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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Jun 27. 2020

다들 책 어떻게 읽으세요?

해외에서 슬기로운 독서생활을 즐기는 법

 나는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그림책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읽은 책은 모두 블로그에 정리한다. 책에서 가장 좋았던 한두 문장만 짧게 남겨두는 경우도 있고, 아주 길게 서평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책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인 건 2014년부터인데 덕분에 블로그에는 지난 6년 동안 읽은 수백권의 책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오늘 아침에도 가장 최근에 읽은 <예술하는 습관>의 서평을 올렸는데, 정리하고 보니 올해 읽은 딱 60번째 책이었다. 6개월 동안 60권의 책을 읽었으니 한 달에 10권씩 책을 읽은 셈이다. 

 

2020년 상반기 독서기록 


 해외에 살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니겠으나, 읽은 책을 꼬박꼬박 정리하는 습관 때문에 유독 책을 더 많이 읽는 것 같아 보이기는 한다. 그래서그런지 나와 비슷하게 해외에 살면서 책을 좋아하는 이웃들의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이 많은 책을 다 어떻게 구해서 보세요?" 


 오늘 아침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재작년에 폴란드로 이사온 이후로는 이와 같은 질문이 한달에 두어번씩 끊이지 않고 있으므로, 오늘은 이 참에 글로 한 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아마 아는 사람은 다들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몰랐을 '해외에서 모국어책 구해서 보는 법'.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해답은 전자책에 있다


 내가 전자책에 푹 빠져 읽기 시작한 건 2016년 가을무렵의 일이다. 미국에서 2년간 살다가 한국에 이사오면서 내가 살던 송파구의 지역 도서관을 드나들기 시작했는데 그때 '리브로피아'라는 도서관 이용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았다. 그런데 해당 어플리케이션에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와 같은 시중서점의 전자도서관 사이트가 연동이 되어있는 게 아닌가? 구립도서관에서 보유한 전자책의 권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읽고 싶은 소설책이 몇 권 눈에 띄었고, 그때부터 아이들을 재운답시고 침대에 누워서 책 서핑을 하고, 대출을 하는 방구석 도서대여 서비스에 푹 빠졌다. 


 그리고 좀더 살펴보니 내가 졸업한 모교의 대학도서관과 남편이 다니는 회사도 전자책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 물론 해당 전자책도서관 사이트에 접속하려면 실제 오프라인 도서관의 회원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10년전의 기억을 더듬어 대학시절 학번과 중앙도서관 홈페이지 비밀번호를 넣어보니 로그인이 되었다. 대학과 기업에서 운영하는 전자책도서관의 보유 권수는 수만권에 달했고, 신간도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편이다. 그리하여 이 전자책도서관 서비스는 지금까지도 내가 애용하는 책을 구할 수 있는 창구 중에 하나이다. 


도서 스트리밍 서비스 


 그리고 그 이후에 리디셀렉트, 밀리의 서재, 예스24북클럽, 교보Sam과 같은 도서 스트리밍 서비스가 많이 생겼다. 전자책도서관과 다른 점은 한 번에 빌릴 수 있는 대출권수의 한도가 없다는 점. (교보Sam베이직은 금액에 따라서 월 제한 권수가 있지만 Sam무제한은 없다.) 

 학교나 기업에서 운영하는 전자책도서관은 회원 1명당 정해진 대출권수가 있고(보통 3권이다), 도서관에서 보유한 전자책 도서 갯수가 한정되어 있어서 대출, 반납, 그리고 예약시스템을 통해 운영된다. 도서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런 제약이 없는데, 그렇다보니 해당 책의 작가에게 적절한 인세가 지불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존재한다. 다운로드 횟수가 많다는 것이 실제로 책이 많이 판매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여기에 어떤 로직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내가 출판계에 있지는 않아서 알 수가 없고, 다만 그 때문에 실제로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김영하 작가의 경우에는 내가 가입해있는 전자책도서관에서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11권의 책이 나온다. 그 중에 <여행의 이유>는 보유권수 5권, 대출권수 5권, 예약건수 19권으로 나오고(그리하여 지금 예약하면 2021년 3월에 대출할 수 있다고 나온다...), 가장 신작인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역시 보유권수 5권, 대출권수 5권, 예약권수 9권으로 나온다(얘는 올해 11월이다. 상대적으로 나은...가?). 그 외의 나머지 작품은 바로 대출 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이용하고 있는 예스24북클럽에 검색해보면 보유 권수는 0권. 아니, 그래도 해당작가의 작품이 몇 갠데 0권은 너무하지 않아? 하는 생각에 좀더 알아보니 김영하작가는 밀리의 서재에서 '밀리 오리지널'로 오히려 제품을 선출간하기도 하는 걸로 봐서 밀리의 서재와 어떤 계약을 하고 타 도서 스트리밍 서비스에 본인의 작품을 내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에서도 더 많은 회원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전략들이 있는 터. 그래서 도서 스트리밍서비스를 통해서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먼저 그 리스트를 작성해두고 각 사이트에서 해당 작품을 제공하는지를 확인해보는 게 좋다. 다행히 대부분의 도서스트리밍서비스는 첫달 무료(교보 Sam베이직은 첫달 1000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물론 책을 사기도 한다


