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각자의 방에서 매일 시를 읽는다면

by 주정현


시를 쓰는 사람은 문장을 믿는 사람입니다. 지우면 사라지고 마는 문장을. 시작하면 순식간에 달려 나가는 문장을. 넘어지는 문장, 피가 나는 문장, 괴물처럼 뭉개지는 문장을요. 시를 쓰는 사람은 문장에 진실을 올려두고 아슬아슬 서있는 그것을, 바라보려는 사람입니다. 문장은 사진이나 영상이 담을 수 없는 것을 단 몇 줄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천년의 시간, 우주의 아득한 에너지, 평생에 걸쳐 얻어낸 누군가의 깨달음을 종이 한 장에 담아낼 수 있습니다. 혼자 고요히, 종이와 연필이 있다면요.

박연준 저, <쓰는 기분>


시 필사 공동체를 운영한 지 어느새 1년 반이 지났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시를 필사하는 일이 하루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새벽 다섯 시에서 여섯 시 사이에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1층 부엌으로 내려와 에스프레소 머신을 켠다. 커피 기계가 예열을 하는 사이에 책장에서 볼펜과 필사 노트를 꺼내고, 갓 내린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노트를 펼친다. 한국시간으로 매일 자정에, 유럽 시간으로는 전날 오후 다섯 시에 그날 필사할 시가 배달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은 무슨 시를 필사할까 뒤적거리며 고민하는 시간이 없이 바로 문장으로 빠져들 수 있어서 좋다. 그날의 시를 깨끗한 노트에 한 자 한 자 옮겨적고, 필사를 마치면 단체 채팅방에 올릴 인증샷을 위해 사진을 찍는다.


9월에 필사했던 시 몇 편.


필사 모임의 한 가지 규칙은 시를 필사한 후에 '시에 대한 단상'을 적어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시를 노트에 옮겨 적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모임에 참여했다가 단상을 써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해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에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 있고 익숙한 분들도 있지만(멤버 중에 출간 작가가 여섯 분 정도 있다. 브런치 작가의 숫자는 그보다 조금 더 많다.), 짧은 글이라 해도 내 글을, 내 문장을 적는 일에 부담을 가지는 분들도 있다. 필사는 마쳤지만 단상을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마감 시간 내에 필사 사진을 올리지 못하는 분들도 있어서 사실 이놈의 단상 쓰기가 전체 참여율을 낮추는 원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필사 사진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단상을 꼭 함께 올려주십사 부탁드리는 이유는 단상을 통해 서로가 각자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시를 읽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시어 앞에서 잠시 멈추었는지, 어떤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었는지, 시인의 생각에 적극 동의했는지 혹은 반발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문장의 힌트도,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통찰도, 시를 읽으며 함께 보태어 쓴 몇 줄의 문장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각자가 살아온 삶과 축적된 경험의 모양에 따라 같은 시를 조금씩 다르게 읽게 되는데, 그 비슷하면서도 다른 생각의 결을 마주하는 게 참 좋다.


올해 초에 박연준 시인의 <쓰는 기분>을 읽었다. 시인은 이 책의 첫 장인 '우리가 각자의 방에서 매일 시를 쓴다면*'에서 매일 시를 쓰는 일을 매일 복근 운동을 하는 일에 비유해서 말한다. 매일 빼먹지 않고 복근 운동을 해서 코어의 힘을 기르면 몸이 단단해지면서 내가 에너지를 품고 서 있다는 감각이 생긴다. 스스로 몸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 그런 신체의 코어의 힘과 같이 매일 시를 쓰는 사람은 강인한 내면의 코어를 품게 되는데, 이 코어의 효용에 대해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를 매일 쓰면, 내면의 코어가 강해져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겨도 그것을 시의 세계로 데려와 해부하고 언어와 상상을 버무려 문자로 바꿔놓으면, 잠시 동안 세상이 종이 한 장만큼 작아지는 기분이 들지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곳에서 아름답게 비틀린 사건들. 불행들. 아픔들. 그것들이 내 두 팔 아래에서 사그라들고, 다른 모양으로 숨을 쉬지요.


그래서일까. 필사 모임의 단상은 가끔 '내밀한 속마음 성토대회'가 되곤 한다. 분명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속상한 일이 있었고 마음이 버겁고 힘들었는데, 신기하게도 필사한 시와 더불어 몇 줄의 단상을 쓰고 나면 그 마음은 단상이 담긴 노란색 카톡 대화창만큼 작아지곤 한다. 그리고 내가 적은 한 칸의 속상한 마음보다 두배, 세배로 더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하얀 채팅창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기록이 되고, 기록은 위로가 되어 마음속 뿌연 안개가 사라져 있곤 한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필사 멤버 중 한 분이 이 모임은 문학의 힘을 빌린 '집단상담'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실로 그렇다.


<시와 산책>의 저자인 한정원 작가는 위 책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이들이 시에게 곁을 주고 있는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이 은밀히 달아오른다. 시 공동체라니. 그것은 각각의 양초가 수천 개의 빛이 되어 어둠을 몰아내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밤과 같다." 아름다운 이 표현에 기대어 시를 쓴 이후의 일상을 이야기하자면, 기이하고 아름다운 현상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언젠가 이 모임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지인이 "매일 시를 읽는다는 것은 정현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매일 시를 읽은지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좋은 시를 매일 읽는다는 건 좋은 음악을 매일 듣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함께 시를 쓰는 일도 그렇다. 방안에 홀로 앉아 혼자서 오롯이 음악에 흠뻑 빠져있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인 콘서트장에 앉아 바글바글한 인파 속에서 같은 음악을 들으며 함께 춤을 추고 함께 '떼창'을 하는 시간도 때론 필요하다. 시 필사는 나 개인에 집중할 수 있는 새벽 시간에 이루어지지만, 이후에 오후 내내 이어지는 단상을 통해 연결되는 마음도 좋다. 혼자서 시를 필사하기 시작했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꾸준히 시를 읽고 쓰지 못했을 것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의 응원이 있어서, 수천 개의 빛과 같은 따뜻한 마음이 있어서 지금까지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우리 함께 시를 읽지 않겠어요?"라는 말은 좋아하는 전시를 함께 보러가자는 말 만큼이나, 함께 콘서트 장에 가자는 말 만큼이나 조심스럽지만, 상대가 환하게 답해줄 때 참 정겹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우리가 각자의 방에서 매일 시를 읽는다면, 그리고 매일 시를 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언젠가는 시를 읽는 것을 넘어 쓰고 싶다는 충동이 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고 싶어지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다. 매일 시를 읽고 짧은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시에 대한 단상 그 자체가 시를 닮아가는 게 아닐까 기대하고 있는데, 그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시를 쓰고 있을 것 같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필사 동지도, 오늘 하루만큼은 같은 문장을 읽고 비슷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거라는 믿음. 누군가 물리적으로 내 곁에 없을 지라도 마음으로 연결된 사람이 있다는 느낌. 이런 마음이야말로 너무나 시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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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은 <쓰는 기분>의 첫 장인 '우리가 각자의 방에서 매일 시를 쓴다면'에서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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