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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Sep 01. 2022

만두 할머니와 피에로기


 9월을 하루 앞두고 날이 부쩍 쌀쌀해졌다. 여름에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울 찜기의 열기가 두려워서 차마 요리하지 못했던 '만두'를 해먹을 계절이 왔다. 냉동실에서 시판 '찹쌀 만두피'를 꺼내 해동하고, 슈퍼마켓에 가서 다진 고기와 쪽파를 잔뜩 사 왔다. 이날을 위해 냉동실에 송송 썰어 쟁여두었던 부추도 꺼내본다. 오늘 해 먹을 요리는 외할머니표 '부추만두'다.


 한국 슈퍼마켓에서는 눈에 치이고 밟히는 게 부추지만, 이곳 폴란드 시장에서는 부추를 찾아보기 어렵다. 'szczypiorek(슈츼피오렉)'이라고 부르는 부추와 비슷하게 생긴 채소를 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막상 부추의 풋풋한 향내가 나지 않는다. 냄새를 맡아보면 파 냄새가 나는데 맛이나 식감이 부추보다는 실파에 가깝다. 실제로는 부추 속에 속하는 아주 작은 양파의 잎채소인 '골파'이다. 부추처럼 이파리가 납작하지 않고 속이 빨대처럼 텅 비어있으나 지름은 볼펜심보다도 가늘다. 이러나저러나 부추는 아니다.


 바르샤바에서 부추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개인적으로 텃밭을 일구시는 한국식당 사장님께 구매하는 것이고(여름 한정), 또 하나는 직접 마당이나 화분에 심어 키워먹는 것이다. 올해 봄에는 마당 텃밭에서 부추를 조금 수확해서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부추는 파종한 첫 해에는 잔디인형 머리처럼 숭숭 잘 자라긴 하지만 굵기가 너무 가늘어 요리에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부추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라 뿌리가 얼지 않게 흙을 잘 덮어주고 겨울을 나면, 그다음 해 여름에는 시장에 파는 부추처럼 굵은 부추가 자란다지만... 한국보다 두 배는 긴 폴란드의 혹독한 겨울 날씨 속에서 그간 한 번도 겨울나기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굵은 부추는 우리 집 텃밭에서 전설의 식물 같은 존재였다.


 올봄, 새로 파종하지도 않았는데 텃밭에서 부추들이 송송 자라나는 것을 보고 '오옷, 드디어!' 부추 겨울나기에 성공했나 싶었는데... 딱 한번 수확을 하고 나니 그다음 주에 정원사 아저씨가 잔디밭에서 자라는 잡초라고 생각하고서 다 뽑아버렸다. 굵은 부추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집 텃밭의 '전설의 식물'로 남을 듯하다.


언젠가 꽃 피울 때까지 부추를 키워보는 게 제 소원입니다...

 

 올해 봄에 수확했던 그 적은 양의 부추와, 부추를 닮았지만 부추는 아닌 골파와, 그리고 골파 친구 쪽파를 송송 썰어 외할머니표 부추만두를 만든다. 부추가 가득 들어가고 그 외에 쪽파, 다진 고기, 감칠맛을 더해줄 약간의 양념이 들어가는 만두. 시판 만두 중엔 이와 비슷한 맛을 내는 만두를 찾을 수가 없어서 나는 이걸 '외할머니 만두'라고 부른다. 외할머니 댁에 가면 언제나 외할머니는 식탁 가득 수백 개의 만두를 담아주셨고(수십 개의 오타 아니고 수백 개가 맞습니다. 어쩌면 수천 개였을지도요...)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늘 항상 만두가 있었다. 외할머니 집의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만두를 찌는 후끈한 열기와 밀가루가 익어가는 풋풋한 냄새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 만두의 냄새는 할머니 집에 배어 있는 여러 가지 음식의 냄새(메주 냄새, 고추 말리는 냄새, 장아찌 간장 냄새 등등)와 어우러져 외할머니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냄새를 만들어내곤 했었다.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외'할머니나 '친'할머니 따위의 어려운 단어를 잘 모를 만큼 어렸을 때, 나는 외할머니를 '만두 할머니'라고 불렀다. 할머니 집에 가면 항상 먹는 음식은 만두였고, 집에 가는 길에는 한가득 만두를 싸 주셨으며, 집에 와서 싸주신 만두를 먹을 때마다 할머니 생각을 했다. 할머니에게 폭 안길 때마다 할머니 앞치마에서 폴폴 나던 만두 냄새는 그야말로 만두 할머니의 시그니처 향기였다. 내가 외할머니를 만두 할머니라고 부르면 친척들은 어렵지 않게 내가 누구를 말하는지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고, 바깥 외(外) 자를 외가댁 식구들을 부를 때 앞에 붙인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나는 외할머니를 만두 할머니라고 불렀다. 출가외인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이 남녀차별적인 호칭보다 나는 만두 할머니라는 호칭이 여전히 더 정겹고 좋다.