 전자책을 빌려만 보는 게 아니라 구매도 자주 한다. 나는 보통 알라딘 전자책서점에서 많이 구매해서 보는데,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크레마(알라딘과 예스24와 연동되는 전자책리더기) 유저이기 때문에, 그리고 알라딘에서 해외배송으로 종이책을 구매하게 되면 쌓이는 적립금을 소진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 사실은 종이책도 꽤 많이 산다. DHL배송으로 책값이 6만원어치면 배송비는 4만원어치쯤 드는 돈을 감당하고, 세관에 추가로 돈을 내면서까지 책을 사기도 한다. 세상에는 수 년이 지나도 전자책으로 출간되지 않는 책들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백수린 작가님의 <친애하고 친애하는>, 배명훈 작가님의 <고고심령학자>를 종이책으로 배송해서 받아봤다. 사인본을 받고 싶은 욕심에 김하나 작가님의 <말하기를 말하기>도 그렇게 전자책 출간 이전에 예약배송으로 주문했다. 그리고 초등학생 큰딸이 읽을 책도 전자책으로 발행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대부분 종이책으로 사서 보는데, 그렇게 되면 전자책 한 권쯤 사볼 수 있는 적립금이 계정에 쌓이곤 한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최근에는 정세랑 작가님의 <피프티피플>과 록산 게이의 <헝거>를 전자책으로 구매해서 읽었다. 필요하면 그때마다 지갑을 여는 일에 크게 주저하지는 않는다. 

 다만 알라딘 전자책서점에는 '대여'라는 독특한 서비스가 있다(다른 온라인 서점에도 있는 서비스인지는 잘 모르겠다). 코로나가 가장 극심했던 5월에는 램프에어 서비스라며 30일간 매주 예닐곱권의 전자책을 무료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하기도 했었는데 이런 서비스는 더 이상 없고, 보통 90일간 5000원 전후의 돈으로 책을 대여해볼 수 있다. 대여가 가능한 전자책은 매달 바뀌고, 매달 조금씩 다른 할인혜택이 있으므로 가끔씩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서 지름신을 부를 만한 땡기는 책이 없는지 살펴보는 게 좋다. 나는 6월에는 타라 웨스트 오버의 <배움의 발견>을 빌렸는데, 6월 한정 30%할인쿠폰으로 2100원을 할인받고, 대부분의 결제는 적립금으로 해서 실 결제금액은 400원에 불과했다는 '언뜻 보면 현명한' 소비를 했다(그래봤자 배송료만 4만원씩 쏟아 부어 책을 주문한 게 그 다음날의 일이었지만). 전자책의 구매나 대여는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온라인서점의 다양한 프로모션을 잘만 캐치하면, 평소 읽고 싶던 신간을 꽤 저렴한 가격에 득템해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종이책이 읽고 싶다면 


 예전에 미국에 살 때는 엘에이에 있는 한인타운이 차로 30분 거리에 있었다. 그곳에는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었고, 수많은 개인 서점들이 있었으며, 북미지역의 특성상 4주를 기다리면 무료로 선박배송을 해주는 아름다운 시스템도 있었다(책값은 미국판매가가 한국 정가보다 다소 높게 책정되었으니 이미 책값에 다 배송료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지만). 

 그러나 폴란드로 이사온 지금,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항공편이 끊기고 EMS서비스가 중지된 마당에 한국에서 책을 받아볼 수 있는 수단은 판매서점과 연계된 DHL이 유일하다. 앞서 말했듯이 필요하면 종이책을 사서 보는데, 요즘은 그 빈도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 집콕라이프의 우울함이 택배박스를 받는 순간 사르르 없어지는 경험을 몇 번 하다보니 아무래도 여기에 중독이 된 것 같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은 DHL이 독일에 본사를 두고 있는 독일의 화물 배송회사이기 때문에 독일과 국경이 인접한 폴란드, 그 외 유럽내륙지역에서는 꽤 빠르고 정확한 배송을 기대해볼 만하다. 더군다나 온라인서점은 법인으로 해당 배송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있어서 그래도 책 무게치고는 저렴하게(?) 책을 받아볼 수 있다... 고는 하나 역시 배송료가 아깝다. 그래도 끊임없이 지갑이 열리는 거 보면, 아쉬운 마음을 그저 자본주의 시스템에 기대어 달래는 수밖에 없다. 

 간혹 도시에 따라 해외에서도 교민들을 위한 도서관이 운영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사는 바르샤바의 경우 한국문화원이 그곳이다. 1인당 대출권수는 세 권으로 제한되어 있고 대출 기한은 2주이다. 회원가입을 하면 한국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DB에 회원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비록 한국문화원 도서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남편은 슬쩍 둘러보고서 "우리 집에 책이 더 많이 있는 것 같은데...?"라고 속닥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해외에서 모국어로 된 종이책으로 둘러쌓인 공간은 그 무엇에 견줄 수 없을 기쁨이다. 아이가 다니는 국제학교 도서관에도 책장 한 칸 만큼은 한국어 소설책이 있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이 문화원보다도, 학교도서관보다도 더 많은 책이 있는 공간은 사실 우리집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책이라면 앞뒤 분간 못하고 자꾸 열리는 내 지갑에 기인한다. 


 마치 책을 저렴하게, 획기적인 방법으로, 큰돈 들이지 않고 구해서 보는 나만의 요령이 있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종국에는 많이 사서 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난 1월에도 23kg 캐리어 다섯 개에 책을 꽉꽉 채워오며 있는대로 책욕심을 부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책을 산다는 행위는 작가의 집필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건강한 소비라고 위로해본다. 해외에서 모국어로 된 책을 읽는다는 것. 멋진 서점과 도서관이 가득한 한국의 환경을 생각하면 내가 너무 손해보는 취미를 가진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힘들게 구한 책인 만큼 더 값지게 읽어주면 된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책을 읽는다. 


 해외에 사는 다른 동지들은, 책을 어떻게 읽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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