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을 읽히고 싶은 욕망과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내 글을 읽히고 싶지 않다는 욕망

by 주정현
"저 사실 브런치에 글 쓰신 거 봤어요."


그녀와 내가 단 둘이 마주 앉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거나, 남편들이 같은 직장에 다니거나, 아니면 좁은 교민 사회에 공통된 지인이 있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어찌어찌 연이 닿았다. 그동안은 아이들 등하교 길에 가볍게 눈인사만 건네거나, SNS 등으로 연락만 주고받다가 '커피 한잔 할까요?' 혹은 '오늘 브런치 어떠세요?'라는 제안으로 조금은 어색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마주 앉았다. 이제 막 집은 어디에 구했는지, 아이들이 새 학교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그 외에 폴란드 살이에 다른 어려움은 없는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사실 전부터 말하고 싶어서 마음속이 간질간질했다는 듯, 내 글의 독자였다고 고백해 온다.


조금 더 민망한 상황은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다 같이 한 테이블에 있을 때다. 보통은 아이들 학교 학부모 모임이나 법인 주재원 가족 모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블로그 포털인 줄 모르고 먹는 브런치인 줄 알았다는 사람, 브런치는 무엇인지 아는데 내가 글을 쓰는 줄은 몰랐다는 사람, 내 글을 읽어본 적은 있는데 그게 나인 줄은 몰랐다는 사람(개인적으로 이 경우가 제일 민망한데, 제일 반응이 격정적(?)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내 글을 꾸준히 읽어온 사람... 이 모든 경우의 수가 혼재되어 있다.


"어머, 이분 브런치 작가시잖아요."

"브런치가 뭐예요?"

"어머, 그거 무슨 시험(?) 같은 거 통과해야만 글 쓸 수 있는 데 아니에요?"

"작가님이셨어요? 몰랐네. 글 어디 가면 볼 수 있어요?"

"어머, 나도 그 글 읽어봤는데! 그거 쓴 사람이 정현 씨였어요?"


어쩌면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은 작가인 것이 밝혀지는 게 아니라, 작가라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도 계속해서 매일 같은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일지도 몰랐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나를 파악하고, 나에 대해 궁금해하고, 내가 그것에 관해서 설명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올까 봐.

박상영,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한겨레출판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고, 나도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쓰고 올리는 건데, 정말로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을 현실에서 마주칠 때면 그저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폴란드 바르샤바라는, 한국인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에 살면서 이곳 생활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미국이나 독일처럼 교민들이 많이 사는 나라가 아니어서 그런지 워낙 한국어로 된 현지 정보가 부족한데, 몇 개의 키워드만 넣고 검색해봐도 바로 내 글이 노출되기 때문에 새롭게 이 도시로 이주하려는 분들이 필연적으로 내 글을 읽고 오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원했던 바이고, 그럴 거라 예상했던 일인데... 나는 이 순간을 접할 때마다 왜 이리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할까.


이건 조금 웃긴 일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나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내 글을 소개하거나 설명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성적인 경향이 있는 대부분의 작가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나와 나 자신에 대해 알리고 다니는 편이다. (중략) 그런 성격을 가진 주제에 나를 아는 사람, 내가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내 글을 읽히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나를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을 읽히고 싶은 욕망과,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숨기고 싶다는 욕망. 이 두 가지 모순된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나는 지난 3년간 조금씩 나 자신을 고독하게 만들어왔다. 온몸으로 과잉된 자의식을 내뿜으며 말이다.

박상영,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한겨레출판


나를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을 읽히고 싶은 욕망과,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숨기고 싶다는 욕망. 이 두 가지 욕망이 한 사람 속에 혼재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나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가 알고 있는 나' 이상의 나를 내보이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알고 있는 나는 '현실의 나'고, 글로만 나를 접해왔던 나를 모르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나는 '글 쓰는 나'인데, 이 두 가지 자아를 모두 다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으면 하는 마음인 거다.


그 두 개의 자아가 서로 다른 존재인 것은 아니다. 글을 쓰는 나도, 현실의 나도 모두 진짜 내가 맞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의 페르소나를 한꺼번에 꺼내놓는 것은 매우 민망한 일이다. 가족들 앞에서만 보이는 내 모습을 가족이 아닌 사람 앞에서 꺼내놓기는 부끄럽듯이, 사회적인 미소로 무장한 바깥 세계의 내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기는 매우 겸연쩍듯이. 이것은 자의식 과잉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현상 아닐까.


누구나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 경우에는 글을 쓰는 자아와 현실의 자아는 조금 동떨어져있을 때가 많다. 현실의 자아는 '진짜 나'보다는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이 와중에 글 쓰는 자아가 소환되어 버리면 저 속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두었던 알맹이를 바깥으로 쑥 꺼내 보이는, 매우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 현실의 자아가 사회적 미소로 응대하는 사이에 현실 세계에 억지로 소환되어버린 글 쓰는 자아는 저 깊은 내면의 구석으로 다시 도망치려고만 하는데, 이미 나를 앞에 두고 내 글에 대한 대화가 한창 오가는 와중이므로 쉽지만은 않다. 도망치는 것은 진즉에 실패했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내 글과, 글을 쓰는 일상과, 글을 쓰는 어려움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있는데,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다. 아마 주변에 거울이 있었다면, 뻣뻣하게 굳어 있는 얼굴 근육을 보며 스스로 경악했을 듯싶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독자를 마주쳤을 때마다 느끼는 이 간질간질한 기분을, 그래서 어버버하고 말끝을 흐리는 이 어색한 태도를 조금은 이해해주시길. 현실에서 독자를 마주칠 때마다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심정이 어떤 마음인지 절절히 느껴버렸는데, 지인이 아예 모른 척하고 시침 뚝 떼었지만 알고 보니 내 글을 다 읽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 (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러므로 현실의 나를 아는 분이 글 쓰는 나도 알고 계시다면 저에게 귀띔은 해주시되 너무 대놓고 알려주시지는 말고 그래도 아는 척은 해주셨으면 좋겠지만 기왕이면 너무 부끄럽지 않게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지만 또 너무 대놓고 이야기해주시면 민망하다는 이 모순적이고 뭐 어쩌라는 것인지 모르겠는 비합리적인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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