다섯 살 그맘때의 통통한 볼 라인을 기억할 수 없겠지. 그때쯤 숲에는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허정허정 들어가 자리를 잡았을까. 포크레인 팬티와 티라노사우르스 팬티를 척척 사주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는 먼 훗날 그 숲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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