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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Aug 24. 2022

인절미와 개떡과 호랑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친정엄마가 한국에서 택배로 찹쌀가루(와 기타 등등 많은 것들)를 보내주셨다. 이 택배를 받는 데 무려 7개월이나 걸렸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폴란드까지 선편으로 택배를 보내면 약 4개월 정도 소요되었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그 기간이 훌쩍 늘어나 여름에 보낸 택배를 겨울이 다 지나서야 겨우 받을 수 있었다. 8월에 보낸 택배를 그다음 해 3월이 되어서야 받았는데 다행히 찹쌀가루의 유통기한은 올해 9월까지로 넉넉히 남아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다.


 찹쌀가루를 보내달라고 친정엄마께 부탁드렸던 이유는 아이들과 '떡'을 해 먹고 싶어서였다. 떡돌이, 떡순이 삼 남매는 떡을 정말 좋아한다. 한국에 갈 때마다 부지런히 동네 떡집에서 떡을 사다 먹었고, 귀국날 아침에는 그날 새벽에 갓 만든 떡을 배달 주문해 박스채 기내 수화물로 실어오곤 했었다. 폴란드 집에 오자마자 그 떡은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간식시간마다 꺼내먹었는데, 아껴먹는다고 하나씩 야금야금 먹는데도 금세 다 동이 나버리곤 했다. 그나마 요즘에는 한국 슈퍼마켓에서 파는 냉동떡의 가짓수가 조금 늘어나 냉동 송편, 두텁떡, 절편, 인절미 등을 구해먹을 수 있는데, 인절미 한 박스 가격이 234 즈워티(한화 약 6만 5천 원)로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냉동떡이라 아무래도 갓 만든 떡만큼 맛있지도 않고 가격도 비싸니 직접 해 먹어 보기로 했다. 인절미는 찹쌀가루만 있으면 특별한 찜기가 필요하지 않고 가장 간단하고 손쉽게 해 먹을 수 있는 떡 요리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5분 만에 집에서 전자레인지로 해 먹을 수 있는 인절미' 레시피가 나온다. 베이킹처럼 엄격하게 계량을 할 필요도 없고, 오븐을 예열할 필요도 없다. 찹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슥슥 개어다가(전문용어로 익반죽이라고 부른다) 설탕, 소금 넣어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금세 쫄깃쫄깃한 떡이 완성된다. 마침 엄마의 택배 상자에는 볶은 콩가루도 들어 있었다.


 아이들과 유튜브에서 '전자레인지 인절미 만드는 법'을 검색해서 함께 보았다. 친절히 레시피를 설명해주던 유튜버가 막바지에 떡을 콩고물에 버무리며 이렇게 말한다. "모양은 개떡 같지만 맛은 꿀떡 같습니다." 이 말에 아이들이 '개떡'이 뭐냐고 묻는다.


"개가 먹는 떡 아닐까?"

"개처럼 생긴 떡이겠지."

"설마 개로 만든 떡은 아닐 테고."


 이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 웃는 아이들에게 여기서 '개'는 멍멍 강아지가 아니고 형편없거나 모양이 엉망인 것을 이르는 접두어 '개-'라고 알려주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고 말할 때의 그 개떡이다. 실제로 개떡이라고 부르는 떡이 있기도 하다. 구글에 '개떡'을 검색하면 생각보다 더 빛깔이 곱고 동글납작한 예쁜 쑥떡이나 모싯잎떡이 나온다. 이렇게 예쁜데 왜 개떡이라고 부를까. 개떡은 가난한 보릿고개 시절 구할 수 있는 모든 곡물가루를 모아 들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쑥과 같은 나물과 함께 반죽해서 찐 떡을 말한다. 보릿고개가 심했을 때는 나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곡물은 정말 찰기만 살짝 가미해 줄 정도로 적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대충 구할 수 있는 곡물가루를 모아 만든 것이라 둥글넓적한 형태 말고는 제대로 모양을 잡을 수가 없어 개떡은 그야말로 개떡 같은 형태가 되었다고 하지만, 요즘 시중에 판매하는 개떡은 제대로 된 재료로 예쁘게 모양을 잡아 만들기 때문에 실제로는 쑥절편과 비슷하게 예쁘다. 정말 개떡같이 엉망진창 흐트러진 건 오히려 내가 만든 인절미였다.


개떡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예쁜 개떡(좌)과 구글이미지 검색했더니 진짜 개같이 생긴 떡이 나와서 당황했던 개떡(우)


 집에 있는 전래동화 그림책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이혜리 그림, 이주혜 글, 웅진다책)>에는 다른 떡도 아니고 개떡을 달라고 하는 호랑이가 나온다. 우리 집에는 <해님달님>, 혹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책이 여러 버전의 다른 그림책으로 네댓 권 정도 있는데, 웅진 호롱불 옛이야기에서 출판한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개떡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이야기한다. 수십수백 번 반복해서 읽어줬던 익숙한 대사에 '개-'라는 접두어 하나 붙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늘 반복하던 대사의 리듬과 살짝 맞지 않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그 어색한 지점에서 엇, 하고 아이들은 수십수백 번 반복해서 들었던 지겨운 이야기에 다시 관심을 보인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혜리 그림, 이주혜 글. 웅진다책 호롱불 옛이야기