 '만두 할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함께 떠올리게 되는 그림책 세계의 할머니가 있으니 바로 채인선 작가의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 나오는 만두 빚는 할머니다. 심지어 이억배 작가의 삽화 속 할머니는 우리 외할머니와 꽤 닮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무엇이든지 하기만 하면 엄청 많이 엄청 크게 하는 할머니"는 수백 개의 만두를 뚝딱 빚어내던 우리 외할머니를 수식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줄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 집 만두 할머니를 떠올리곤 다. 오늘은 외할머니 만두라고 불리는 부추 만두를 만드는 날이니 오랜만에 이 책을 꺼내서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았다.


 아주아주 손이 큰 할머니는 설날을 앞두고 아주아주 많은 양의 만두를 빚을 준비를 한다. 혼자 사는 할머니는 온 동네 산속 모든 동물들을 배불리 먹일 만큼 어마 무시한 양의 만두를 만들 계획을 짠다. 할머니의 손이 커봤자 얼마나 크겠어 하지만, 그림책을 읽다 보면 이 할머니의 스케일이 여간 어마무시한 게 아니다. 손 큰 할머니는 헛간 지붕으로 쓰는 함지박을 끌어와 거기에 만두소를 버무리고, 문지방을 넘어, 마당을 넘어, 산 너머까지 닿을 정도로 많은 반죽을 만든다. 숲 속 동물들은 만두 빚기 노동에 강제 동원(?)되어 삼삼오오 만두를 빚게 되는데,  저 많은 만두소를 언제 다 빚냐며 투덜투덜 대는 동물들을 살살 꼬드겨 사흘 밤낮으로 만두를 빚게 하는 할머니는 손만 큰 게 아니라 놀라운 리더십마저 가지고 있다.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글 채인선, 그림 이억배, 재미마루 출판


 숲 속 동물들 삼삼오오 모여 만두를 빚는 그림책 속 장면은 어딘지 모르게 내 어린 시절의 풍경을 닮았다. 명절날 외할머니 집에 가면 이모랑 외할머니, 외숙모 모두 다 같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고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나눠주는 앞치마를 두르고 자연스럽게 만두소가 가득 담겨 있는 대야 옆에 앉아 자리를 잡았고, 그런 엄마를 따라 왠지 나도 숟가락 하나 들고 손을 보태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어른들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한쪽 구석에 앉았다. 어른들은 참 쉽게 속을 가득가득 채우며 그 얇은 만두피로 동그랗게 뭉친 만두소를 사르륵 감싸줬는데, 손 끝이 야무지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게 잘 안돼서 만두소를 헐렁하게 채우거나 혹은 아직 찌지도 않은 만두를 터뜨리고는 했다. 내가 빚은 만두는 어른들이 빚은 만두와 비교하니 확연하게 흐물흐물하고 납작했다. 굳이 구역을 나누지 않았어도 내가 빚은 만두는 어른들이 빚은 만두와는 만듦새가 달라 확연하게 구별이 되었지만, 할머니는 찜솥에 만두를 넣을 때 내가 빚은 만두를 내가 직접 먹을 수 있게 꼭 한쪽 구석에다가 구분해서 넣어주셨다. 나는 그렇게 내 만두를 특별 대접해 주는 할머니가 좋았다. 내가 직접 만든 만두가 제일 맛있지는 않았지만, 내가 직접 만든 걸 먹는 게 제일 기뻤으니까.


