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일기만큼 펼치기 두려운 장르가 또 있을까. 언젠가 다시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일기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시간이 흘러 우연히 맞닥뜨리게 되는 일기들은 분명 내가 쓴 것인데도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용기를 내 마주한 일기들은 지루하고 진부하게만 느껴지는 오늘의 나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힌트가 되었다.
윤혜은,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
브런치 작가로 승인을 받기 이전에, 꽤 오랫동안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써 왔다. 모두가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쓰던 시절에 처음으로 블로그를 개설했는데,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자 한국에 있는 남자 친구에게 일상을 공유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싸이월드는 회사에서 접근이 차단되어 있었다.) 2008년에 첫 번째 글을 올렸고, 1200편이 넘는 글이 올라와 있으며, 구독자도 브런치보다는 조금 더 많다. 오랜 시간 운영해오며 여행일기, 육아일기, 독서일기 등 그 시기의 관심사에 따라 여러 장르의 글을 올리다가 최근에는 독서기록장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한때는 매우 사소하고 잡다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이 블로그에 올리곤 했었다.
폴란드에 온 첫 해에 블로그에 꽤 많은 글을 올렸다. 우울하고 힘들었던 이야기들이 많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그리고 글로 풀어놓지 않으면 이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어서, 외롭고 고립되고 슬픈 감정을 아무라도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투덜투덜 써 내려갔다. 처음 폴란드에 왔을 때 아이들의 나이는 만 1살, 3살, 그리고 7살. 아무 기관에 다니지 않고 스물네 시간을 엄마인 나와 붙어살며 가정보육을 하는 아이가 있었고, 언어도 문화도 기후도 다 낯설기만 해서 행동의 반경이 자유롭지 못했으며, 잠깐만 방심하면 아이들이 다치고 아프고 사고를 치던 나날이라 하루하루가 두렵고 무서웠었다. 힘들 때 힘들다고 토로하며 의지할 수 있는 친지나 친구가 없었고, 아이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에야 한숨 돌리며 비로소 외로움이 외로움인지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몸도 마음도 단단하게 굳어있던 날들이었다.
며칠 전에 지인과 함께 밥을 먹는데, 우연한 계기로 그 시절의 내 블로그 글을 읽게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 시절의 감정과 기억은 이미 내 안에서도 많이 흐릿해져 있었기에, 많이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가 쓰여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글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 오랜만에 다시 찾아 읽었다. 다시 읽어보니 고작 3년 전의 이야기였을 뿐인데 남의 이야기 같았다. 그만큼 현재의 내 일상이 평온하다는 반증일 것이고, 힘들었던 기억이 그만큼 내 안에서 옅어졌다는 것이겠지. 2019년 가을의 나는 이런 문장들을 썼었다.
"아주 작은 숨구멍이 필요하다. 딱 숨통만 트일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인생의 흐름에 휘말려 그냥 내가 송두리째 없어지는 느낌."
"괜찮은 척, 잘 지내는 척, 그렇게 지내지만 사실은 나는 너무 힘들다".
"누가 툭 건드려도 금방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다."
아이들과 남편 앞에서 슬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모두가 잠든 밤에 몰래몰래 울면서 써 내려갔던 문장들. 과거의 일기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보니 그때의 슬픔이, 외로움이 느껴져서 코끝이 찡해지고 말았다.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다가 2019년 9월 5일 일기에 있는 다음의 문장을 읽고 나니 눈물 수도꼭지는 왈칵 열려버렸다.
"누가 나보고 아주 잘하고 있다고 한 번만 토닥여줬으면 좋겠다."
한 번의 토닥임이면 충분하다며 아주 사소한 것을 갈망했으나, 그것마저 얻지 못했다. 그 한 번의 토닥임이 필요했을 뿐인데, 단 한 번의 토닥임이면 충분했는데. 그때에는 그게 없었다. 그 토닥임을 누구에게도 느낄 수가 없어서, 아무에게도 받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토록 외로웠었나. 과거의 내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져서 울고 말았다.
신기했다. 과거의 내가 불쌍해서 울다니. 과거의 나도 나고, 현재의 나도 나인데, 3년 전의 일기를 써 내려갔을 나는 내가 아닌 타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과거의 나에게 측은지심이 들었다. 현재의 나와는 전혀 다른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던 과거의 나. 아이들 나이가 어렸던 만큼 육아만으로도 바쁘고 힘들었던 나. 밥조차 허겁지겁 먹어야 했고, 허리 한 번 제대로 피지 못하고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고, 피곤에 절어 살면서 마음 놓고 쉬지도 못했던 나. 그 와중에 타국에 와서 생활하게 되면서 많이 지치고 힘들었는데, 그 마음을 털어놓을 안전한 휴식처를 찾지 못해 방황했던 나. 그랬던 과거의 나. 현재의 나보다 어리고, 육아 경험도 적고, 그만큼 더 불안해했고, 어딘지 불안정해서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나는 그 시절의 내가 조금 그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크는 것도 아쉽고, 그때에는 좀 더 젊고 건강했던 거 같고, 아이들과 스물네 시간 붙어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말하는 것, 경험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모두 함께 공유한 스물네 시간을 기반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오늘의 평온한 일상이 그저 거저 쥐어진 것이 아닌데, 마치 과거에는 모든 것이 평화로운 와중에 아이들과의 관계 또한 끈끈하고 좋았다고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이 안온함을 얻기 위해 사실 나는 참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왔던 것인데, 어떻게 그걸 잊어버릴 수 있지.
지루하게 진부하게만 느껴졌던 오늘의 일상은 사실 과거의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미래였었다. 할 수만 있다면 과거로 달려가, 다른 누구도 아닌 과거의 나를 찾아가 토닥여주고 싶다. 그 한 번의 토닥임을 지금의 나는 줄 수 있으니 말이다. 너는 아주 잘하고 있다고. 엄청 애쓰고 있다고. 등을 다독다독 토닥여주며 그리고 꼬옥 안아주며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네가 상상한 것보다 아이들은 더 금방 클 거라고 귀띔해주고 싶다.
토닥토닥, 과거의 나야. 애썼어. 정말 애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