 원래 원작대로라면(전래동화에 과연 원작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의심스럽지만은) 이야기 속의 엄마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고 말하는 호랑이에게 한 고개에 떡 하나씩 던져주며 총총 집으로 발길을 향해야 한다. 그런데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겁먹은 엄마는 첫판에 가지고 있는 개떡을 몽땅 다 줘버리고 만다. 아이코, 하는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다음 고개에서 호랑이는 "어흥! 저고리 주면 안 잡아먹지!"하고, 그다음 고개에서는 "어흥! 치마 주면 안 잡아먹지!" 하며 예상치 못한 전개로 엄마를 야금야금 벗겨 버린다. 마지막 고개에 이르러 호랑이는 엄마처럼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고운(?) 자태로 한입에 꿀꺽 엄마를 삼켜버린다. 아, 호랑이는 도망칠 틈도 주지 않고 엄마를 꿀꺽 삼켜버려야 했고, 이후에 엄마로 분장해서 오누이네 집으로 가려면 그녀의 옷이 필요했으니... 어쩌면 먼저 옷을 얻은 후에 잡아먹는 이 새로운 해석이 논리적으로 더 들어맞을지도 모르겠다.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던 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는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자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결국 동화 속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을 붙들고 하늘의 심판을 받아 수수밭에 떨어져 죽었지만, 나는 어쩐지 이 이야기가 전혀 해피엔딩으로 읽히지 않았다. 엄마 얼른 다녀올게, 하고 아이들만 집에 두고 바쁘고 힘들게 산을 넘어 옆 마을에 다녀왔는데, 오누이의 엄마는 결국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순간 엄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아이들이 보고 싶었을까. 얼마나 아이들이 걱정됐을까. 집에 아이들만 두고 외출할 때면 아주 가까운 편의점에 다녀올 때도 마음이 콩닥콩닥 하는데, 이 아이들을 두고 산을 넘어 다른 마을에 가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얼마나 불안했을까.


 큰 아이가 세 살 때쯤, 친정엄마가 이 <해님달님>를 사운드북으로 사다주신 적이 있었다. 어흐응~ 하는 진짜 동물원 호랑이의 울음을 그대로 녹음해 놓은 생생한 사운드에 아이는 무섭다고 엉엉 울었고, 한동안 그 책은 금지도서가 되어 책장에서 나오지 못했다. 나는 호랑이 울음소리가 무섭다고 우는 아이를 달래다가, 그래그래 괜찮아하고 아이 등을 어루만지며 또다시 오누이 엄마에게 심하게 감정이입을 해버려 살짝 울었다. 그 뒤로도 매번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순간 어린 두 남매를 두고 눈도 제대로 못 감을 엄마의 한스러운 마음을 떠올리게 되었지만 <해님달님>을 읽다가 울었다고는 차마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겠어서 이날 이때까지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던 눈물이다. 아이들 전래동화에 이렇게 슬프고 절절한 죽음의 순간이 등장한다고 생각하면 살짝 마음이 이상하고, 여전히 이 장면만 생각하면 조금 슬프다.


 그런데 왜 호랑이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했을까. 어차피 육식 동물이라 떡을 먹을 수도 없었을 텐데. 먹지도 못할 걸 달라고 하는 과한 탐욕일까, 아니면 호랑이는 정말 떡을 좋아하는 걸까. 만약에 약속한 대로 떡만 먹고 엄마를 살려서 고이 집으로 보내준 착한 호랑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한때 이런 상상을 하며 잠자리에서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는 아이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옛날 옛날에, 어느 오누이의 엄마가 잔칫집에 가서 일을 해주고 떡을 받아서 집으로 가던 길이었어. 산을 넘고 있는데 호랑이가 나타났지. '어흥,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호랑이가 이렇게 말하자 엄마는 떡을 주었어. 그러자 약속대로 호랑이는 엄마를 잡아먹지 않았어. 그래서 엄마는 무사히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 오누이와 남은 떡을 맛있게 나눠 먹었대."


 이런 상상 속 호랑이는 <떡 호랑이 떡 먹던 시절에(글 오은실, 그림 문구선, 아람)>에 등장하는 떡호, 떡랑, 떡삼이 삼 형제를 보면 만날 수 있다. 떡이 목적이지 사람 고기가 목적이 아닌 떡 호랑이들. 희한하게 사람보다 떡을 더 좋아하는 떡 호랑이들. 그리고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호랑이로부터 오히려 용감하게 사람을 지켜주는 착한 호랑이들. 나를 슬프게 하지 않는 귀여운 호랑이들이 이 그림책 속에는 있다.


떡 호랑이 떡 먹던 시절에? 글 오은실, 그림 문구선, 아람출판사 꼬꼬마수학자


 커다란 인절미 반죽을 슥슥 나누며 아이들과 떡 호랑이 이야기를 했다. 우리도 떡 반죽을 셋이서 다 같이 나눠먹을 수 있게 3의 배수로 나누자(이 그림책은 수학적 지식을 알려주는 책이다). 떡 호랑이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들이 저 멀리 거실에서부터 날카로운 발톱, 아니 손톱을 세우며 슬금슬금 다가온다.


"어흥,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귀여운 아기호랑이들 입에 인절미 한 조각씩 쓱쓱 넣어주고 나니 고분고분해져서 다시 거실로 돌아간다. 정말 약속을 잘 지켜서 나를 잡아먹지 않는 착한 아기호랑이들이다. 아이들 목이 메이지 않게 작게 조각낸 인절미라 금방 꿀떡 삼켜버리고선 다시 부엌으로 오겠지만. 아이들과 떡을 나눠 먹으며 떡 달라는 여러 호랑이 이야기들을 읽었다. 그림책 위에는 콩고물이 먼지처럼 뽀얗게 쌓였고, 야금야금 떡을 먹는 아기 호랑이들에게서는 고소한 냄새가 났다. 개떡같이 생긴 인절미를 꿀떡꿀떡 참 잘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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