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브런치에서 '그 알람'이 오고 말았다. 나의 '꾸준함'을 독려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게으름'을 꾸짖는 그 알람 말이다.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 여기에 방점은 '자주'에 찍혀 있다.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날짜가 11월 7일. 알람이 온 날짜는 11월 21일. 정확히 2주 동안 아무런 글을 올리지 않으면 어김없이 그 알람이 오며 나의 게으름을 꾸짖는다.
지난 2주간 글을 쓰지 않은 건 아니다. 일기장엔 매일의 일기가 차곡차곡 쌓여 있고 임시 보관함의 역할을 하고 있는 '작가의 서랍'에는 이달에 썼으나 발행하지 않은 세 편의 원고가 잠들어 있다. 다만 이 모든 글들을 공개적인 공간에 내보일 수 없었을 뿐이다. '그냥 나 혼자 간직하자고 쓰는 글'과 '타인에게 공개할 수 있는 글'은 내용도, 형식도, 읽는 사람도 다 달라야 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번 달에 쓴 여러 글들은 모두 그 산을 넘지 못했다.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아. 일단 써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써보지만, 그렇게 쓰인 글은 어딘가 다 하나같이 부족하고 이상해 보였다. 어떤 글은 너무 추상적이고, 또 어떤 글은 너무 구체적이고, 또 어떤 글은 엉망진창으로 엉켜버린 실뭉치 같았다. 글을 쓰며 자주 좌절했다. 도대체 이런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일상의 이야기, 아이들과 나눈 사소한 대화, 먹고사는 이야기... 그 모든 것들을 글로 옮기려면 옮길 수야 있겠지만, 그 글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힘들었다. 내 일상이 기록으로 아카이빙 된다는 개인적인 의미 외에 독자에게 특별한 효용을 줄 수 있는 글인가. 그런 질문을 안고 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대답은 항상 '아니요'였다. 그래서 글을 공개할 수 없었다. 타인에게 내보일 수 있는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계속 써야 더 중요해지는 거야"
영화 <작은 아씨들(2019)>에서 자신의 글을 비하하는 조에게 막내 에이미가 하는 말이다. 네 자매의 삶에 대한 소설을 쓰는 둘째 조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자매들의 이야기는 당대의 문단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가 아니라며, 이런 이야기는 별 볼 일 없는 것이라고 자조한다. 그런 그녀에게 에이미는 계속하면 중요한 것이 된다고, 계속 써야 더 중요한 이야기가 되는 거라고 말한다. 에이미의 그 확신의 찬 어조에 내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그 응원에 힘입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다 보면 '... 정말?' 하는 의구심이 마음 한 구석에서 싹트고 만다. 계속하면 나의 이야기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가 될까. 이토록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이 중요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그냥 평범한 주부가 평범하게 아이를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다던데, 그 비슷함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어긋나지 않은 일상적인 이야기.
이런 내 이야기가 왜 글이 되어야 하는 걸까. 이렇게 평범할 수 없는 하루라도 매일 꾸준히 글로 옮긴다면, 그럴듯한 무언가가 되어있을까.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달라는데, 내 '시선'을 '자주' 내보이면 그 끝에는 무엇이 남아있는 걸까.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