 우리 아이들도 어린 시절의 나처럼 내가 직접 만든 만두를 그 어떤 다른 만두보다 좋아한다. 폴란드에 온 이후로 종종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직접 만두를 만들어 먹는다. 만두 재료는 주변에서 구하기도 쉽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인 데다가, 내가 원하는 만큼 신선한 채소와 고기를 듬뿍 넣어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싫어하는 숙주나물이나 버섯, 당근이나 양파 같은 채소도 만두 속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거부하지 않고 잘 먹는다. 만두소에 엄마가 자기들이 싫어하는 채소를 이렇게나 많이 넣은 걸 알면 배신감을 느낄 텐데. 순진한 아이들은 엄마가 만두소에 어떤 채소를 넣었는지도 모른 채, 커다란 양푼에 가득 담겨있는 만두 재료를 의심 없이 숟가락 한가득 퍼올려 조물조물 만두를 빚는다.


 이 나라에서 그나마 만두 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이유는 만두가 폴란드의 전통 음식이기 때문이다. 만두를 폴란드어로는 pierogi(피에로기)라고 부른다. 만두피를 만들 밀가루를 구하기 위해 슈퍼마켓에 가고자 한다면 박력분, 중력분, 강력분 등 어려운 밀가루 전문 용어를 몰라도 된다. '만두 반죽용(ciasto na pierogi)'이라고 커다랗게 만두 그림이 그려진 밀가루 봉지를 어김없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 피에로기는 만두소에 따라 가짓수가 수십 가지에 이르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기만두(pierogi z mięsem) 말고도 과일과 치즈를 만두소로 넣어 만든 피에로기(pierogi ruskie), 으깬 감자를 넣은 피에로기(pierogi z ziemniakami), 과일잼을 넣은 피에로기(pierogi z dżemem) 등등 상상을 초월하는 만두소로 만든 온갖 피에로기들이 있다. 고기만두는 그래도 동네에서 몇 번 사 먹어 보았는데, 치즈 만두와 과일 만두는 한국인 입맛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맛이라 뷔페에서 살짝 맛만 한번 보고 바로 포기했다.


왼쪽 상단부터 치즈만두, 감자만두, 체리잼만두, 딸기만두... 뭐든 만두소가 될 수 있으니 그럴 만두 하다.


 우리 식성으로는 만두피가 얇고 속이 꽉 차 있어야 맛있는 만두인데, 피에로기의 만두피는 한국 만두보다는 조금 더 두툼하고 쫄깃하다. 식감은 오히려 이탈리아 만두인 뇨끼와 비슷하다. 그래도 뇨끼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는데, 피에로기는 쪄먹거나 삶아먹기도 하지만 한국 군만두 스타일로 기름에 노릇노릇 구워 먹기도 한다는 것이다. 폴란드에서는 피에로기를 파는 만두 전문식당을 피에로가르니아(pierogarnia)라고 부르는데, 사람들이 좀 모여 산다 싶은 동네에는 어김없이 피에로가르니아가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피에로기를 즐겨 먹으며 피에로가르니아는 보편적인 서민 식당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피에로가르니아 만두


