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자리의 질문

아이를 키우며 말하지 못했던 마음들에 대하여

by 주정현

주방에 서서 저녁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너무 외로워졌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하루치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시간이어서였을까. 갑자기 설거지를 멈추고 글을 쓰고 싶어졌다.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엄마가 되기로, 살림을 하는 주부가 되기로 한 선택은 분명 나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만약 설거지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회사에서, 병원에서, 센터에서, 아주 중요하고 정말 전문적인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면 말이다. (그런 일이 대체 무엇인지는 지금의 나는 모르겠지만.) 그랬다면 나는 덜 외로웠을까.


최근 지인들과 식사를 하다가, 그 자리에 있던 Y님이 내게 물었다.

“정현 님은 지금껏 살면서 경험한 가장 큰 실패가 뭐예요?”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라니.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커리어를 완전히 내려놓고 아이를 키우기로 했던 선택을, 아이와 함께 남편의 직장 문제로 미국행 비행기를 타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 뒤로 그 질문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실패는 뭘까. 무언가 한 단어로 설명해 버리기는 어려운, 조금 더 복잡한 감정이 마음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는 일단 그렇게 대답했지만, 시간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선택을 과연 실패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구에게 떠밀린 길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고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여전히 그 시간을 실패처럼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는 왜 여전히 일을 그만둔 게 이렇게 슬플까.

왜 아직도 슬플까.


지금의 내가 되기로 한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텍사스 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인 제임스 페니베이커에 따르면, 성취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성공을 염원하는 동시에 실패를 두려워한다고 한다. 어쩌면 성취지향적인 인간인 나는 실패한 엄마가 되는 일을 그 무엇보다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커리어의 영역에서 큰 성취를 이룬들,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 그 성공은 허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과 가정, 두 가지 영역 중 단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리고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내겐 있었고) 나는 가정을 선택했다. 그것은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나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더 자주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선택한 사람은 흔들리면 안 될 것 같았고, 그 선택은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며, 그에 따른 후회와 외로움은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생계형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 선택은 사치스러운 선택이 맞다.


그리고 그런 자기검열 속에서 나의 감정들은 자꾸만 뒤로 밀려났다.


그간 누적된 감정들이 있다. 세 아이 엄마가 된 지 내년이면 딱 10년 차가 된다. 나의 선택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가득해지는 오늘 같은 날이면, 마음이 저 깊은 바닥까지 가라앉는 것만 같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분명할수록, 아이들에게 내 시간을 온전히 바치고 싶은 욕구가 뚜렷할수록, 나는 이 선택을 되돌릴 수도 없어서 더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된다.


때때로 엄마로만 사는 일상에 지칠 때면 투덜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고작) 전업주부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 학창 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했던 건 아니야." 그러나 10년 전의 나는 마치 그때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공부가 별것 아니고 아주 쉬웠던 것처럼, 인생의 큰 실패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선선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금의 삶을 선택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지금까지의 성취쯤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고. 과거의 나를 떠올려보면,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엄마로 사는 일과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삶이 더 이상 양립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싸, 때려치우자.’ 하는 마음으로 후련하게 그만두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일에서도 반쪽, 가정에서도 반쪽. 그렇게 반으로 댕강 잘려 정작 나 자신은 없었으니까. 그때는 정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단 하루도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성취 따위는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다. 버렸나? 아니다. 버렸다고 말해왔지만—사실은 나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다.


정말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노력해서 얻었던 그 모든 것들을.


아이들이 소중한 만큼, 엄마로 사는 일이 귀한 만큼 나의 학문적 성취도, 사회적 성취도 모두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것들을 그렇게 쉽게 내려놓았을까. 왜 그렇게 빨리 포기했을까.


이제 그 질문들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제서야. 혹은 이제야 겨우.


사실은 그동안 엄마로만 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번도 가만히 멈춰있었던 적은 없었다. 셋째를 낳을 때 5분 간격으로 진통을 하면서도 책을 읽을 만큼 나는 멈춰 있는 것을 지독히도 불안해했다. 어떻게든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불안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금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가끔은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토닥거리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곧 자유로워질 거라는 말도 되뇐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지금의 나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여전히 속상하고, 때때로 운다. 그리고 가끔은 정말 너무 외롭다. 오늘이 특히 더 그랬다.


그래서 그 감정들을 그대로 적어보려 한다. 엄마가 된 이후의 자리에서 말로 다듬지 못한 채 남아 있던 감정들을. 여전히 설명되지 않고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이전의 나는 쉽게 지워져 버렸다. 나의 이름은 ‘누구누구 엄마’로 바뀌었고, 경력은 멈춘 것처럼 보였으며, 내가 꿈꾸던 길에서는 너무 멀어져 버렸다. 원하던 커리어의 길, 특히 그 직선의 길을 걷지 못하고 술에 취한 사람처럼 갈지 자로 꼬불꼬불 걷고 있다. 아이가 없는 친구들은 이미 그 길 끝에 도달해 있고, 내가 도착할 때 즈음엔 이미 모든 자리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선점되어 있을 것 같다. 모든 자리가 이미 채워져 있다면, 내 몫이었을지도 몰랐을 그 무엇은 어떤 빈칸이 되어 남아있는 걸까. 아이가 없는 세계의 나는 존재하지 않으니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실패라고 불러야 할까. 하지만 그 선택을 단순히 실패라고 부르기에는, 그 이면에 엉켜 있는 감정들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


엄마로 살아가겠다는 선택 뒤에서, 나 자신도 모르게 비워두었던 마음을 떠올린다. 그 무수한 선택들이 겹쳐 만들어진 오늘의 나를, 그리고 나의 오늘을.


이제는 조용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마음들에 대해 계속 받아 적다 보면, 이 노트에는 어떤 글이 담길까.

수요일 연재