  폴란드 북부의 항구도시 그단스크에는 '만두'라는 이름의 피에로가르니아가 있다. 앞서 폴란드의 피에로기는 한국식 만두와 많이 다르다고 이야기했는데, 이 피에로가르니아에서 파는 피에로기는 분명 만두피가 두툼한 폴란드식 피에로기인데도 맛은 한국의 만두를 닮았다. 심지어 메뉴 중엔 김치만두도 있다. 내가 폴란드에서 가 봤던 피에로가르니아 중에 내 입맛에 가장 잘 맞았고(사실 다른 식당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맛있었다) 내 입맛이 다른 사람들의 입맛과 크게 다르지 않은지 이 가게는 최근에 3호점까지 분점을 낼 정도로 연일 성업 중이다. 몇 년 전에는 전국 피에로기 음식 경연 콘테스트에서 1위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늘 저녁에는 폴란드 최고의 피에로가르니아도 부럽지 않다. 아이들이 직접 빚은 우리 집 손만두가 찜기에서 모락모락 익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집에서 직접 빚어서 갓 쪄먹는 만두는 그 어느 집의 만두보다도 맛있다. 게다가 내가 직접 만든 만두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법이니까 아이들에게 최고의 만두를 먹여주고 싶은 마음에 번거로워도 다 같이 모여서 함께 만들었다. 사실 아이들 없이 나 혼자서 후다닥 만두를 빚는 게 시간도 더 적게 걸리고 설거지 감도 더 적게 나오지만, 아이들 고사리손이 모두 모여 조물조물 만두를 만들 때마다 지난겨울보다, 봄보다 조금은 더 야물어진 솜씨에 깜짝 놀라서 조금은 흐뭇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느새 엄마만큼이나 손끝이 야물어진 큰딸이 빚은 만두는 내가 빚은 만두와 거의 흡사해서 어느 게 누구 만두인지 모를 정도이고 이제 겨우 여섯 살인 막내아들이 빚은 만두는 내가 슬쩍 열어서 만두소를 더 채워가며 A/S를 해준다. 이렇게 빚어도 저렇게 빚어도 어떻게 빚어도 만두는 늘 맛있다. 내가 만든 게 최고로 맛있으니까.


만두맛의 8할은 역시 손맛


"누나 누나, 이 만두 내 거 맞아?"

"아, 이 만두가 네 거야. 난 알아. 그리고 이건 내가 만든 거야."

"으음, 내가 만들어서 더 맛있어!"


 만두 실명제라도 도입해야 하나. 자기가 만든 만두에 이름이 쓰여있는 것도 아니니 찜기에 한 번 들어가고 나면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만두일 텐데, 각자 자기가 만든 만두를 알아보고자 애쓰는 아이들의 분투가 귀여웠다. 그러나 처음엔 자기가 만든 만두만 먹으려고 고집하던 아이들이, 접시 위의 만두가 슬슬 바닥을 보이자 내가 만든 만두였든 남이 만든 만두였든 상관없이 죄다 자기 입에 먼저 넣으려고 젓가락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갓 찜기에서 나온 만두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아이들 입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연신 김을 내뿜는 찜기에서 다음 판의 만두가 나올 때까지 아이들은 쩝쩝 입맛을 다신다. 손 큰 할머니의 만두가 아니고 손 작은 엄마의 만두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이다. 아이들 먹는 속도를 만드는 속도가 따라가질 못한다. 손 큰 할머니처럼 수백 개의 만두를 뚝딱 선보이고 싶은데 나는 언제쯤 그런 내공을 갖추게 되려나. 아들, 딸, 사위, 며느리부터 줄줄이 몰려오는 손주들 다 먹일 만두를 만들고도 남아, 몇 날 며칠 만두만 먹어도 될 만큼 한 보따리 가득 만두를 싸 주시던 만두 할머니가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우리 집에서는 외할머니 집에서 맡던 그리운 냄새가 난다. 부엌에서, 식탁에서, 그리고 만두를 만들던 내 몸에서 할머니 냄새가 난다. 할머니 품에서 맡던 만두 냄새를 맡으니 오늘따라 유난히 더 할머니가 보고 싶네. 이제는 건강이 많이 쇠약해지셔서 옛날처럼 많은 양의 만두를 만들 수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넷째 손주는 여전히 '만두 할머니' 집에서 '외할머니 만두'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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